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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끝나지 않은 일들..

쓰는 일이 시들해져가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새로운 일이 많지 않아서였다.
많은 일들이 해마다 반복되는 일들이다 보니,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맨처음 소개할때의 신선함이 없어져가고, 한번 자랑(비판)했던 일들을 다시 거론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음 칼럼이 다시 개편된다는 이야기도 있고 해서, 이번에야말로 글을 갈무리해두리라, 생각하고 글을 살피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지나갔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은 아직 진행중이다. 어떤 것은 더욱 심화된 문제로 어떤 것은 그런대로 발전된 상황이 되어있는 걸 발견했다.

그걸 하나하나씩 다 짚어내기에는 나의 부지런함이 딸리지만 기억나는 대로, 한해를 돌아본다는 의미도 있고하니, 훑어보기로 한다.

<아침식사 클럽>

요 며칠전에도 전교생을 초청해 아침을 먹이는 행사를 했다.

1년에 두번씩,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를 즈음해서 계획되어진다.

이날 방송국에서 나와서 운영자로 있는 페기를 인터뷰하고, 아이들 식사하는 모습, 우리들이 일하는 것을 담아갔다.

나중에 옆집아줌마의 말을 들으니, 나도 텔레비전에 나왔다고. 우리 텔레비전에서는 지역방송이 나오지 않아, 주변의 소식을 자주 놓친다.

어쨋거나 나는 행주들고 상을 닦는 모습이나, 아이들에게 팬케익을 나눠주는 모습이 찍혔을 것이다.

그것보다도 나는 페기를 생각한다. 거의 회생이 불가능해보이는 <아침식사 클럽>의 생기를 위해 그녀가 한결같이 보여준 정성이 나에게 감동을 준다.

그래서, 기자가 그녀를 인터뷰할때,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이날은 산타할아버지가 나타나서 아이들에게 캔디케인(지팡이 사탕)을 나눠주었다.

 

장사를 하는 우리집에서 아이들을 위해 캔디케인을 기부했는데, 그 작은 일에 아주 많이 고마와했다. 작년에는 아이들에게 쏘세지를 하나씩 주고, 팬케익도 하나씩 준 다음에, 다시 타먹으러 오면 조금 까다롭게 굴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내내 불안하고, 아이들의 입맛을 줄이는 것 같아 마음을 졸였다. 이날은 내가 팬케익을 담당하고 있기도 했지만, 내 옆에 있는 쏘세지 담당하는 아줌마도 인심이 후해 아이들이 달라는 대로 우리는 넙죽넙죽 퍼서 주었다.

어떤 아이는 팬케익을 네게나 먹기도 하고, 쏘세지도 잘 팔렸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쏘세지가 동이 나는 현상이 있었지만 작년처럼 남는 것보다는 동이 난 것이 내 마음에 더욱 흡족함을 준다.

 

아직도 나는 이성적인 분배자가 아닌 주먹구구식 인심쓰는 아줌마지만, 이런 작은 일에 나는 무진장 기뻐졌고, 제대로 이 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파티>

재작년의 이야기를 다룬 글을 읽었다. 둘째 루미의 눈으로 한인파티를 분석했었다.
아이들을 고려하지 않은 프로그램과 놀이문화의 부재, 경품추첨의 파행성을 이야기했었다.
그러고 작년, 글에서 다루지 않았지만 거의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는 장사하는 한인들 모임(실협)이라 공급업자들의 상품제공이 많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곳은 한인들이 많지 않아, 장사하는 사람말고도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까지 함께 파티를 하곤 했었다.

그러다보면, 공급업자가 준 큰 상품(예를 들자면, 텔레비전, 디비디, 가죽잠바등 고가품)을 게스트로 참가한 별 관계없는 이들이 타가기도 하고, 추첨하다 보면, 상품이 뒤바뀌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트집잡는 회원이 있기도 하다. 참 속좁은 일이지만 그런 일들이 발생한다.

나는 이 파티때만 되면, 이런 일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장사하지 않는 옆동네의 친구를 초대해야 하는지, 경품에서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마음을 열고보면 별 문제 아닌 것들이, 매번 큰 구설수를 낳고는 했었다. 서로 민망하고 부끄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주최측 회장단에 한번 물어봤다.
"다른 한인도 같이 초대하신 건가요?"
선뜻, 그렇다고 많은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신다. 마음에 안심이 된다.

아이들은 몇번의 파티 참석끝에 안간다는 확정을 세워놨다. 아이들이 이젠 컸으니, 저이들끼리 있어도 되니 다행이다.
나도 더이상 같이 가자고 하지 않는다.

조금 복잡해진 마음으로 올해 참석했다.
이번에도 모두에게 한장씩 경품권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또 실협회원이 아닌 이가 큰 경품을 타갔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런데, 내가 과문해서 그런지 올해는 그렇게 큰 뒷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모두, 서로 양보하기로 했는가?

오랜만에 만난 한인들이 반갑다. 내 아이들이 어렸을때 알았던 이들이, 우리 아이들이 나오지 않으니 의아해한다. 아이들이 그렇게 컸냐고, 이런데 안나오고 싶어할 만큼.. 꼬맹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가족을 보니, 우리들의 옛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일년에 한번씩 공식 도장을 찍는 것도, 놀이문화는 여전히 카레오케밖에 없지만, 그런대로 의미있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인교회>

한인교회가 세워진지 1년이 지나갔다.
첫삽을 떳던 감동은 이제 조금 식었고, 이것에 대해서 나는 할말이 많다.
한인교회 자체는 지금까지의 진행으로 보아 순조로운 듯 싶다.
젊고, 능력있고, 믿음이 신실한 목회자가 온 정성으로 교회와 교인들을 섬기고 있다.
금요예배가 하나 더 생겼고, 수요 성경공부, 신앙독서 모임, 가끔가다 교인전체가 참여하는 심방등이 들어가 있다.

나는 교회와 먼 관계로 주중에 일어나는 일들은 많이 빠지지만,(가까운 데 살았대도 장담할 순 없지만) 전 교인들이 열심을 내고 있다.

근데, 나는 일요일이면 참으로 난감해질때가 많다.
아이들이 1년이 지났음에도 한인교회와 친해지려고 하질 않는다.
영어예배가 없으니, 아이들이 교회에 앉아있는 것을 지루해하고, 친구들을 사귀지 못한다.
집옆에 있는 영어를 쓰는 장로교회에 가기를 원한다.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한인교회에 데리고 가려고 하다가, 아이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었다.
일찍 준비해서 영어교회 가고싶은 사람은 가도 된다.
엄마는 너희가 가면 같이 가고, 영어교회간 날은 한인교회를 빠져도 된다, 는게 골자다.

영어 교회가려면 10시 예배니까, 빨리 준비해야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교회준비하라고 독촉하지 않는다. 이렇게 늦장을 부리다, 예배시간을 놓치면 울며 겨자먹기로 한인교회로 가야 한다.
처음에는 시간을 챙기지 못해서 한인교회에 가야하는 날이 많았는데, 요즘 조금씩 영악해지면서 영어교회를 조금 더 많이 간다.
나는 아이들이 가면, 아이들끼리 보낼 수 없으니, 따라가고, 그 다음에 혼자서라도 한인교회를 간다.

이렇게 일요일에 두 교회를 참석해야하는 것은 그렇다치고, 어느곳에도 열심을 내기가 쉽지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영어교회에 대한 미안함이 더욱 크다.
아이들때문에 억지로 끌려가서, 앉아있다 돌아오는... 있을 수 없는 불성실함을 보인다.
아이들도 들쑥날쑥, 뿌리뽑힌 잡초들이 되어버렸다.

나의 처음 기도는 한인교회에 정착하게 도와주십사였지만,
지금은, 우리가족의 믿음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는 기도로 바뀌었다.
나만 두교회 섬기고, 전가족이 영어교회 다니는 것으로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나도 그냥 원상복귀하게 되려나.
한인교회에서 성도들이 나누는 교제를 생각하면, 나의 이런 판단은 커다란 착오를 낳는 것일수도 있고..

아직도 자리가 잡히지 않았다.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있는 남편도 한인교회를 함께 다니다가, 안다니기로 선언했다.
그나마 출석하던 영어교회까지 접게 되니, 내 마음의 아픔이 크다.

남편과 아이들뿐이 아니다.
나도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의 믿음정도(?)면 어떤 것도 받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근본적인 것을 자꾸 묻는다. 나의 죄성을 철저히 자복해야 하며, 그 아픔은 단순한 것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것을 계속적으로 교육받는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믿는 과정이 즐거울 수만은 없을 거라는 이야기이다.

신앙성장의 과정인지는 알지만, 그 열꽃을 뚫고 제대로 나갈 수 있을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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