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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일이.. 그냥

기타

"수"는 새하얗게 빛나는 창밖을 보며, 포근한 눈을 밟는 듯한 상쾌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았다. "박"은 마침 집안으로 들어서는 참이었다. 

"눈 다 치웠어?"

"야구모자를 썼더니 자꾸 눈을 가려."

벙거지를 찾아쓰며 "박"이 말한다.

"눈이 꽤 많이 쌓였어."

"올해 처음 눈치우는 거지? 기계로는."

"수"와 사이좋게 커피를 나눠마신 "박"은 나머지 눈을 치워야겠다고 나섰다.

아침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박"을 찾는 전화다.

"수"도 알고있는 "손"이다.

새해서설같이 낭랑한 소식이다. 오웬사운드 남자들이 기타반을 만들 예정이란다. "박"의 참여를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박"은 악기는 생각도 할수 없었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악기를 하나 정도 다룰 줄 안다면 얼마나 삶이 풍요로와질까, 그런 생각들을 나이들면서 하게됐다. 자식들에게 그 한을 풀었으면 했지만, 음악에 무감각한 아내를 만나, 그 꿈도 이루지 못했다. 아이들이 어떤 것을 성취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아내에게 달린 일이 아닌가. 마침내 지난 연말즈음해서 기타를 배우기로 결심한다. 일단 반대를 하고보는 "수"가 적극적으로 밀어준다 하였다. 


키치너에 간 김에 기타를 사기로 했던 계획이 무산되었었다. 인터넷 정보로 알게된 악기가게는 메인 도로에 있었다. 악기점 주변을 아무리 배회해도 주차할 곳이 없다. 헌 건물에 속한 주차장이 있는데, 이곳에 잠시 주차하고 갔다오자고 하자, "수"가 인상을 찌푸린다. 차를 견인해가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두어번 더 돌다, 결국 주차하지 못해서 악기점에는 가지도 못했다. "박"은 "불법주차"는 물론, 작은 범법행위를 하면 죽는줄 아는 "수" 때문에 맘이 상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오늘같은 경우도, 잠시 주차하고 갔다오면 될텐데, 저 먼 곳 어딘가에 주차하고 걸어오자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 "박"은 기어이 "혼자, 다녀야지... 에이. 기타 안사!"하는 볼멘 소리를 뱉아낼 수밖에 없었다.


"수"도 이날밤 일을 다 기억한다. 그날 온가족 뮤지컬 관람이 있던 날이었다. 이를 위해 아직 겨울방학을 하지 않은 막내딸도 학교를 결석하게 했던 꽤 공을 들인 날이다. 뮤지컬은 "Memphis"로 1950년대 미국이 무대다. 백인과 흑인이 결혼하는 것은 양반과 상놈이 결혼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던 그 당시의 일. 흑인 여자와 백인 남자의 사랑이야기였다.  "수"는 재미는 있었지만, 극에 몰입할 수 없었다. 식곤증이 올 낮시간 뮤지컬이라서가 아니라 이미 무뎌진 감성 때문임을 이날 느꼈다. 옆에서 졸던 "박"이 눈을 치뜨며 애매한 웃음을 웃는다. "수"는 이날 뮤지컬이라면, "나를 만족시킬만한 문화"임을 의심하지 않았던 "불변의 진리"가 허물어져내리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다행이었다면, 아이들은 좋아했다는 것.


뮤지컬을 다보고 나오니, 자동차에 주차위반 딱지가 얹혀있었다. 주차시간이 4시까지로 제한된 지역이었는데, 뮤지컬이 끝나고 나오니 4시 30분, 그 사이에 벌금이 부과되어 있었던 것이다. 주차할때 그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뮤지컬은 발코니 뒷좌석에다가 평일 낮시간으로 해서 저렴하게 봤지만, 주차위반 딱지를 받았으니, 복병은 언제나 뒤에 숨어있다.


그날 "수"에겐 한가지 해결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가까운 친구와의 오해였다. 그 문제를 끌고 다니려니, 속이 답답했다. 그래선지, 모든 것들이 심드렁하고, 오랜만의 온가족 나들이가 즐겁지 않았었다. 그런데, 키치너에서도 주차 때문에 "박"의 짜증을 받아야 했으니. 


기타는 며칠후 "박"의 품에 안겨졌다. "수"가 오웬사운드에서 사왔다. "수"에 따르면, 라미네이팅이 아니고 나무로 만들어진 괜찮은 기타란다. "박"은 내심 좋았으나, 크게 표시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아빠의 얼굴에 희색이 만면할 것이라 생각해서 기대했는데, 시쿤둥한 아빠 얼굴에 실망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타인의 배려에 호들갑을 피우며 기뻐하는 것, "박"이 배워야 할 것인지 모른다.


그날로부터 "박"은 기타연습을 위해 인터넷을 뒤져 교습법을 다운로딩했다. 기타가 생기기 전까진 두꺼운 박스종이로 기타를 만들어 코드를 집곤 했다. 가게에서 손님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실상 기타가 생기니, 코드를 잡는 왼손가락들이 아프다. 이 아픔들을 거쳐야 하는 것이라고 인터넷 기타 선생들이 일러준다.


"수"는 남편을 위해 맞춤고안된 것같은 "기타강습"이 내일처럼 기쁘다. 

눈을 치우고 들어온 "박"에게 소식을 전하자, "박"은 혼자 공부할 것이란다. "수"는 채근하지 않기로 한다. "박"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가닥이 잡힐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현대는 숙련된 사람들의 성과물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음악, 미술, 문학, 스포츠 등등이 특별히 그런 종류이다. 그러나 직접 하는 것은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스릴과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박"의 기타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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