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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식당에서

한번 생각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한국에서의 이야기다.

이 일에 관련된 사람들이, 내 칼럼에 자주 올 수 있는 이들이고,

또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저어되는 부분이 있다.

 

그랬거나 말거나,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한번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때는 한국서 돌아오기 사나흘전쯤이다.

캠핑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이다.

 

그동안 진 신세를 조금이라도 성의표시는 하긴 해야겠는데,

어찌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다가,

점심을 먹고 출발한 차가,

너무 먼 거리이기도 하고, 막히기도 해서

저녁 즈음해서 도착하게 되어서,

식사제안을 했다.

 

나도 한번쯤 선심을 쓰고 싶다고.

 

서울에 있던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전에 한번 언니와 말한 그 스테이크 집이 생각났다.

이러저러한 일로, 이곳에 있는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싶은데,

어느곳이 좋겠느냐고..

언니가 천호동에 있다는 그 스테이크 집을 추천했다.

 

10대들이 있었고, 양식이어서 그동안

먹어보지 못한 것들이라, 좋으리라 생각했다.

 

그날도 무척 더웠다.

서울에서 일하던 언니와 조카까지 합류해서, 일행이 11명이 되었다.

 

식당에 도착해서, 들어가니,

앞으로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여행에 피곤해진 몸들이고,

밖은 너무 더운데, 기다리는 것은 무척 어려울 듯 싶었다.

그래도 어디 다른데 찾기 힘들 것 같아, 그냥 기다리기로 하였다.

 

유명한 곳이니까,

그런가보다 했다.

 

밖에는 우리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식당측에서는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구운 스테이크를 조각내

접시에 들고와서 시식하라고 하기도 하고, 음료수를 주기도 한다.

참 여러가지 방법으로 일을 한다 싶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여러 사람을 마이크로 불러내는데

우리 차례가 오지 않았다.

 

조금 있다 언니가 들어갔다 나오더니,

사람이 많아서 그러니, 두 팀으로 나눠서 들어가면 어떻겠느냐고 묻는다.

 

그러라고 하고는 다시 기다렸다.

 

조금 후에 우리 차례가 와서 따라 들어가니,

8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고,

그 앞으로 4명이 앉는 의자가 있었다.

 

아이들을 앉히면서 보니, 자리배치가 좀 묘하게 되어간다 싶었는데,

직원이 오더니, 위층에 10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났는데 옮기겠느냐고 한다.

 

나는 당연히, 옮기자고 말하는데,

이미 기다리다가 지치고, 지하까지 애써 내려온

관절염이 있는 언니가 손을 휘휘 내두른다.

 

그냥, 떨어져 앉으면 되는데,

어떻게 1층으로 다시 올라가느냐는 것이다.

 

어쨋든 그래서, 그곳에 다시 앉게 됐는데,

6명의 아이들을 먼저 앉히니, 그곳에 2좌석이 비었다.

 

어른들은 사촌오빠 내외, 그리고 시골언니와 서울언니가

사이좋게 앉았다.

새언니는 나보고, 이곳에 앉고 자기가 아이들과 앉겠다고 말한다.

 

나는 아니라고 손을 내두르고, 아이들과 같이 앉았다.

 

막내가 자기옆에 앉으라고 내 바지자락을 잡고있었기도 했지만,

통로에 자리를 내놓지 않는한, 4명의 자리엔 내가 끼어들 공간이 없기도 했다.

 

그렇게 앉고보니, 참 기분이 묘하다.

나는 모처럼 한턱을 내고 싶었다.

폼도 잡고, 그동안 고마왔던 인사도 전하고 두루두루

마지막을 그럴싸하게 장식하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어른들과 등을 돌리고 앉아서

그런 이야기는 고사하고, 한마디 대화에 끼어들기가 뭣했다.

 

내가 한국에서 돈의 가치를 조금씩 깨닫고 나서보니,

그집은 최상의 식당은 아니지만,

가격면으로 보자면, 중상에는 드는축으로 보였다.

그런데 밥만 먹고 가게 생긴 것이다.

비싼 음식점에서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들이 전혀 쓸모없어지려는게 아닌가.

 

어쨋든 음식들을 시키고,

아이들은 조금씩 말문을 트기 시작한다.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둘째와 막내가 설전을 벌인다.

영어로 말하니, 나외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

 

둘째가 엄마가 어른들 식사하는데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괜찮다고 말했다.

어느 누구도, 나를 신경쓰지 않고 있는데,

둘째가 야단이다.

 

막내는 나를 보내고는 싶으나,

또 곁에 앉고싶어서, 내 바지자락을 잡고 있다.

 

둘째가 계속 막내를 훈계한다.

엄마가 어린이들 사이에 끼어서,

밥을 먹어선 안된다는 논조였다.

 

막내도 결국 수긍하곤

결국 아이들이 밀어서,

내가 귀퉁이에 의자를 밀어붙이며

어른들 자리에 합석했다.

 

그제서야, 잘했다며 조금씩 접시를 비켜준다.

 

나는 그사이에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자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집에서도 식당에서도

서로 편할 수 있는 자리배치를 많이 고려한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먹는 생각만 하나 보다 그렇게 여겨졌다.

누가 어디에 앉든, 나하나만 잘 자리잡고 앉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나

그렇게 고깝게 생각됐다.

 

문제는 우리 언니들에게 있다.

사촌오빠 내외는 크게 발언할 입장이 아니었을 수 있다.

 

그러나, 내 자리를 내가 만들지 않은 잘못도 있지만,

그 동안의 짧은 침묵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는지..

 

가족들이 나에게 자주 말한다.

 

너는 너무 내성적이다.

너무 속에 담고있다.

서운하면 말해라.

 

그런데, 사실 아직도 그렇다.

내가 알아서, 자리를 착 빼며,

우리 어른들은 같이 앉아야죠!! 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4좌석중 한석을 차지했다면,

나는 그랬을 것 같다.

 

어떻게 그쪽에 앉아있냐!

같이 앉자.

 

캐나다서 자란 둘째가 가장 사려깊다고 그날 생각했다.

엄마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풀어주고.

 

그런데, 정말 궁금하긴 하다.

그날의 그 좌석배치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인지.

다만, 나홀로 생각의 밑바닥에서 헤매인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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