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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요

남는 이야기들.. 플로리다 여행 끝

모든 짐을 찾고 차를 맡겨놓았던 주차장에 가서 우리차를 보니, 그 참상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7일동안 겹겹으로 얼어붙어 얼음차가 되어있다. 얼음을 쳐내고, 그안에 오르면서 이렇게 다른 기후, 다른 환경에 사람들이 사는구나 새삼 느낀다.

 

우리가 도착하기로 했던 23일밤, 토론토 언니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로 했었다. 나도 이날을 위해서 없는 시간에 총알같이 나가서 올랜도에서 쇼핑을 하기도 했다. 우리 가정과 언니네, 엄마, 그리고 동생네와 독립한 언니까지 모두 만나기로 했는데, 무산이 되었다. 소식을 전했더니 그곳도 날이 안좋아 동생네와 언니가 모두 올수 없게 됐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핸드폰으로 되어가는 소식을 전하면서 마침내 언니네 집에 도착한 것은 새벽 2시30분. 동생네는 기다리다가 집에 갔고, 엄마도 집에 돌아가 계셨다. 그래도 언니는 아직 잠도 안자고 상을 차려놓고 있었다. 비몽사몽간에 먹는 한국음식이 그렇게나 맛있는지.

 

아이들은 저희들 사촌언니가 있는 언니집에서 재우고 우리부부는 엄마네로 갔다. 아직 집에 가려면 3시간 운전해야 하는등, 몇가지 일들이 남았지만, 꿈같은 일이었다. 짐찾느라 고생했어도, 200여개의 뒤엉킨 가방들 속에서 우리 것을 찾아준 그들에게 고마움이 일었다.

 

그 다음날, 언니네 집에 다시 가서 선물 교환을 하고, 아이들은 새로 받은 선물 때문에 모두들 좋아한다.

 

집에 올라가는 길에 나는 걱정이 된다. 아이들이 산타 존재에 대한 진실을 알기는 해도, 산타선물을 건너뛸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막내는 아직 기대하고 있는데. 23일날 올라와서 준비할 시간이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25일 오후에 집에 가고있는 중이다.

 

화장품을 좋아하는 둘째를 위해서 조그만 화장품 셋트를 사놓은 것이 있고, 누군가에게 주려고 샀는데 미처 배분하지 못한 촛불 램프가 두개 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포장해서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고, 좀 미진하니 돈을 20달러씩 넣어놓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옆에서 운전하는 사람에게 조그만 소리로 도움을 요청한다. 아이들좀 1층에서 좀 지체하게 만들어라. 난 선물을 준비해야 하니까. 한 5분쯤이면 될거야.

 

그랬더니, 이 사람 알았다고 하더니... 갑자기 이렇게 선언한다. 애들아, 집에 가서 2층에 올라가지 말고, 가게 사무실에서 조금 있어라. 한 5분에서 10분정도. 짐도 나르고,,,, 알았지??

 

ㅎㅎ 내가 미친다. 지능범죄인이 못되는 남편때문에.

 

집에 도착하니, 포위된 얼음집처럼 보인다. 살벌하게 언 고드름. 이 고드름을 얼리지 않기 위해 특별한 열선을 겨울이 되기전에 설치했거늘, 힘을 쓰지 못하나 보다. 드라큐라의 날카로운 이빨처럼 열린 고드름 때문에 내 집에 확실히 도착했음을 깨닫는다.  종다리까지 올라오는 눈, 누군가가, 집으로 들어가는 길의 눈을 치워 작은 눈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 보인다. 감사하다.

 

 

가게 뒤로 통하는 문!  오랜만에 보는 집이 정말 낯설었다. 저렇게 얼어붙은 집에서 어찌 살꼬??

 

어쨋든 아이들이 우왕좌왕하는 틈에 소파와 나무 사이 잘안보이는 곳에 선물을 놓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동안 헤어져있던 동물들과 노느라고 선물을 주지하지를 못한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누워있으면서 다시 한번 옆사람에게 부탁했다. 아이들이 아직도 선물있는 곳을 모르니, 힌트좀 주라고.

 

누워서 들으니, 애들아 내가 꿈을 꿨는데 산타가 어쩌구저쩌구.... 위로 두애는 아빠를 보면서 빙긋빙긋 웃는 모습이 선하고.. 자면서도 나도 웃음을 참을수가 없었다.

 

아직도 남편은 아이들이 2살짜리들인줄 아는가 보다.

 

비행기가 연착되고, 취소되고, 잘못된 표를 끊어주고, 게이트가 연속적으로 바뀌고 그런 것들의 이유를 집에 와서 알게 됐다. 수요일, 목요일의 폭설과 얼음비로 많은 비행기가 취소되면서 도미노 현상이 펼쳐졌고, 그 와중에 델타 에어라인 같은 비행 회사는 컴퓨터 오류가 발생, 많은 비행기를 운행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마지막에 받았던 25일날 비행기표도 어쩌면 제대로 운행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언제나 집에 왔을지 아찔해진다.

 

일하는 사람들은 사람에 치여서 병가신청을 하기도 했다니, 그 복잡한 곳에서 직원은 더욱 없고. 미국과 캐나다 112개 도시에서 천대가 넘는 비행기가 취소되거나 연착되거나 했으니 그 혼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토론토 공항에서 만난 남자는 자기는 오하이오 공항에 3일간 억류되어 있었다면서, 현재 짐은 찾을 수도 없다고 울상이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오랜만에 집에 오는 사람들이 제대로 도착하지도 못하고, 공항 대합실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를 보냈을 것을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그 와중에 우리는 집에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고, 공항 관계자들의 혼란도 이해하는 마음이 되어서, 내 작은 불평을 전하려던 마음이 스스로 녹아내린다.

 

여행에서 보고 돌아온 것이 인간지식의 첨단이었다면, 이번 날씨관계로 벌어진 일들은 또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자 즐거운 것만 생각하자.. 애니멀 킹덤의 아프리카 랜드에서 북을 치며 놀고 있는 아이들.  이곳은 이렇게 꽃이 만발한 봄의 정원이었는데, 돌아온 나의집은 얼어붙어 있있으니. 

 

나는 이날부터 오늘까지 계속 같은 꿈을 꾼다. 줄서있고, 짐을 나르고, 내 차례가 언제나 오나 목을 빼는 그런 꿈... 구두속에 며칠간 숨을 쉬지못하고 갇혀있던 내 발은 마치 동상이 든 것처럼 벌겋게 부어올랐다. 그래도 멋을 내느라고 운동화를 신지않고, 약간 굽이 있는 구두를 신었다가 이런 봉변을 당한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비행장에서 며칠을 난 사람들은 어떻게 되어있을까?

 

집에 온 25일날 동남부 아시아에서 벌어진 지진과 해일 참상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현지인들도 그렇지만, 좋은 날들을 보내기 위해 여행갔던 사람들에게 생각이 미친다.

 

아들이 실종된 한 아버지는 뉴스에 나와서 "여행은 흥미롭고 가슴설레는 일이다. 그러나 그안에는 어떤 위험이 있을지 알지 못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여행"이라는 보따리안에는 그것을 풀러보기 전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있는지 모른다.

 

사전공부와, 마음의 준비, 그리고 필연성들을 검토하고 나서 여행을 떠나도 예기치못한 일들에 대해선 속수무책이 되버린다. 그런데, 우리와 같이 그런 엉성한 여행동기를 가지고서야.

 

내가 기다림으로 날린 많은 시간들은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이었나?  그동안 종종거리면서 조금씩 아껴썼던 나의 시간들이 하릴없이 허공에 흩어지는 것 같아 멀미를 느꼈다.

사서 고생한다는 것을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겠다.

 

동네사람들에게 소문도 많이 나서, 모두들 "웰컴 홈 백"을 외친다. 정말 집에 돌아왔다는 것이 그렇게 기쁜 일일줄이야.

 

촌사람들이 가서, 이렇게 생색을 내면서 여행한 것, 남아있는 게 있다면 그것뿐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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