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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요

맨하턴에서 길잃다..미동부 여행기(4)

911 테러 이후로 미국입성이 너무 까다로와졌다.

 

미국여행을 버스로 하게 된 것에 대해서 낙관적이었다. 적어도 비행기보다는 덜 까다롭겠거니 하는 믿음도 있었고 56명의 여행사 승객이니, 국경통과가 좀 쉽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나이아가라 국경에 도착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버스 전용라인에 대기하는데, 장사진을 선 버스들,,, 거의 10대 정도가 앞에 서있었고, 버스가 한대 해결되려면 최소 30분 이상씩 걸리는 듯 싶었다.

 

시원한 나이아가라의 풍경에 취한 것은 잠시, 모두들 참을 수 없을만큼 지루해진 다음(3시간 정도 차안에 갇혀있었다) 우리 차례가 왔다. 가이드가 설명하기를, 캐나다 시민권자, 영주권자와 최근 6개월내 미국을 방문했던 사람들 이외에는 모두 내려서 지장을 찍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개별 심사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차가 서자, 미국 이민관 두명이 탔다. 여권을 일일이 확인하곤, "당신은 내려서 이민국으로 가시오" 말해준다. 승객이 우물쭈물하면 두번이고 세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그들이 버스에서 내려섰나 확인한다. 그러곤 버스에서 내리면서, "화장실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일침을 놓았다. 바로 그전에 가이드는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화장실 사용을 알아서들 눈치껏 하라고 했었는데 말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3시간이 넘어가니, 사람들은 미국구경도 하기전에 지쳐간다. "응급"상황시에 이용하라는 버스 화장실 신세를 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민국에 내려서 검사받고 있는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밖을 내다보니, 걸린 차들이 한편에 서있다. 까만 트럭 주위로 경찰견이 뱅뱅 돌면서 냄새를 맡는다.

 

30여분이 지나면서부터 검사가 끝난 사람이 차에 타기 시작, 근 4시간여만에 국경 통과를 할 수 있었다. 검사를 일일이 받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그들의 개인적인 기록을 컴퓨터에 보관하는 등, 그 데이터 작업이 얼마나 방대할까? 미국이 점점 복잡해져간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셋째날 911테러의 현장 뉴욕땅을 밟았다. 그때의 검은연기와 우중충함은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수가 없었다. 특히 쌍둥이 빌딩이 있던 맨하턴은 여전히 빌딩숲이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그날이 바로 12월31일... 뉴욕 타임스퀘어 카운트다운이 있는 날이다. 새해이브가 되면 전국, 전세계에서 카운트다운에 동참하기 위해 모여든다 한다. 우리 일행은 아침일찍부터 길을 나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부터 올라갔다.

 

패캐지에 이 빌딩은 선택사항이었기에 우리는 무언가 볼만한 것들이 그 빌딩에 있으니 돈을 내고 가는 것 아니겠냐며, 모두 동참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우리가 본 것은 그 빌딩의 내용물이 아니라, 뉴욕의 전경이었다. 들어가는 것도 얼마나 복잡한지, 비행장 들어갈때처럼 금속물질이 있나 일일이 검사를 한다. 이 금속탐지기앞에서 엄마가 걸려 서시게 되었다. 두세번 해도 같은 소리가 나니, 흑인경비가 엄마 주머니를 수색한다. 그곳에서 나온 것은 알루미늄 포일. 그안에는 김이 있었다. 채식주의자인 엄마의 여행팁중의 하나였나 보다. 한식으로 나온 것이 입맛에 안맞을때 맨밥에 김을 싸먹으신다.

 

어쨋든 어렵게 통과하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한다. 빌딩내에서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나갈 수 없게 표시를 해놨고, 안내자가 일일이 인도한다. 우리가 간때는 아침나절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데도, 사람에 쓸려 숨을 쉬기조차 힘겨웠다. 엘리베이터도 한번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두번에 나눠타야 한다. 80층까지, 86층까지.

 

102층 전체 빌딩에서 86층에 오르니, 작은 선물가게가 있고, 사방에 뉴욕전경을 감상하게 만들어놓았다. 그날 안개가 뿌옇게 끼었고, 햇볕이 이제 막 솟아올라 맑지 않았다. 바람은 휑휑 부는데, 햇볕이 있는 쪽과 그 반대쪽이 완전히 바람맛이 달랐다. 가이드가 돌아오라는 시간이 급박하다고, 버스안에서 사귄 미쉘이 말해줘서 내려가기 전에 모두 화장실을 갔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 빌딩안에 화장실은 너무 작았고, 줄이 장사진을 서고 있다.

 

어렵게 올라가서 건진 사진치고는... 카메라 렌즈가 뿌였던 것 같다.

 

어쨋든 모든 것을 끝내고 내려오는데만도 또 줄을 서야 한다. 줄서기를 하는데 옆에서는 6층 정도를 계단으로 내려가는 방법도 있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건강하다면, 계단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뉴욕전경을 팔아먹는 미국사람들, 그 수익금은 모두 뉴욕시민들에게 가야 할텐데.

 

이스트 리버와 허드슨 리버에 둘러싸인 맨하탄은 섬이란다. 빌딩숲안에 있으면 비행기가 날아와 쌍둥이 빌딩에 처박혔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위해 항구로 나오니 많은 헬기가 있고, 낮게 날아다닌다. 아무래도 정찰기인듯싶다.

 

자유의여신상에 가는 배를 타고 나는 빌딩과 헬기를 쳐다보면서 그날을 한번 생각해본다. 하늘은 파랗고, 물은 넘실거리고, 도시인들은 빌딩속에서 저마다의 일에 몰두하는데, 몰아쳤던 그 굉음과 까만연기, 그리고 무너짐... 헬기를 포착하고 그를 동영상안에 담아본다. 아마츄어가 찍었다는 쌍둥이빌딩 폭파를 기억하면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배는 자유의 여신상 앞으로 나아간다. 한손에는 횃불을 한손에는 독립선언서를 들었다는 그 여신상은 가까이서 보니, 남상이다. 영어 이름은 Statue of Liberty  이니 여신이란 말이 잘못된 이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 그리고 참고로 자유의 여신상 진짜이름은 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세계를 밝히는 자유)란다.

 

화장실 이용료만도 약간 한적한 곳은 5달러, 조금 복잡한 곳은 10달러라는 맨하턴에 한인거리도 있었다. 약국, 한의원, 미용실, 식당, 식품점이 한국말로 이름을 걸어놓고 장사를 한다. 어느땅이든 한인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은 더이상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그중의 한군데서 점심을 한식으로 해결했다.

 

워싱턴에서에서부터 거쳐온 국회의사당, 링컨기념관 등 도장을 찍은 것에 대해선 일일이 말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자연사박물관에서의 "다이아몬드 사건"은 말해야 겠다.

 

가이드는 박물관앞에 내려주면서 이곳에 가면 46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찾아보라고 하였다. 일일이 다 볼 수는 없고, 중요한 것만 짚어주는데 그중에 하나였던 것. 그 다이아몬드는 가진 사람마다 불행한 일을 당해서 박물관에 기증된 물건이라 하였다.

 

46캐럿이면 얼마나 큰 것인지, 숨은그림찾기 하듯 보석을 찾아나섰다. 마침내 발견된 그곳에는 찬란한 빛이 빛나고 있었는데... 그건 사람들이 터뜨리는 후레쉬 불빛이었다. 작은 유리관안에 진열된 그 보석곁에는 그 빛을 담아보겠다고 생긴 사람마다 사진기를 들이대고 있었다. 나도 실시간으로 사진을 확인하면서 눌렀는데, 제대로 그 보석이 사진에 잡히지 않았다. 아마도 강렬한 빛을 조정하는 사진기술이 있어야 했나 보다.

 

우리 모두가 그 보석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갑자기 "물(언니)"이, "저건 이유도 아니다. 터키에 가면 온 박물관이 보석으로 뒤덮여있어. 오스만 제국이 세계 각국에서 보석을 빼앗았다는 거 아니냐...."이렇게 말을 시작하자, 우리 모두는 둥그렇게 모여서서 "그래??"하면서 놀랄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귀를 쫑긋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찬물이 쫘악 뿌려진다. "거 봐라, 너희들. 내가 유럽여행하면서 영국에서 머리통만한 다이아몬드를 봤다고 할때는 누구도 들은척도 하지 않더니, "물"이 보석 이야기를 하니, 그렇게 놀랍냐?"는 "나무(엄마)"의 외마디 소리였다. 46캐럿짜리 다이아는 머리통은 고사하고 병뚜껑보다 조금 더 컸었는데..

 

그러고보니, "나무"는 자주 머리통만한 다이아몬드 이야기를 하긴 했다. 나는 콧등으로 흘려들었을뿐이었는데, 나뿐이 아니라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모두가 "나무"의 이야기를 들었다 했다.

 

한번 말하니 모두들 반응이 없어, 반복했었는데, 결국은 이렇게 "나무"의 "화"가 분출된 것이다. 어른들이 두세번 이야기하는 습성이 왜 생겼나 했더니, 제대로 듣지않고, 동조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엄마 말씀을 무시하다니 "엄마의 유럽여행"에 우리 모두 배아파하고 있었던 걸까?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는 뮤지컬을 선택으로 보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겸, 우리들에게 "긴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몇시까지 돌아오세요.."에 녹초가 되어있어서 그런 자유는 기다렸을법도 하건마는, 우리 식구들에겐 좀 다르게 다가왔다. 맨타탄 5번거리를 장식하는 명품가를 구경하고, 기부문화의 선봉에 선 록펠러 센터를 두루두루 보고오라는 주문이었는데, 오전에 있는 힘을 다 소진한 것이 문제였다.

 

더구나 "꽃"이 속이 안좋다고 버스에 앉기만 하면 졸고, 깨어나면 얼굴이 해쓱해서 상태가 안좋아보인다. 록펠러에 다녀오라고 버스가 섰을때 우리 가족들은 누구도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세 노약자는 다른때도 버스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곤 했는데, 이번에는 나까지 그냥 가족들과 의리를 지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 자유시간인데, 꼬마 한두명과 운전기사, 그리고 우리 가족이 버스에 남았다. 운전사는 잠자리를 찾기위해 좌석을 헤매다가 맨앞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는다. 이번에는 맨먼저 버스에 올라와 있는(아예 내리질 않으니) 팀이 되겠구나, 회심을 미소를 짓는다.

 

2007년 마지막날이라 맨하탄은 점점 복잡해지는 것 같다.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는데, 하면서 눈을 감고 졸다가 일어나니 조금 심심해진다. 운전사가 잠시 잠을 깼다. "꽃"과 "별"이 일어나 함께 나갈까 한다. 그래서 보니 자유시간이 아직도 1시간 정도 남은 것 같다.

 

"꽃" "달" "별"이 함께 나섰다. 명품거리 쪽으로 가니, 백화점이 나온다. 이곳에 가면 각종 물건들을 볼 수 있겠구나 하고 들어갔다. 입구에서 손가락없는 실로 짠 장잡이 있어서 가격을 보니 70달러 정도이다. 살 떨리는 가격이다. 그런 장갑을 끼고, 다른 사람이 안알아준다면 억울할 것이다.

 

 맘마미아, 오페라 유령등의 뮤지컬이 공연되던 브로드웨이 거리.

  

 

 

 

어쨋든 록펠러 광장까지 왔다. 한폭의 그림처럼 담밑의 아이스링크엔 스케이트를 지치는 사람들이 있고, 광장이 인파로 북적인다. 이제 뉴욕사람 냄새를 충분히 맡았으니, 늦기전에 돌아가자면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날은 어두워지고, 경찰은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인파는 기하급수적으로 불기 시작한다.

 

가야할 곳에 경찰이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가지못하게 한다. 타임스퀘어로 가는 사람들을 일목요연하게 관리하기 위해 곳곳을 막아놓는다는 가이드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오전에 차를 받쳐놓았던 그곳을 향해서 밀림을 뚫듯이 헤치고 나아갔다. 물론 경찰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 사이를 하나씩 뚫고 나아갔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탑승할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다가오고... 2008년 뿔테안경을 쓴 젊은이들이 빵빠레를 울리며 우리곁을 지나간다. 차에서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서 차를 다시 타야하는지 그걸 심각히 듣지 않았던게 문제였다.

 

"꽃"은 그날 시들시들했고, 그래도 북미에서 오래 살았다는 젊은 "별"과 "달"이 그 모든 것을 기억했어야 하는데, "달"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때서야 록펠러 센터앞에서 만나자고 했던 가이드의 말이 떠오른다. 광장앞은 너무 복잡하여 버스가 설 여유가 없는 것 같았는데, 그런 선입관이 전에 탑승했던 엉뚱한 곳을 찾아가게 만들었던 것이다.

 

가이드에게 전화했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떠드는 인파 때문에 가이드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캐나다 핸드폰이라 그런가, 공중전화를 시도해본다. 그러나, 맨하턴에서 공중전화 사용도 안해본 사람에겐 어렵다. "별"이 시도하다가 포기한다.

 

나중에 이성을 찾고 조용한 데서 전화하니 그제서 조금씩 소리가 들린다. 많은 거리를 막아놓았기 때문에 탑승장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식당으로 가겠다고 했다. 식당의 주소를 듣고, 걸어가자 하다가(맨하턴의 거리는 사각형 번호별로 되어있다. 그렇다고 쉽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곳에 택시가 보여 무조건 뛰었다. 걸어서 찾아가려고 했던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는 걸 바로 깨닫게 된다. 택시로 거진 10분 이상 걸렸으니.

 

식당에 도착하니, 우리 일행도 버스에서 내리는 중이었다.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가이드는 얼음처럼 냉정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본다.

 

이 정도로 끝이면 다행인데,,, "꽃"의 얼굴이 말이 아니다. 아예 하얘져서 아무런 음식도 먹지못한다. 심하게 체한 듯싶었다. 2007년을 보내기 위해 술렁술렁인 맨하턴 거리에서 "꽃"은 쓰레기통을 붙잡고 속에것을 쏟아내느라 고생했다. 표정이 차가운 가이드는 별로 아는체를 하지 않는다.

 

그날의 고생과, 마무리를 하려면 아무래도 한편 더 글을 써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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