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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루미 미리.

딸의 다이어트.. 성장통 앓는 딸

지난 여름 가족캠핑을 할때였다. 작은 조카들이 많아서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 교사들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갔다 했는데, 둘째 루미가 작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내게로 다가오는데, 내가 숨을 "헉"하고 들이쉬었다. 루미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둥글고 너무 커서, 갑자기 숨을 쉴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가 아마도 정점의 순간이었든 듯 싶다. 키가 큰데다가 살이 붓기 시작하면서, 약간 보기에 거슬리다 싶던 것이 작은 어린이들과 함께 있으니, 더욱 도드라져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몇주 후든가. 다이어트를 선언했다. 내게도 "맛있는 음식 너무 많이 만들지 말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단순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생활 습관의 변화"라고 스스로는 강조했다. 그것이 7월말쯤이었던 것 같다.

 

9월 새학기가 시작되고 점심은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그간 먹었는데, 사먹는 음식에 좋은 것이 없어서 스스로 싸기로 했단다. 그래서 같이 시장보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저녁 무언가를 만들어서 도시락을 싸놓는다. 가방에까지 넣어서 냉장고에 보관하고 그 다음날 아침 들고 나간다. 처음 한두달은 잘 모르겠더니, 지금은 누가 봐도 너무 말랐다고 걱정들 한다.

 

나쁜 음식은 한가닥도 입안에 안넘기고, 음식량을 줄이고, 운동을 매일 하고, 그걸 결심한 날부터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면서, 스스로 챙겨먹는다. 그전에는 친구들과 밖에서 외식하는 것 좋아하고, 치즈, 스무디등 느끼한 음식, 그리고 스파게티등 이탤리언 음식이 있으면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더니, 그런 것들도 모두 끊었다. 스파게티는 너무 많이 먹어지기 때문인지, 만들지말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너무 심하면 오히려 화가 되는 법... 여러 사람이 루미의 급격한 체중감량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활습관, 음식습관까지 모두 바꾸었으니, 같이 놀았던 친구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가 보다.

 

나도 음식을 대하는 그애의 태도가 달라져 내심 걱정중이었다. 음식을 너무 천천히 먹고, 식사도중 찬물을 두컵 이상 들이켜고, 먹는 양도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너무 드러내서 닥달하지는 못하고,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어느날 저녁 밥상머리에서 음식은 먹지 않고, 눈물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제가 평소에 잘먹는 수제비를 해놓고 불렀던 것인데, 나는 "음식이 먹고싶지 않으면 먹지마라" "아니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말을 해야할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애의 하는 말이, 요즘 학교에서 친구들이 자신의 먹는 것 때문에 성화들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너무 적게 먹는다" "이런 것은 먹어도 된다" 등등..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는데, 먹을때가 되면 내 눈치를 보는 엄마를 보게 되니, 갑자기 울컥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모두들 내가 예전으로 돌아가길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믿지않고 뒷얘기들을 한다"면서, "점심시간조차 아주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네가 너무 천천히 음식을 세듯 먹고, 조금 먹으니 친구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라며, 아마도  음식의 양을 조금 늘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당시는 너무 예민해져있어서 "네 방식이 틀리고 친구들의 지적이 맞다"고 대놓고 말하지 못했다.

 

얼마후에 둘째는 연이어 두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두번째 전화는 서로 다투는지 언성이 높아져 있었다. 그러더니 나와 이야기를하고 싶다고 한다. 두 친구가 한집에 모여, 아마도 자신의 이야기를 한것 같다는 것이다. 한 친구에게 전화와서 염려하는 소리를 해서, "괜찮다"고 했는데, 바로 다음에 같은 전화로 또 한친구에게 전화가 왔는데 그녀가 최근 친하게 된 스카일렛이라는 것이다. 스카일렛은 둘째를 도와준다고 점심시간에 여러 사람앞에서 "그렇게 먹어선 안된다"며 둘째의 식습관에 적신호를 켜주긴 했는데, 둘째는 그것을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카일렛은 자신의 말로 얼마전에 "거식증(eating disorder)"을 앓았는데, 둘째의 최근의 태도가 그런 우려를 느끼게 해준다고 했다는 것이다. 스카일렛은 "너 그러면 안된다"면서 여러가지 말로 둘째를 설득했지만, 이미 귀가 닫힌 둘째로부터 좋은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둘째를 대중들로부터 소외시키고, 뒤에서 쑤근대며, 잘못되가고 있는양 둘째를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버린 결과가 되는가 보았다. 둘째는 스카일렛에게서 예전에 휘둘림을 당했던 한 친구를 떠올릴 정도로 그녀의 간섭을 기분나쁘고 두렵게 생각했다. 나는 "네가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으면 그녀의 관심은 고맙지만, 현재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자는 의미의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조언했다.

 

그랬더니 둘째는 바로 스카일렛에게 문자를 통해 "이별"을 통지했다. 어쨋든 스카일렛과는 그렇게 정리했지만, 나도 더 심각하게 둘째의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은 아니지만, 음식의 양을 너무줄였고, 게다가 운동량은 늘려서 기본대사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음식의 양이 그렇게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둘째는 조금씩 그말에 동의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4개월간 지속적으로 오그라든 위장이 조금씩 그 자리를 넓히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이런 일들이 있고나서, 교사와 면담까지 하게 됐다. 체육선생이 눈치를 챈 것인지, 아니면 스카일렛의 귀뜸 때문인지, 상담선생은 둘째를 불러서 사정을 물어봤다. 그리고 "거식증"에 관한 자료까지 주면서 한번 살펴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후로 우리들과도 만나기를 원해서 어느날 학교를 방문했다. 둘째는 학교의 누구도 자신을 믿지않고, 자신을 "거식증" 환자로 밀어버릴려고 한다면서, 엄마만이라도 제편에 서있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나는 루미에 대해서 어느 정도 결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진 않았다.

 

체육교사, 상담선생, 루미 그리고 우리 부부... 이렇게 다섯이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루미는 최근에 겪은 "왕따" 경험 때문에 마음이 아팠는지, 눈물을 흘렸지만, 선생들과의 대화에 적절하게 응해주었다. 그리고 문제는 "음식양"이라는데 모두 동조했고 양을 늘리면 회복될 것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루미는 엊그제 그동안 안먹던 쿠키를 몇개 집어먹으면서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혼자 부르짖었다. 나중에 그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음식에 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해서, 그것밖에는 머리속에 없는 것같이 생각된다고 말했다. 나쁜 음식을 먹으면 안된다는 것, 음식물안의 영양소, 칼로리의 양, 무얼 만들어 먹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그것이 "16살" 소녀의 삶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단다.

 

한참 살이 올랐을때, 배고프지 않은데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고, 화장실가서 볼일을 크게 보는 생활이 언젠가는 "역겹게 느껴져"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살을 빼고 나면 좋은 세계가 펼쳐질줄 알았는데, 이제 살을 다 빼고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것"을 보니, 삶이 그런 건 아닌것 같다고 제법 철학적인 소리를 한다. 그렇지만 지난 여름의 악몽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덧붙인다.

 

나는 친구들과는 어떤지 물어보고 나서 "이것은 너의 성장통이다. 경험하지 않은 것보다 낫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계속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음식은 친구지, 적이 아니다. 음식을 규칙대로 먹을 필요는 없고, 네 몸이 원하면 적절한 시간이 아니어도 먹어도 된다"며 스스로 정한 규율에 얽매여 있는 그녀의 근간을 조금 흔들기 위해 노력한다.

  

둘째는 참으로 쉽게 크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다. 세딸중에 벌칙으로 "한달간 사적인 외출금지"를 받은 아이는 둘째뿐이다. 제 말로는 한 5번쯤 벌을 받았다는데. 큰애와 막내는 "집순이"로 문제만들 소지가 적은 반면, 사방팔방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둘째에겐 문제의 여지가 그만큼 많았던가 싶다.  컴퓨터를 좋아하지 않는 몇안되는 청소년중의 한명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써보라고 권했다. 

 

학교 스포츠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싶으나, 워낙 운동신경이 없어, 팀에 합류할 수 없다고 푸념하는 그애와 함께 "집에서 하는 요가교실"을 열까 계획중이다. 엄마아빠도 움직이게 만드는 둘째딸,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자신을 지적해줬던 친구들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읽힌다면서, 중용을 찾아간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고 말하는 둘째. 이제 조금씩 너그러워가는 것 같다. "극기"의 심정으로 했던 식단조절과 운동(집, 헬스센터에서 꾸준히 한다)으로 스스로 자만심을 가질뻔 했는데, 오히려 "몹쓸 병자" 취급을 받았으니, 마음이 아프기도 했을 것이다.

 

점심을 스스로 싸가고, 어쩌다 밥을 챙겨주지 않아도 아무런 불평이 없는 두 아이들 때문에 내가 한동안 편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런 문제로 불거질 줄은 몰랐다. 나는 루미의 잘못된 다이어트의 공범자이기도 하다.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생각의 속도가 조금 뒤쳐진 감이 있다.  그애의 생각의 뒤를 쫒아다녔다. 친구에게 분노하는 그애처럼 나도 분노해주고, 제 방법이 옳다고 믿는 그애에게 찬물을 끼얹지 않았다. 그리고 그애를 닥달하지 않고, 스스로 제길을 찾아내기까지 조금 둔했던게 오히려 그녀에게 더 나은 처방이 되었던 것 같다고 스스로 진단해본다. 그러는 와중에 인터넷의 도움으로 나도 많은 공부를 했다. "거식증"을 찾아보니, 무시무시한 병이든데, 그런 쪽으로 갔으면 어쩔뻔했나 아찔해지기도 한다. 

 

다시 보기좋게 살이오르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건강에 이상이 없으면 그걸로 만족해야할 것 같다. 가정의에게 가서 급격한 체중감소로 인한 부작용이 없는지, 한번 체크업 해봐야 겠다. 혹 궁금하신분이 있을까봐.. 7월말 키 174cm(정도) 67kg 정도였는데 현재 53kg이니 한달에 3kg이상을 뺀것이 되는 셈이다. 김명민이 20kg을 빼서 화제가 됐었는데, 그만큼은 아니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