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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스 카운티 산책

어떤 우정

그녀에게는 캐나다 방문이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관광목적이 아니고, 아들을 “사지”에 버려놓고 돌아가기 위해서왔다.
그녀의 아들은 만13살. 한동안 부모와 떨어져서 이국생활을 해야 한다.

 

지난 여름 한국에 나가서 나는 또한번의 사고를 쳤다.

사촌오빠의 아들 둘과, 돌고 돌아 알게 된 선재를 맡아주기로 한 것이다.

지나가는 말로, 내 아이 보낼테니 맡아달라는 친구도 있었고, 우리 아들 그곳에 보내면 어떻겠느냐고, 힐끗 물어오는 친구남편도 있었지만, 유야무야 그 자리를 모면했는데, 어려운 속결정을 거쳐서, 나의 뜻을 물어오는 두 사람에게 나는 “노”를 할 수 없었다.

 

나의 그간의 경험이 나의 배짱을 두둑하게 했는지, 다시한번 도전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편과 의논한다는 밑자리를 깔기는 했지만, 이미 나의 마음속에는 이들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했었다.

 

남편을 여러가지 말로 구워삶아서 작년에 수속을 시작하여, 사촌오빠의 두 아들과 선재의 서류작업이 끝나서 지난 1월중순에 선재와 그 어머니가 먼저 도착했다.

 

선재어머니와는 전화로만 통화를 하였는데, 나는 그녀의 전화받는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얼마나 많은 궁금증이 있으며, 염려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녀는 그런 것들을 일일이 물어오지 않았고, 나는 일일이 토를 붙여 설명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만 챙기고, 인삿말을 잊지않으며,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전화속의 그녀를 직접 공항에서 만나서 우리집에 모시고 왔다.

 

공부를 잘하고 모든 일에 모범인 큰아들에 치여있던 아들에게 돌파구를 마련해주고자 했다고 한다.

 

그녀의 사촌동생과 나는 서울에서 두번인가를 보게 됐다. 그집과는 이런 저런 인연이 닿아있어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또 한번 덤벼보자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었다.

 

선재 어머니는 사촌동생의 소개로 우리집에 온 것을 무척 다행스러워 했다.
큰아들을 보디가드로  세 가족이 한꺼번에 왔을때는 페이슬리의 겨울이 빛을 발하고 있을 때다.

 

겨울에는 누군가를 오라고 할 형편이 못된다.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는 눈길은, 도로사정이 말도 못하게 좋지않아, 누가 온다고 하지도, 한번 다녀가라고 빈말을 하지도 않아서 그저 심드렁하게 겨울을 나게 된다.

 

그래놓고 보니, 선재네팀은 페이슬리의 겨울을 골고루 다 경험하고 갔다. 한치앞이 안보이는 눈길도 함께 헤치면서 다니고, 얼어붙은 호숫가에 가서 벌벌 떨기도 하고.

 

그런데, 볼것없는 호숫가, 강가, 눈쌓인 들판, 눈이 얼음이 되어 가지를 덮어 차갑게 빛나는 얼음나무, 낮게 가라앉은 하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좋아하셨다. 

 

선재의 형은 4일 동안 있다가 학교일로 서울로 돌아갔는데, 신선한(freshman)  대학1학년생답게 모든 일을 흥미로와 하고, 관심을 가졌다. 그러고보면 그런 적극성이 선재네 가정에는 있는 듯이도 보였다.

 

집에만 웅크리고 있으면 좋을듯한 날씨에도, 동네 한바퀴라도 도는 것을 좋아했고, 눈덮인 마을을 보면서,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사니 사람들이 그렇게 순하고 편안한가 보다 하면서, 추켜주었다.

 

나는 선재어머니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신이났다. 골동품도 좋아해서 주변의 상점을 데리고 갔었다. 오래된 모양이 특이한 쇠북종을 흔들어보더니, 그를 산다. 중고품을 파는 가게에서는 오랫동안 찾던 인형이라며, 태엽감으면 음악소리가 나면서 몇바퀴 빙그레 도는 소코틀랜드 소년이 서있는 인형을 집어들었다. 때가 꼬질꼬질 낀 것이 아주 오래된 것 같았는데,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것이라며 좋아했다.

 

나는 전연 관심이 없는 그런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그것 자체 보다는 그를 쳐다보면서 행복해하는 그녀의 미소에 더 빠진다.

 

아들이 어떻게 적응할 지, 그것만이 최대한 관심사였는데, 며칠이 지나고 나니 마음이 푸근해져, 이런저런 물건들에 욕심을 내게 된다며, 웃는다.

 

그녀는 그렇게나 좋아하는 음악소리나는 인형을 쇼핑을 하다가 다시한번 발견하게 된다. 이번 것은 중고품이 아니고, 반짝반짝 빛나는 새것인데다 한번 흔들면 눈가루같은 색종이가 쏟아져내리는 환상적인 모양을 갖고 있었다.
비싸보이는 그것이 50% 세일을 하는 이유를 보니, 산타할아버지 모양과 크리스마스 캐롤 음악이 들어있는 시즌이 끝난 물건이었다.
그러나 산타할아버지라고 해도, 빨간색 산타복을 입은 배불둑이 할아버지 모습이 아니라, 마치 천사같이 하얀색의 길게 퍼지는 겉옷을 걸친, 멋장이 산타였다.

 

“아니, 이런 것을 틀어놓고 들여다본단 말이에요?”
하는 내 질문에,
“잘 때 틀어놓으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만해도 행복하다”며 소녀같은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몇번이나 그 인형의 태엽을 감고, 둥그런 몸체를 흔들면서 눈이 소복이 오는 모습을 감상했다. 그것도 부엌의 불을 꺼놓고.

 

생각해보면, 그녀와 나는 너무나 다르지만, 그녀의 기쁨을 내가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녀는 우리집의 구조를 재미있어 했다.

함께 살면서도 따로 있을 수 있는 이곳이 너무 좋다며 아들이 있는 곳을 “별채”라고 불렀다. 딴은 그런 것이 복도를 사이에 두고, 각자 딴 살림을 할 수 있으니, 피곤할때는 따로, 또 먹을때와 이야기할때는 같이 모일 수 있으니 말이다.

 

폐가 될까봐 며칠만 묶고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다는데 그 먼곳에서 와서 그게 될말이냐며  조금 더 있다 가라는 우리의 권유에 쉽게 1주일을 연기했다.

 

이곳에 오기전에는 울기도 많이 했다면서, 이제는 오히려 마음을 놓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니, 나도 마음이 놓인다.

 

한국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오늘 반가운 목소리를 들었다.

“어째서 걱정이 안되는지,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아주 마음편하다고 하니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한다”면서, “남의 집에 맡긴 것 같지 않으니 어떻게 된일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산타음악인형을 틀고 흔들면, 페이슬리의 눈오는 모습이 생각난다고.

고맙다고 몇번이나 말하는 그녀에게 “앞으론 그런 소리 하지 마시라”며 그간 감사하다는 소리를 충분히 들었으니, 그만하셔도 된다고,, 그렇게 말한다.

 

시작이 조금은 순조롭다. 화려하기까지 하다.

 

어쩐 일인지 나도 많이 걱정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의 경험도 그렇지만, 나를 믿어주고 마음 편히 있을 선재엄마에게 좋은 것으로 돌려드리고 싶다.

 

선재와 또 새로 우리 가족이 된 재용이 재원이,,,
모두들 두려운 출발을 하고 있다.

 

집안의 곳곳에서 우리 아이들과 어울려 깔깔대는 그들을 보면서, 사람으로 인한 행복은 그 어떤 것보다 크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우리집에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5학년을 건너뛰고, 10학년까지 6명의 학생들이 있다.(와 많다!!)

 

선재어머니는 가시기 전, 아이들에게 한말씀 하셨다.

“너희들에게는 알지못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발휘되기를 바란다. 아줌마 아저씨를 부모님처럼 선생님처럼 따르면서, 잘 지내기 바란다.”

 

그녀가 말한 “잠재력”이 나에게도 있어, 짧은 시일내 끝나지 않을 나의 두번째 도전이 아이들에게서 좋은 열매를 맺기를, 기도한다.

 

부족한 것은 그녀와 내가 10일에 걸쳐 쌓은 우정의 힘으로 밀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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