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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요

가족 캠핑

미국 시카고에 사는 동생네가 캐나다로 친정휴가오는 때가 되면, 캐나다의 식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계기가 된다.

 

작년에는 별장을 빌려서 놀아보기도 했지만 올해는 따로 같이 놀다가 한꺼번에 만나는 기회를 우리 집 근처 캠핑장에서 하기로 했다. 이틀은 캠프하고, 이틀은 우리집에서 지내고 4박5일 일정으로 맞춘 것이다.

 

자손이 무성한지라 캐나다의 5자매 가족과, 엄마, 그리고 시카고의 한 가족이 만나니 모두 25명이 넘어서는 것 같다.

 

그 숫자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무엇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올해의 캠핑은 근사했다.

 

25년만에 문을 연 인버휴론 공원에 3개의 사이트를 빌려놨다. 텐트를 4개 치고, 어른들은 잠은 텐트에서 잘 수 없다고 우기더니만, 맘들이 변하여 모두 텐트에 머물기로 해서 한 텐트에 4-6명씩, 그리고 몇명은 차속에서 자기도 했다.

 

그동안 캠핑을 자주 다녔던, 그리고 그런 장비 사재기를 좋아하는 남편덕에 우리집의 남는 장비들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말하자면, 에어 매트리스, 에어매트리스를 이용한 야전 침대, 밤에 밝혀놓는 횃불처럼 생긴 기름불, 건전지를 사용한 작은 형광랜턴, 바베큐틀과 코카콜라 회사에서 얻은 큰 얼음박스등..

 

트레일러에 싸들고 와서 풀어놓으니, 침대가 있는 호텔급 텐트부터, 이곳저곳에서 얻어서 잠자리를 마련한 민박 스타일 텐트까지 등급별로 작은 마을이 형성된다. 한 사이트에는 차만 주차하고 한쪽엔 세개의 텐트를 쳐서 <자는 곳>으로, 한쪽에는 부엌설비와  하나의 텐트, 그리고 모닥불을 피워놓은 거실까지 완벽하게 이틀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조물조물한 어린이부터 80을 바라보는 엄마까지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한데 섞이어 의사소통을 하기 어려워 그렇잖아도 목소리 큰 것으로 유명한 우리들이 쫓겨나지 않았던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우리 자매들의 목소리가 크다고 심판을 한 것은 이집에 장가온 남자들의 이야기다.

 

 



 목소리큰 아줌마들.. 첫째, 다섯째, 일곱째, 여덟째, 아홉째 열째딸이 엄마와 함께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중 일곱째가 접니다만...

 

모닥불앞에서 "목소리가 크다"고 누가 말하자, 재빨리 나는 "그래 한국 사람들은 목소리가 너무 커"라고 받았는데, 다시 들려오는 소리가 "한국사람들"이 아니라, 이씨집 아주머니들이 그렇다고 못박았다. 그랬더니 남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동의한다.

 

미국의 동생은 목소리가 크니, 좋은 것도 많다고, 부부싸움을 하면 항상 이긴다고 또 덧붙인다. 어쨋거나, 그 큰 목소리를 서로 견제하면서 새벽 2시까지 소근소근 대화를 나눠야 했다. 캠핑장의 규율이 밤

11시 이후에는 목소리를 크게 하면 안된다고 주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모닥불앞에서는 꼭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밤하늘의 별을 세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 나와보라..

그날도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어릴때 시골마을에서 본 그 별들이 여전히 떠있었다. 북극성과 북두칠성, 그리고 w자가 그려진 별자리까지,,(별자리 이름을 잊었다. 늙으면 죽어야지)

 

캠프사이트에서는 나무들에 가려 열린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호숫가로 가서 가이없는 하늘을 보고 물을 보고 싶었다. 물소리만 들리고 물이 보이지 않으니,, 좀 허전하다. 누군가가 제안해서 구미가 당겼으나, 차를 타고 캠핑장을 돌아서 가야 하니, 그저 그런 마음만 가지고 "객기"를 접기로 했다.

 


 

비치에서 놀기에 여념없는 아이들..

 

 

캠핑이 끝나고 우리집으로 철수하는 날은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떠나자는 사람과, 빨리 걷어서 가자는 사람등이 있었으나, 장대비는 아니어서 그런대로 마무리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해바라기밭에서 식구들 가족촬영도 하고..

 

집에서도 역시 먹는 것과 찡찡거리는 아이들 소리로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신앙상담을 받았다.

9째 동생과 그 남편은 지난 98년부터 러시아 근처 아제르바이잔이란 조그만 나라에서 성경번역 선교사로 일하고 있다. 올해 본국사역차 6개월 일정으로 돌아왔는데 8월 출국에서 6개월 연장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캐나다에 온 다음 가족 전체가 지난 3월경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간 치료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큰아들 어진이는 얼굴에 큰 상처를 입어서, 많이 아물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쪽볼과 눈 근처가 흉이 많이 졌다.

 

어쨋든 그 동생부부에게 나의 그간의 고민을 털어놨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지, 제대로된 가르침을 받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었다.

사실, 약간 "보수적"인 목사님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서 제대로 소화가 안되고 있는 것들을 동생에게 털어놓으니 위로가 돌아왔다.

 

그리고 마지막날 내가 다니는, 또 나의 언니가 전도사로 일하는, 또 내가 그의 설교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목사님이 계시는 나의 교회에서 동생의 남편이 "선교보고"를 하였다.

 


 

선교사로 일하는 동생 부부..세미나 때문에 캠핑 둘째날 밤 12시 가까이 도착한 남편을 먹이며(?) 즐거워 하는 그의 부인.. 사진을 제발 없애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올린 줄 알면 날 가만 놔둘까?

 

그의 선교사역을 제대로 듣기는 처음이다. 말은 있으나 글이 없는 작은 종족에게 성경을 전하기 위해서 러시아어, 아제르바이잔어를 배운 다음에야 인구 1만명인 우디종족의 언어를 배웠고, 알파벳이 없는 그들의 언어를 분류해서 그 작업까지 마치고, 이제 신약번역을 시작하게 된 그 긴 역사, 하나님이 함께 하신 고난과 감사의 시간을 엿볼 수 있었다.

 

캠핑이 나에게 준 것은 그 동생부부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에게 선생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서로 부대끼면서 배우고, 어른들은 서로간에 헌신과 살림의 방법들에서 모범이 된다.

 


 

habalagi 

 

엄마는 김치를 담가오시고, 모든 밑반찬을 만들어오셨다.

큰언니는 설겆이감이 생길때마다 그릇을 닦고, 아이들이 수없이 흘리는 음료수 자욱을 닦아낸다.

선교사 동생은 아이들이 먹을만한 음식을 정성을 다해서 만든다.

막내네는 가게 때문에 바쁜데도 남편이 2시간 걸리는 집에 가서 정리를 하고, 일요일 동서의 "설교"를 듣기 위해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

남편은 약한 엄마와 언니, 그리고 제부까지 침을 맞춰주며 건강을 챙긴다.

 

 

토요일날은 성인이 된 조카 둘과 남자조카의 캐네디언 여자친구까지 왔다.

밥을 한차례 먹고나면, 폭풍이 몰려왔다 몰려간 것 같은 여운이 남는다.

텐트생활과 비치에서 오래 놀아서 감기기운이 한 사람에게 찾아오더니만, 나도 어제부터 합류했다. 긴 집단생활에 집단발병까지...

 

그것이 가족이 아닐까. 웃음과 울음이 함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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