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앉아서 야자수잎으로 모자를 만들던 청년, 나의 부탁에 포즈를 취해주었다.
돈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나?
이해하기 어려운 쿠바 화폐제도였다. 우선 여행객들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쿠바 화폐로 바꿀 것을 권유당한다. 이 화폐는 CUC로 쿡이라 불리는데, 이 돈은 현지인들이 쓰는 CUP(쿱)와 큰 차이가 있다. 인쿠르시브 여행이라도, 기념품, 팁, 옵션관광등에 돈이 들어가므로, 환전은 불가피하다. 캐네디언 달러 100달러를 주니, 91CUC을 준다. 대략 1달러대 1쿡으로 생각하면 된다. 캐나다의 동전 1달러짜리와 1쿡의 동전이 비슷하게 생겼다. 8각형의 모양과 크기가 같다. 마치 캐나다 돈 모양을 본뜻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세계적으로 동전의 모양이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만.
지금부터 외국인 통용 화폐 CUC는 쿡으로
현지인 통용화폐 CUP는 페소로 부르기로 하자.
우리들은 팁으로 1쿡을 지불하곤 했다. 식당에서 웨이트레스들에게, 호텔룸의 탁자위에 매일 아침 1CUC를 올려놓는다. 그것이 얼마큼의 가치인지는 잘 모르면서 말이다. 약간의 사전정보는 있었지만, 긴가민가했다. 1CUC의 화폐가치는 1CUP의 24배쯤 해당한다 한다. 그러니 팁치고는 꽤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쿠바의 문제점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화폐와 현지인들의 화폐가치가 너무 큰 차이가 난다는 것, 아니 한 나라에 두가지 화폐가 동시에 통용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불안의 소지를 안고 있다.
쿠바를 떠나오는 날, 우리를 안내했던 가이드는 역시나, 총명하고 선한 눈빛을 소유한 중년의 남자였는데, 여러가지 쿠바에 대한 이해를 관광객들에게 들려주었다. 그에게 쿠바의 화폐제도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그는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잘 들으라는 말을 곁들이면서.
우선 그의 전 직업은 교수였다. 그는 매달 500 페소를 받았다. 그의 말로는 500페소로는 살기에 충분하지 않다 하였다. 그래서 최근에 직업을 여행관련업으로 옮겼으며, 앞으로 통화제도가 안정되면 다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싶다고 하였다.
화폐제도에서 쿠바의 불안정을 읽을 수 있었다. 관광지로 개발이 되면서 외국자본이 몰려오면서, 외국돈을 챙겨야 하는 정부로서 고안한 화폐제도로 보인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집과 먹을 것을 주고 병원비, 학교등을 무료로 제공해준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살기에 충분치 않다고 쿠바인들 너나나나 말하고 있는 듯싶다. 쿠바의 집들은 문이 떨어져나간 것도 많고, 보수하지 않아 지저분한 건물들이 즐비했다.
가이드하는 전직 교수가 받는 월급은 쿡으로 환전하면 겨우 20쿡을 조금 넘는다. 그러니 캐네디언들이 던져주는 1쿡의 가치가 이들에게 엄청 크다는 말이다. 물건을 살때 우리는 쿡으로 지불했는데, 물가는 캐나다와 비슷하다고 보여졌다. 초코렛, 음료수, 기념품등의 가격이 그러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월급은 조금 받고 물가는 그렇게 비싸다고 할때 무언갈 사는 것이 쿠바인들에게는 큰 출혈을 의미한다. 여행을 다녀와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안 사실은 쿡으로 지불해야 하는 물건과 페소로 지불해야 하는 물건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현지인들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일 것 같다.
캐네디언들중에는 민간인들 집에서 여행기간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쿠바에 갈때마다 여행가방에 이곳서 보면 조잡한 물건들, 거의 1달러 스토어에서 파는 물건들을 한보따리 갖고 간다. 쿠바인들에게는 그런 일상용품이 귀중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들도 그런 정보들을 전해들었다. 각자 학용품, 옷, 일상용품등을 챙겨떠났는데, 주변에서 눈이 마주치고 한마디라도 해본 일꾼들에게 그런 것들을 나눠주었다. 그들은 대부분 기쁘게 그 물건들을 받았다.
전직 교수인 그가 한말을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는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 웨이터, 웨이트레스등도 대부분 대졸자들이며 엔지니어, 학자등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격변하는 경제의 물결 아래서, 그들은 여행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직업으로 전환하고 있는 듯 싶었다. 쿠바의 대학은 전부 무료이며, 심지어 기숙사까지 정부에서 지원한다. 대신 졸업하고 2년간 최소의 돈을 받고 일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들은 근 10년간 공부하고, 외국에 나가서 2년간 봉사한후 나라의 병원에서 일하게 된다. 쿠바의 영아사망률이 선진국처럼 낮고, 장수국가인 것도 의료 제도가 잘되어 있어어인 것 같다.
위 사진은
웨이트레스들이 여자들에게 건네준 크리넥스로 만든 종이꽃.
밑의 사진은 호텔에 놓여있던 하트 모양의 타월과 무궁화꽃과 비슷하게 생긴 생화.
남자정원사들은 마음에 드는 여자들에게 이 꽃을 따서 건네주기도
했고, 야자수잎으로 만든 꽃을 건네주기도 했다.
꽃으로 인사하는 쿠바인들이다.
쿠바인들은 음악을 좋아한다. 예술적이고, 낙천적이다. 그런 모든 것들은 기후와 자연환경에서 오는 것같다. 기록적으로 추웠던 날은 가이드 말로 0.1도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건 자신이 태어나기 전이며 몇년전 영상9도가 가장 혹한이었다고 했다. 자신은 그날의 기억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캐나다에서 온 우리들에게 "물이 얼어서 차가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정말이냐" 고 물어왔다. 자신의 꿈이 있다면 눈이 내리는 캐나다땅을 한번 밟아보는 것이라 하였다.
물자활용에 뛰어난 점도 쿠바인들의 장점이다. 야자수잎으로 모자를 만들고, 관광객들이 먹고 버린 빈깡통을 엮어서 장난감, 모자등을 만든다. 심지어는 깡통에서 나온 고리를 모아 지갑을 만들어 파는 것도 보았다.
남국에서 나는 수많은 씨와 열매로 목걸이, 팔찌, 반지등을 만들어판다. 또한 나무등을 이용한 조각품도 성행하고, 천연색이 많이 들어간 미술품도 거리곳곳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주부들도 북과 몇가지 악기를 들고 모여앉아서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은 흔하고, 경제가 세계적 부와 비교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행복해 보이는 민족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쿠바의 아주 소소한 한부분만을 보고 판단하는 우를 범할수 있다는 생각에 말이 조심스럽다.
다만 한가지, 캐네디언들이 쿠바를 최고의 휴양지로,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꼽고 있는 이유중에는 현지인들이 팁을 주든 안주든, 대단히 친절하고 안전한 데 그 큰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무언가 도와줄 필요가 있는 나라, 그리고 그 도움을 자존심 앞세우지 않고, 잘 받아들이는 못사는 형제같은 나라가 쿠바가 아닐까. 대놓고 구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으면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고나서 그에게 팁으로 1쿡을 주기도 했다. 미안한 마음을 추수리려는 마음으로.
쿠바인들은 미국과 캐나다로 망명을 하기도 한다. 아니면 불법체류로 살기도 하고. 정식으로 비자를 받아 떠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극히 일부의 사람들뿐이라고 또다른 가이드가 말했다. 외지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을 "젖은 발"이라 부르고 외지에서 잘살고 있는 사람들은 "마른 발"로 부른다고 귀뜸해주기도 하였다.
쿠바인들중에 영어를 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영어를 하는 듯해 몇마디 물어보면, 엉뚱한 대답이 돌아오거나, 그저 웃기만 하는... 캐나다 이민자로서 우리가 겪었던 그런 표정들을 보여줬다. 누구나 친절했지만, 언어의 장벽에 막혀 더이상의 대화를 시도할 수는 없었다.
플리 마켓앞에서 땅콩을 팔던 아저씨. 나는 그가 들고있는 것이 시가인줄 알고 사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얇게 말아올린 하얀종이 속에 땅콩이 들어있었다. 어렵게 마지막 1쿡 어치의 땅콩을
팔아치운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매일 들리는 부페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웨이트레스와 친해졌는데, 그녀는 영어로 농담까지 잘 받아줬다. 언제나 우리팀을 위해서 자리를 만들고 서빙했으며, 헤어질 때는 해와 달에게는 친정아버지를 보내는 사람처럼, 그렇게 약간의 물기까지 비췄었다. 그레이스라는 그녀는 임신초기였는데, 관광객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진심으로 대해주는 듯해서 우리는 그녀에게 여러가지 선물과 팁을 놓곤했었다.
그것이 문제다. 그들의 친절이 관광객의 주머니 때문에 그런 것이냐, 아니면 그들의 품성이냐 하는 문제. 그런 것들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나는 자주 멈춰서서 그런 문제를 골똘히 생각했다. 1쿡으로 맺어진 룸 메이드와의 마지막 인사를 이야기하자. 어느 호텔에나 가면 우리들은 1달러를 책상에 놓고 나온다. 그것이 청소하는 사람들에게 가고, 그들에 대한 우리들의 인사표시다.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본적이 없고, 다만 "의무적"으로 그런 일들을 했을 뿐이다.
이번 쿠바에서는 조금 달랐다. 저녁즈음 방에 들어가보면, 침대위에 근사한 학 한마리가 올라앉아있다. 하얀 타월로 메이드가 만들어놓은 것이다. 또 어떤 날은 하트 모양으로 타월이 놓여있고, 베드 스카트로 주름진 모양을 연출해놓았다. 마치 눈에 안보이는 그녀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룸을 왔다갔다 하면서 그 메이드들을 만나게 되기도 하였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얼굴색이 까만 여인이었다. 떠나기 전날에는 완전한 문장은 아니지만, 좋은 여행이 되었기를, 서비스가 마음에 들었냐면서 다음에 또 오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짧은 노트까지 얹어있었다. 우리를 기억해주는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날, 오지방문의 불발로 나눠주지 못한 노트와 볼펜, 그리고 가져갔지만 입지 않았던 잠옷과 예쁜 속옷, 남편의 티셔츠 등을 사이드 테이블에 놓았다. 얼굴을 자주 보진 못했지만, 그녀에게 주고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짐을 빼면서 보니, 복도 끝에 그녀가 서있다. 그래서 그냥 갈까 하다가 그녀를 불러서 보여줬다. 우리가 남긴 물건들을. 그랬더니, 너무 고마와한다. 나는 볼펜 한자루 주는 것이 영 쑥쓰러워 그동안 그 물건들을 끌어안고 있었는데, 그녀가 고마와하니, 잘한 것 같았다. 나중에 보니, 우리 팀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메세지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면 어떠리. 이렇게 1쿡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크나큰 역할을 하였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바라데로 마을을 방문했을때, 화장실 사용료가 1쿡이었다. 그리고 바로 거리로 나와서 관광용 마부와 흥정하는데 그 가격도 겨우 1쿡이었다. 쿡의 가치는 실제의 화폐경제와 조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싶었다. 호텔, 정부가 운영하는 것들이 그나마 쿡의 가치와 실물의 가치가 설득력을 얻었다. 경제를 모르는 이가 경제 이야기 하려니, 이렇게 더듬거린다. 내 말은 화장실 사용료는 10센트 정도였어야 그나마 마차 이용료를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7일간 묵었던 14127호. 호텔에서의 신분증 역할을 하였다. 손목에 파란띠와 호텔번호만 있으면
만사형통이었다. 우리방을 들락거리며 청소해준 그녀의 모습을 담았다.
관광사업도 외지에 있는 사람들이 달러를 보내와 시작하게 되었다는 말도 들었다. 쿠바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좋아하지만, 현재의 경제상황 때문에 외지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우리는 캐나다 브램톤에서 살다왔다는 또한명의 쿠바인을 만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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