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용이 재원이를 데리고 고등학교에 입학신청을 하러가는 길이었다.
2학기가 시작되는 내주 월요일부터 학교에 다니게 될테니, 상담선생님과 시간표도 짜고, 필요한 서류작업을 해야 했다.
아이들과 차를 타고 달리는데, 차밖으로 마치 처음 본 것 같은 황홀한 광경이 펼쳐진다.
요즘 며칠째 눈은 오지 않았고, 영하 10도에서 20도 사이를 오르내리는 햇빛비치는 쨍한 겨울 날들인데, 나무들이 눈에 쌓인듯이 모두 흰색으로 덮여있다.
눈은 아닌것이, 눈색과는 다르게 회색빛이 조금은 드러나는, 투명한 흰빛이다.
이 빛깔은 현실의 색이 아니라, 마치 꿈길같은 그런 빛이다.
먼데 있는 나무들이 백발의 건강한 노인들처럼 오롯이 솟아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진좀 찍어야 겠다면서 차를 잠시 주차했다.
뒷자리의 재용이가 그제서야, 아 나도 사진기를 가려올걸 이런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한장을 찰깍 찍었다.
가는 길도 바쁘고, 아주머니가 너무 센치한 것 아니냐며 흉도 볼까봐, 그날은 눈으로만 감상하면서 달렸는데, 아주 내 혼을 빼놓는 그런 겨울의 날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에 학교에서 식사를 도와주고 나온 길에 동네를 조금 돌았다.
도대체 나무의 정체를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런 색깔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먼숲속에는 못가지만, 길가의 어느 나무만 관찰하여도 되리라.
바짝 다가가서 보니, 말하자면 나무에 핀 성에였다.
나무에 있는 습기들이 밤사이의 차가운 온도에 몸밖으로 솟아오르면서 성에꽃을 피워낸 것이다.
초등학교 자연시간에 배운 그런 눈의 결정체가 가지 하나하나에 수만개로 얹혀져있다.
가지에 매달린 그것들이 한군데 무리를 지어서 이쪽을 바라보면, 마주서 있는 사람이 마치 꿈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좋아하는 계절에 "겨울"은 빠져있었는데, 이런 풍경이 이제서야 나를 잡으니, 겨울도 치뤄낼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 같다. 아침나절에만 펼쳐지는 순간의 파노라마라서 그동안은 나를 비켜갔던가.
아니, 말하자면 어쩌다 길을 나서면 군데군데 응달진 곳에 그런 무더기 나무들을 볼수는 있어서, 감탄을 하고는 했지만, 그 넓고 깊음을 알게 된 건, 순전히 요즈음의 일이다.
한낮의 햇볓은 이 얼음꽃의 결정체들을 녹이기도 하고, 뭉그러뜨린다.
그러나, 밤사이의 차가움은 이를 다시 일으켜세운다.
옛날 창문에 서렸던, 성에들처럼 그 섬뜩하게 아름다운 차가운 이미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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