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는 머리칼을 훑어내린다. 손가락에 걸려 머리카락들이 뽑아져나온다. 머리감을때나, 빗어내릴때 빠질 머리카락들이 제명보다 조금 일찍 끌려내려온다. 수가 컴퓨터앞에 앉아 글쓰기란을 열면 보이는 네모난 글상자앞에서 하는 일이다. 때로는 머리카락만 훑어내리다 글쓰기창을 벗어나기도 하고, 몇자 끄적거린 것을 임시저장함에 담아놓기도 한다. 수가 한편을 끝낼때까지 머리카락은 책상위에 소복이 쌓이기도 한다. 머리카락을 훑어내리는 수의 습관은 글을 쓸때마다 수십장의 원고지를 꾸겨내버리는 글쟁이나, 담배꽁초를 재털이에 수북히 채우는 글쟁이들의 습관과 비슷할 것이다. 머리카락을 뽑아내는 행위는 가끔은 시원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수는 이럴때마다 "고민하는 척하는" 제 자신을 향해, 비소를 날리곤 한다.
"수"는 글쟁이는 아니다. 그러나 글과 가까운 삶을 살았다. 우선 대학때 전공을 "국문학"을 했다. 요즘엔 문예창작과도 있지만, 30여년전에는 창작을 염두에 둔 학생들이 많이 오는 곳이 국문학과였다. 그 대학교때 창작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이름도 거창한 "** 문단"이란 문학 동우회의 문을 두드렸던 기억이 새롭다. 만나자마자 반말을 하던 동기생 녀석의 눈빛과 "예의" "겸손" 이런 것들은 찾아볼 수 없는 첫 인사에 기선을 제압당했었다. 이미 그때부터 "문단"의 기괴한 분위기를 파악해냈던 것같다. 기억나는 것은 1학년 첫 중간고사기간이었다. 매일 출석도장을 찍다가 시험때였기 때문에 동우회방에는 들리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공부에 열중하다, 잠시 동우회 사무실에 들렸을때, 선배와 몇몇 동기들의 "그따위 공부는 뭐하러 하냐?"는 듯한 눈초리를 받았을때, 당황했었다. 그들은 단지 "수, 너 시험때가 되니 보기 힘들다" 이렇게 말해줬지만 말이다. 시험에 초연해보였던, 단발머리의 역사학과 선배, 짧은 고수머리의 공대생 형.. 그들의 기묘한 웃음을 등뒤에 받으며 동우회 문을 나섰던 날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사실 "동우회"라는 명칭은 수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말조차 "유아틱하게 여겨질만한 매우 무겁고, 고통스러운 분위기"가 **문단에 존재했었다. 왜 그리 무거웠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잘 알수가 없다.
대학4년간은 동우회 회원들을 통해서, 문학을 하는 것이 "평범"한 일이 아님을 깨달았고, 있을 것만 같은 무형의 가치들을 찾느라 시간들을 낭비했던 세월이었다. 또하나 알게 된 게 있다면, 창작의 문을 열수 있을만큼 수는 강하지 않았다는 것. 대학1학년때 시로 시작했던 문학 장르가 소설을 넘어서 평론으로까지 비화하고 있었다. 그건 아주 자연스런 수순으로 가장 쉬운 것같은 "짧은 시"로 시작하지만, 문학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면서, 시 창작 능력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다음엔 소설, 평론, 수필, 신변잡기로 글의 장르가 추락한다.
수는 운좋게도 "문단" 생활을 대학때 해보기도 했지만, 그 "문단"은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다. 신춘문예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긴 고시합격보다도 더 힘든 일이고, 또다른 "문단"에의 편입방법도 그리 쉽지는 않다. 수는 일찌감치 "창작"의 재능이 없음을 대학시절 동안 뼈저리게 느꼈고, 시도해보느니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었다. 수의 글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났어야 했는지도 모르지만 현대의 글쓰기는 많이 달라져가고 있다. "문단"에 이름을 올려놓아야만 글쓰는 장을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누구나 글을 쉽게 올릴 수 있다. 그 글이 대중성을 띄면 인기를 얻기도 한다.
대체로 글쓰기의 장을 블로그와 카페를 나눌 수 있다. 수도 이 장들을 잘 이용하고 있다. 블로그는 수와 가족들, 그리고 주변을 기록해놓는다는 생각을 갖고 운영해오고 있다. 무엇때문에 그런 일을 하느냐를 말하자면 복잡해진다. 그저 살고있다는 것을 세상의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은 건지 모른다.
"수"는 또한 몇개의 카페에 가입했고, 한개의 "카페"를 만들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카페는 오래가지는 않는다. 그들과의 만남은 어떤 식으로든 "알게" 되어야 유지가 된다.
작년에 가입한 카페중에 " 캐나다한인 문인협회" 카페가 있다. 캐나다의 문학인들이 주축이 된 카페이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수는 "문단인"은 아니다. 그러나 이 카페는 문단인이나, 일반인이나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다. 카페지기 이 선장의 권유를 받고 가입했다. 이 카페에 가면, 읽을거리가 많아서 좋다. 수도 가끔은 자신의 글을 올린다. 주로 예전에 써놨던 글중에서 고른 것들이다. 이선장은 인터넷 카페를 오프라인으로 더 많이 운영한다. 일일이 글을 써주십사 전화를 넣는다. 한동안 뜸하면 왜 뜸하냐, 전화를 한다. 수는 그런 이선장의 열심에 그 카페를 자주 드나든다.
수는 아무리 인터넷 글이라도, 너무 짧은 글에는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짧은 글보다는 친절한 긴 글이 매력적이다. 일반 카페가 아주 짧은 소통의 글들로 도배가 되기도 하는 세상에서 글을 좋아하고, 고민하는 이런 카페의 글들은 읽을맛이 난다. 이선장은 수에게 많은 사람에게 카페를 권하라 한다. 카페 주소를 올리는 점도 그래서다. 이런 점은 이선장의 독특한 부분이다.
카페지기들은 고민들이 많다. 회원들이 제멋대로이다. 다른 회원들이 읽을거리를 때맞춰 제공해주는 회원들이 많지 않다. 그런 글에 답글을 정성껏 달아주는 회원은 아주 고마운 존재이다. 카페가 조금 커지면 운영자들간에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토라진다. 컴퓨터 저 안쪽에 있는 회원들의 마음을 잡아낸다는 게 쉽지 않다. 차 한잔을 팔면 돈으로 들어오지만, 회원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인터넷 카페지기들은 돈도 들어오지 않는 글자카페에서 실망반, 기대반으로 서성인다.
수는 카페를 하나 만든 입장으로 이선장을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수많은 카페들이 명멸하는 이때, 온라인을 오프라인으로 운영할 수 있는 그 열심을 배워야 한다고. 그러면서, 오프라인에 약한, 자신의 "수줍음"을 다시한번 생각한다. 수의 카페는 "그레이 부루스 놀이터..오웬사운드와 인근지역"이다. 기회있을때마다 홍보를 해야한다고 했던 것은 이선장의 가르침이다. 말나온 김에 홍보를 해보자.
캐나다 한인 문인 협회 http://cafe.daum.net/koreansassocia
단편소설, 수필, 시, 자유로운 글쓰기등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입니다.
그레이 부루스 놀이터.. 오웬사운드와 인근지역 http://cafe.daum.net/greybruce
캐나다 온타리오 시골을 접할 수 있습니다. 오웬사운드실업인협회 커뮤니티가 되기도 하고, 지역 한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곳입니다. 오웬사운드와 연관있는 분들, 그리고 궁금한 분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만남의 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