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는 찬물을 한컵 들이켰다,라고 쓰려고 했다. "수"라는 이름을 생각해내면서 "수"가 "물수"임을 알리고싶어서였다. 그러나 "수"는 물을 자주 마시지 않는다. 따뜻한 차를 선호한다.
"수"는 올해 적절한 때가 오면, 태어난지 50주년을 맞는다. 최근에 언론에 오르기시작한 "100세 시대"라는 말이 왜 그렇게 아무런 반감없이 "수"에게 확 스며들어왔는지, 유심히 볼 일이다. 재고의 이유가 없는 완벽한 사회적 논의를 거친 학설로 받아들였고, 이제는 퍼뜨리고 있다. 100세 시대에 맞춰서 사회 구조를 변경해야 한다는 사회학자들의 의견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수"가 아는 몇몇 70이 넘은 어른들에게 "노인"이란 호칭을 붙일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은 청년들같다. 이런 모든 것이 100세 시대가 도래했음을 증언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100세 시대로 생각하면, 이제 인생의 절반을 살아내고 있는 "수"는 아주 어린 사람일뿐이다.
그러나 현실로 퍼뜩 돌아오면, "수"는 그리 건강체질이 아니다. 우선 가장 취약점이 치아이다. 몇개의 영구치아를 영구적으로 제거했다. 아이러니 한 것중의 하나는 왼쪽 위 어금니 하나와, 오른쪽 밑의 어금니 하나가 썩어서 최근에 치료하고 덮어씌웠는데, 사실 그 두 치아는 할일이 없는 치아였다는 점이다. 치아는 아래 위로 맞부딪쳐야 활동을 하는데, 왼쪽에 치료한 이 아래쪽으론 빈자리밖에 없으며, 오른쪽 윗 치아자리도 허당이다. 위쪽 치아와 잘 마주치게 교정해 줘야 하는 수고가 필요치 않아선지, "필링"을 하는 보조 치기공사 2명이 크리스마스 파티 계획을 심심파적으로 나누면서 치아교정을 하고 있었다. "수"는 그들에게 왕따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필링을 하지 않고, 그들이 생이빨을 뽑아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다. 그날 3시간에 걸친 치료끝에 5백여불을 지불하고 나오면서, 얼굴색이 새하애졌었다. 충치를 치료하지 않고 그냥 뽑아버렸다면, 돈은 더 싸게 먹혔겠다는, 우스운 생각도 했다.
다른 신체 기관도 치아의 상태와 비슷할지 모르겠다. 폐경이 다가오고 있는지, 매달 생리통이 극심해진다. 2011년의 마지막 생리는 거의 죽었다 살아났다. 몸속에 약을 밀어넣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결국 진통제 2알을 삼켰다. 그렇다고 해서, 통증이 가라앉진 않았다. 얇은 칼로 자궁속의 피를 떼내는 것과 같은, 그런 통증이었달까? 그런 고통이 몇시간 계속되니, 아픔 때문인지, 전날밤 꿈을 생각하면서 울음이 삐져나왔다. 생각없이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그날의 꿈이 마치, 현실에서 그렇게 한 것처럼 "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눈물이 났다. 아픔은 극도로 신경을 건들이면서, 폐경이 온다고 하면, 경축이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다.
"수"는 언제고 "피어있던 적"이 없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핀 적이 없이 시드는 꽃. "개화"의 참의미를 알지못하는 "수"에게 "시듬"은 그다지 슬픈 일은 아니다. 사회학자들의 말이 맞아서 100세 사회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면, 신체적 건강을 위해 투자해야 할 것이라는 "상식적"인 생각을 하곤 한다. 그 많은 남은 시간들을 그럭저럭 잘 보내려면, 튼튼한 육체가 필요하다. 바닥을 모르는 어떤 종류의 통증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그러므로 "수"에게 이공일이의 해는 "신체단련"의 해가 될지도 모른다.
교회가는데 왼쪽 하늘에서 기러기 다섯 마리가 일렬로 나른다. 그들과 엇갈리면서 오른쪽에서 여섯 마리의 기러기들이 또 날아간다. 겨울이면 사라졌던 기러기들이 아직도 하늘을 헤매고 있는 것에 신경이 쓰인다. 지구온난화인가? 아직도 땅에 먹을 것이 남아있는가? 지도자를 찾지 못한 떨거지 기러기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색하늘에서 우왕좌왕하는 기러기떼들은 이제는 "철새"라는 이름을 반납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새해 첫날 아이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대고 집에 남았다. 교회가는 것이 아직은 "엄마를 위해서"이다. "수"는 그런 아이들의 속마음을 읽는다. 편편치 않은 얼굴로 그들의 "홈스테이"를 용인한다.
"수"의 가족들이 새해 첫날 모두 모였다. 언제나처럼 정신이 없다. 2세들 10여명, 3세 1명, 1.5세 1세 10여명, 20여명이 넘는다. 35년도 넘은 캐나다살이를 하는 가족부터 5년쯤 된 신참까지 그리고 그들의 자녀와 자녀의 자녀까지.. 또 자녀의 여자친구, 남자친구까지.. 그날은 "세배"가 이 "세대"들을 하나로 묶어줬다. 절 한번 하고, 돈을 받는 "세배"는 2세들에게 "짜릿한 즐거움을 주는 한국풍속"일듯싶다.
세배 할 곳은 없고, 받기만 하신 "수"의 엄마 "김여사"께서 가장 많은 돈을 지출하셨다. 다행인 것은 자녀들이 다시 김여사에게 세배돈을 바쳤다는 것. 그날 저녁 "수"는 가족들과 김여사집에서 자면서 헤아려보니, "김여사"가 세배돈으로 받은 돈이 700달러가 되었다. 김여사의 지출은 그보다 조금 더 컸을듯. "수"의 아이들은 한밑천들을 잡았다. 어른들은 주고, 아이들은 거두어들이고. 결국 아이들을 위한 즐거운 행사였다.
"상처"라는 것은 무엇일까? 옛 기억들은 현재의 형편에 따라서 "파헤칠수록 아픈 상처"로 있기도 하고, "영광의 상처"로 훈장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가족들이 모이면, 누군가가 의미없이 던진 돌아 맞아 아파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재미로 건든 옛 기억들에 "수"의 언니 "금"이 불편해했다. 그 불편함에다 확인사살하듯 김여사가 한마디 거들자 분위기는 갑자기 싸아하니 식고 말았다. 애증의 관계에 있는 "김여사"와 "금"은 덕담들을 나누는 자리에서 얼굴을 붉혀야 했다. 그 모든 것의 원인을 "수"가 제공했다.
그 둘은 서로에게 만만하다. 그리고 음흉하지 않아서 서로의 감정을 잘 들킨다. "김여사"는 충돌할때마다 다른 자식들의 응원을 바란다. "금"은 늙은 엄마라도 "핸디캡 점수"를 주지 않는다. 둘이 부딪치면, 서로를 벼리는 말들이 날카롭다. 따로 보면, 그 둘같이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이들은 없다. 마음의 창고에 머물고 있던 과거는 이렇게 갑자기 회생해, 사람들을 찌른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던 기억중의 어떤 것들이 순간, 튀어나와 현실로 떠다닌다. 누구나 그 "상처"는 아프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상처의 본모습은 내가 감추고 싶은 내 모습이다. 사람들은 상처를 직시하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서로를 할킨다. 신정의 첫날,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