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간 백악관앞에서 반핵시위를 벌이고 있는 콘셉션 피시오토 할머니. 그녀는 지난
1991년 동아일보에서 자신을 다룬 기사를 복사해,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그 할머니를 처음 봤을때, 뭔가 머리를 치는 게 있었는데 그게 뭔지 몰랐다. 말끔한 사람들만 드나드는 정부청사앞 전연 어울리지 않는, 눈에 가시같은 그 모습... 그것은 현실이야기가 아니라, 아니라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중국에 위화라는 소설가가 있다. 허삼관 매혈기로 유명한 그 작가의 최신작 "형제"에는 정부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주인공 이광두의 이야기가 나온다. 말끔한 관공서앞을 어지럽히는 이광두의 시위에 정부 관리들은 그를 어쩌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그리고 그 시위는 햇수로 4년이 넘게 계속되었다.
소설속 인물 이광두의 시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장시간 1인 시위 할머니가 미국 수도 워싱턴 D.C. 백악관 앞에 있다. 수도를 둘러보는 관광객들이 도장을 찍고 가는 한 장소인 "백악관"은 특별한 건축물들 사이에서 두드러질 것 없는 흰색의 저택이고, 부시는 볼 수 없으니, 집 한채 구경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그 백악관 길건너에 대문도 없는 작은 비닐집에 사는 콘셉션 피시오토(Concepcion Picciotto) 할머니가 오히려 관광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세모꼴 흰색 비닐집옆에 세워진 입간판을 보면 1981년부터 시위를 했다고 적혀있으니 장장 27년째 한자리에 있는 셈이다.
하얀 페인트칠을 해서 백악관이라 이름붙여졌다는데. 경찰차가 주둔해 있고, 관광객이 기웃거리고 있다.
할머니의 비닐집에는 각종 미디어에서 다룬 기사들이 복사되어 있었다.
아주 작은 몸집의 64살 할머니는 이제는 이도 몇개밖에 남지 않았다. 시위처이자, 자신의 집이기도 한 비닐집에는 방문자들에게 나눠줄 팜플렛이 복사되어 있고, 시위용 팻말이 조금씩 보인다. 한국인들이 다가가면 지난 1991년자 동아일보에 실린 자신에 관한 기사를 쥐어주며 "한국통일"을 외친다.
"한국통일"을 왜 그녀가 외치는가? 그녀는 "반핵, 무기감소, 평화주의자"다. 동족상잔의 한국의 현실은 피시오토 할머니에게 최고의 이슈가 될수밖에 없다. 게다가 북한의 핵무기 위협, 자국은 핵으로 무장하고 다른나라의 핵무기를 보아넘기지 못하는 미국의 이율배반까지..
"세계 각국에 반핵을 호소하고 싶었다. 여기 있으면 그것이 실현된다. 내가 직접 돌아다니지 않아도 세계를 상대할 수 있다"(동아일보 1991년 9월 26일자)고 인터뷰했으며 그녀가 이곳에 처음 자리를 틀 때부터 2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내용은 동일한 것 같다. 변한 게 있다면 그녀가 늙어간다는 것과, 그녀의 투쟁연한의 숫자가 늘어간다는 것 정도일까.
그러나 그녀의 고상한 신념과는 별도로 그녀의 삶은 말이 아니다. 시위처에는 낮은 깔개가 설치되어 있고, 체크무늬 작은 모포가 깔려있다. 그녀의 몸이 작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될 정도로, 그 비닐집은 아주 작고 볼품없다. 관광객들이 거지에게 동냥하듯이 비닐집앞의 통안에 동전이나 지폐를 던져놓고 간다. 그녀의 삶은 야생들쥐의 그것과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가 나눠준 한국기사에는 그녀의 웹사이트가 소개되어 있다. 그녀가 추구하는 이상향을 이해하긴 하나, 왜 그런 삶에 투신하게 되었을까? 그녀의 가족은 있나, 하는 궁금증이 일어서 그 사이트를 방문했다.(http://prop1.org/conchita)
그 웹사이트를 방문하고 나는 더욱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이 여인은 스페인 태생이다. 62년 미국에 이주했고, 66년 이탤리아 출신 남자와 결혼했다. 그녀의 결혼생활은 평탄치 않았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남편이 믿고 따르는 늙은 여자와 불화가 있었고, 아이도 출산하지 못하고 입양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는 스페인 영사관에서 비서로 일한 평범한 사회인이었다.
웹사이트를 통해서는 그녀의 삶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낼 수 없었다. 남편에게 계속적으로 위협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남편이 자신에게 나쁜 약물을 투입했다고 믿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어려움을 가톨릭관계자, 변호사, 경찰에 호소했으나 사회의 어떤 기관으로부터 진정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부잣집 옷장정리도 하고, 어린아이 돌보기 등 허접한 직업을 갖기도 한 그녀의 스토리는 소송에 걸린 풀기어려운 민사사건처럼 이리저리 꼬여있었다. 그녀는 정신병원에도 잡혀있었고, 몸 상태가 안좋아서 병원신세도 많이졌다. 그녀는 급기야 힘있는 사람들에게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한 듯싶다.
백악관앞에서 자신의 사연을 호소하다가 그때 백악관앞에서 1인시위를 하던 노만 메이어(Norman Mayer)를 만나게 된다. 노만 토마스는 1982년 경찰에 잡히고, 죽임을 당했다고 그녀의 사이트에 적혀있다. 어쨋든 그녀는 노만 토마스의 뒤를 이어 경찰과 정부를 상대로, 또한 전세계인들을 깨우기 위한 시위에 돌입한다. 시위 초기에는 윌리암 토마스라는 사람과 함께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가자 윌리암은 떠난듯 싶고, 그녀의 1인시위로 정착을 하게 된다.
그녀의 메세지가 개인에서 세계적인 이슈로 나가게된 이유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가 스페인 정부청사에서 일했고, 워싱턴은 또한 정치도시이므로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론 약물중독과 같은 경험이 있다고 하니 그런 것들이 동기기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는 "시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법정에도 섰고, 경찰의 폭력에도 주저앉지 않았다. 그리고 세계 사람들에게 미국의 부시는 악마이며, 거짓말장이라고 소리를 높인다. 히로시마의 원폭피해같은 것이 더는 없어야 한다며 반핵 평화운동으로 한몸을 바치겠다고 오늘도 겨울바람을 견디고 있다.
하키 스틱으로 지탱된 비닐하우스 안의 모습.
24시간 반핵 평화 시위한다는 입간판.
내 볼것과 즐길 것을 위해 집을 떠난 관광객들에겐 그녀의 시위가 좀 황당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저 동물원의 원숭이와 사진을 한장 찍는 기분으로 그녀를 곁에 세우고 셔터를 눌러대기도 한다. 그런 관광객을 나무랄 수는 없다. 관광객들의 그런 관심이 그녀의 존재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등 그동안 몇명의 대통령을 거쳤지만, 누구도 자신의 불러준 적이 없다면서 그들은 나의 존재를 무시하고 사람들의 돈을 살상무기 구입에 다 소비하고 있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그리고 소근거리는 소리로 그래도 부시보다는 클린턴이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콘셉션 할머니가 준 신문기사를 소중하게 보관하고 집에 잘 가지고 돌아왔다. 워싱턴D.C.에 갔을때 가랑비가 왔기 때문에 기사가 조금 젖었지만, 나중에 찬찬히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가방 뒷쪽에 간수했다.
그러다가 그 기사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함께 동행했던 이들을 수소문하였는데, 아쉽게도 그 기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사람도 없었다. 다음 검색에 보니, 지난 2005년과 2006년에 백악관 할머니를 다룬 글이 몇편 있었으나 만족할만한 것은 없었다. 그러다가 네이버의 어떤 블로거에게서 그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웹사이트 주소를 발견해서 좋아라 했지만, 내가 찍은 사진에 그 주소가 선명하게 나와있는 것을 오늘 발견했다.
어쨋든 그 할머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의 깊이는 그정도일뿐이다. 그럴리는 없지만 정말 핵무기가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그녀는 영웅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혹은 그녀의 신상에 심각한 일이 발생할때까지 그런 일에 경주하는 사람들은 할머니를 목적에 맞게 이용할 것이며, 백악관에서는 사람들 이목 때문에 그녀를 멀리 떼치지 못하면서도 매번 눈쌀을 찡그릴 것이고, 세계 최고의 권력자의 앞마당에 펼쳐진, 오물덩어리같은 그 비닐하우스를 보며 일반 사람들은 그 이중성에 묘한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할머니를 경외한다는 사람들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고귀한 일을 하신다"면서 추켜세우지만, 그 삶이 의미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인간세상에는 정말 별의별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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