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목소리를 한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들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언니와 전화로 연결된 사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언니에게 제가 할수 있는 일은 육성보다는 이런 “문자질”입니다.
용서하시고 나의 편지를 받아주세요.
얼마나 아플까요?
얼마나 힘들까요?
얼마나 무서울까요?
어려움 가운데서도 1인 다역을 해내며, 온 정성을 쏟아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중학교 검정고시로부터 시작된 언니의 새 인생, 그것 자체가 섬뜩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3번 탈락의 아픔을 겪은, 고등학교 검정고시 통과, 그리고 시인 등단까지. 인생 후반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아내는 사람을 찾는 것, 쉽지 않은 일이지요.
세상 살면서 밀린 숙제를 하듯, 어린날 하지 못했던 그 공부를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내고 있었지요.
형부가 아프시니 간병인 역할도 해야했고, 분식점 경영도 도와야 하고.
멀리서 언니를 생각만 해도, 불가능한 걸 개척해나가는 불굴의 여전사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통사고가 웬말입니까?
무릎관절 수술받은 그 아픈 다리를 다시 다쳤다는 말에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가족이 함께 한 자리에서, 당한 일이라니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이들의 참담했던 마음들이 전해져, 소름이 돋습니다.
셋째언니는, 언니의 사고를 한국방문 첫째날에 봤다지요? 그 언니 또한 긴 병 앓듯, 그 고통의 시간들을 견뎠다 전해듣습니다. 그리고 예기치 않게 사고 당시 운전대를 잡았던 그는 어떤 마음일까요? 언니로서는 "원망"조차 자유롭지 않은 그런 상황을 견뎌냈어야 했을테니, 또 얼마나 힘겨웠겠습니까?
인생은 언제나 정해진 것처럼 나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즐거운 가족의 재회”가 이렇게 “비극”이 되는 순간들도 있음을 이번 사고로 저희는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언니가 쓴 “전성시대”란 수필 읽었습니다. 오래전에 전해받은 것인데, 이제서 제 소감을 말하게 되네요. 언니는 시인이지만, 수필, 산문도 무척 정제되고, 간결하게 잘쓰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문과를 졸업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언니의 “총애”(?)를 받고있는 동생으로서, 사실은 저보다 언니가 훨씬 소양이 있고, 감성이 풍부하며, 필력 또한 있다고 보여집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언니안에서 굴려져, 익을대로 익어 잉태되기를 기다리는 언어가 언니에게는 많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전해듣기로는 그 몸으로도 휠체어를 타고 학교 시험도 봤다고 하니, 그 “집념”앞에 할말을 잃습니다.
방송통신대학 문화과 3학년인 언니에게 공부는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언젠가는 듣게 되기를 원합니다.
남편은 자주 그런 말을 합니다.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했다는 것은 정말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라고. 떡뽁이먹고, 친구들과 다방에서 수다떨고, 술집에서 시덥잖은 주제로 심각히 토론하면서 보냈던 우리 세대들은 사실 대학에서 무슨 공부를 했는지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들어가긴 힘들었지만, 나오긴 쉬웠던게 한국의 대학생활이었지요.
언니의 살아있는 지식들과, 삶의 지혜들이 빛을 발해야 할텐데.. 마치 이렇게 아픈 날들이 끝도없이 이어질까봐, 두렵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한치 앞도 못볼뿐 아니라, 먼미래를 보는 눈도 없지요. 언니가 공부를 놓지 않는 건, 먼 미래를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니의 다리가 다 낳고, 학업을 다 마칠 그날이 분명히 올 것이에요. 아니,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한 언니의 삶은 현재 그 자체로도 빛이 납니다. 어느날, 언니를 눌러왔던 “배움의 갈증”이 해갈되어, 남들에게 퍼주고 싶은 “지식의 공여자”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엄마 보고싶어” 하면서 전화선으로 울었다는 동생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끔은 어린애같았던 언니를 떠올리며 눈물이 지어졌습니다. 엄마는 인터넷을 하시지 못하지만, 인터넷이 모든 언어들을 날라준다는 사실은 알고 계십니다.
언니가 아픈 동안, 엄마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제가 재빠르게 전송하겠습니다. 언니에게는 누구보다도 엄마의 등두드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지요.
그리고 언니의 쾌유를 바라는 많은 숫자의 자매들을 기억하세요. 자매들의 가족들도 기억하세요. 병문안 한번 가보지 않고, 감히 위로의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마음은 장소, 거리에 제한없이 전해진다 믿습니다.
일분일초를 아까와하며, 온몸을 불살랐던 언니.. 불가항력으로 잠시 쉼을 갖게 되었네요. 아픔은 아직도 너무 클테고, 그만큼 절망의 폭도 넓겠지만, 재수술한다는 소식이 있다니, 우리 그걸 붙잡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언니..
이 글 드리고, 언제 한번 전화 드리겠습니다. 어눌한 말솜씨로 언니를 잘 위로할지 걱정이 되지만, 상태가 어떤지, 견딜만 한지, 전망이 어떤지 그런 것들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우리들의 형편상 십시일반 정성을 모았습니다. 엄마는 사랑의 힘만큼 더 많이 보태셨고, 미원이네는 재력의 힘만큼 더 많이 보탰습니다.^^ (물론 미원이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했지만요. 아마도 한서방의 후원인 것 같습니다)
언니, 간병인을 고용하는데 쓰시든지, 유용하게 사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니의 쾌유를 바라는 걱정스런 눈빛의 자매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힘을 내세요.
다른 가족들께도 안부 전해주세요.
동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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