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과 1월초에 오지 않았던 눈이 한꺼번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눈이라, 반갑기까지 했다.
그러나 역시 눈은 만만치가 않다.
조신하게 움직였다.
지지난주 일요일 낮에는 교회를 가다,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 차를 돌렸다.
그런데, 또 햇빛이 살짝 보이기도 해서, 다시 목적지를 향하여 차를 돌렸다.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 혼자, 요동을 치다, 결국, 길을 빙 돌아서 가게쪽으로 돌렸다.
집으로도, 교회로도 가지 않고, 가게로 가서 남편의 차를 타고 함께 퇴근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초대받았던 집에는 가지 못하겠다고 연락했다.
눈이 발을 묶은 것이다.
월요일 저녁, 눈이 휘몰아쳤다. snow squall 경보였다. 스노우 스콜을 뭐라 말할까. "눈돌풍" "눈폭풍" "폭설"... 눈과 바람이 만나 만들어내는 자연조화다. 그저 눈이 오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깔린 눈과, 하늘에서 오는 눈이 서로 만나, 휘말려 춤추는 것.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8시 가게 눈닫고 오면, 평소 같으면 9시쯤 돌아온다. 문닫고 정리 시간이 길어지면, 10분 정도는 봐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9시 30분이 됐는데도 소식이 없다. 10시까지 오지 않으면 경찰에 연락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면서 마음을 졸였다. 9시 40분쯤 남편이 도착했다. 그의 사연인즉슨, 돌아오는 길에 눈에 빠진 차속에 할아버지가 있어서 그를 도와주고 오느라 그렇게 늦었댄다. 차문도 안열리고, 할아버지가 움직이지 못하셔서 다른 차를 세워, 함께 할아버지를 차속에서 끌어내고, 태워서 모셔다드렸단다. 텍스트로 서로 알게 된 아이들은 "스노우 영웅"이라고 아빠를 추켜주고 난리다.
그전날 막내와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눈에 빠진 차를 보며, 만약에 저런 곤란한 사람이 있다면, 멈춰서서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라고. 지나친 그 차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막내가 그런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나치는 것은 "위법행위"라고. 나는 그때까지는 그걸 몰랐다. 나의 "친절"이거나 사람들의 "친절"이지, 그것이 "의무"인 줄은.
예전에 잠시 눈에 빠졌을때 내 곁을 지나치던 차들이 상당히 많이 멈춰서서, 도와주겠다고 했던 사실이 상기됐다. 내 차를 지나쳐서 갔던 큰 트럭은 눈길에 그 차를 후진하여, 내 차 곁으로 와서 정말 놀랬었다. 그런 교육을 받고, 그 받은 교육대로 행동하는 캐네디언들이었음을. 지나친 사람들중에는 "나와 닮은" "개입"되기를 싫어하는 많은 이민자들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도움을 주기보다는 받기에 익숙한... 이 말을 쓰니 생각난다. "나는 당신에게 큰 도움을 줄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섰다"는 어떤 여자가. 이제는 그 여자를 본받아야 할때가 됐다 싶다.
어쨋든 그런 이야기를 한 후에 바로 그런 상황을 맞닥뜨렸고, 남편은 곧바로 실천해서, 한 할아버지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화요일, 이날은 학교도 스노우데이였고, 하이웨이가 통제되는 본격 스노우 스콜이 있는 날이었다.
온 가족이 일로부터 면제받아, 뒹글뒹글 놀았다.
이 정도 눈때문에 피해를 당했으니, 수요일쯤은 "심정상" 괜찮아야 했다.
몇가지 볼일이 있었다. 오웬사운드로 출타했다.
요즘 건강한 먹거리에 조금 신경을 쓰기 시작한 막내의 부탁대로 과일 여러종류를 샀다.
식품점에서는 플라스틱 백을 돈을 받고 판지가 오래되었다.
알뜰한 주부들은 자신의 쇼핑백을 들고와서 물건을 담아간다.
나는 물건을 살때만 쇼핑백이 생각난다. 아직도 전업주부가 아닌 것만 같다.
그렇다고, 집에 많이 있는 플라스틱백을 사고 싶진 않다.
그래서 그냥 "알로" 차에 담아올 때가 많다. 과일과 야채등을 살때는 그런 것들을 담는 투명 작은 플라스틱백을 사용한다. 작은 물건들을 그것으로 대충 갈무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날 백 2개를 주문했다.
그런 생각 조금 했다.
만약 차 사고라도 난다면, 내가 산 물건이 중구난방 흩어져서 정신없겠다는.
그때쯤 막 내려퍼붓기 시작한 눈때문이었으리라.
어쨋든 2개의 큰 봉투에 식품들을 깔끔하게 담았다.
가게 물건 사기, 피아노 배우기, 수요모임, 실협회장과의 짧은 만남등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마지막으로 애완동물 가게에 들러서 막내딸의 애완동물 2마리를 위한 "밥"을 사기만 하면 오늘의 미션은 완성이다.
애완동물 가게에 들렀을때, 눈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 같다.
흰색 도화지에 흰색 페인트가 뿌려지는 것이라 할까?
white out 이었다. 온통 하얘서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그런 날.
남들처럼 비상등을 켜고 엉금엉금 기어서 가고 있었다.
오웬사운드를 떠날때부터, 그런 갈등이 있었다.
도시내에서 이렇게 흩뿌린다면, 벌판으로 가면 더 심각해질 것인데.
아무래도 언니네 집에서 하루 묵어야 겠다, 는 기특한 생각도 했다.
책임을 나눠지려는 의식이 발동해, 남편에게 전화로 의논했다.
아무래도 집에 못갈것 같은데. 언니네서 자고 갈까?
그래? 여기는 괜찮은데. 알아서 해..
나는 "알아서" 집으로 가는 쪽으로 차의 핸들을 잡았다.
그래, 천천히만 가면 큰 문제없어. 급한 일도 없고, 천천히 가는 거야.
정말 요즘 눈이 많이 온다.
"눈"이 얼마나 대단한가, 한번 글을 써야하는 것 아냐?
사진은 어디서 찍지?
눈올때 어디 멈춰설 곳도 없고, 눈을 찍어 올리는 게 가장 힘든 일이야.
아직도 집에 도착하려면, 멀고도 먼 길,
좌회전 거리에 개스바가 있었는데, 앞서가던 두어대의 차가 그리로 빠진다.
개스 때문이 아닐거야. 조금 쉬어가려는 거겠지?
이런 날은 그래야 하는 건지도 몰라. 근데 쉬어봤자, 집에 가는 시간만 늦어질텐데. 나는 그저 가보자.
앞서가던 차가 없어지자, 하얀 벌판이 내 앞에 있다.
오른쪽 시야로 보이는 약간 푸른 나무들이 도로 경계인가 해서 쫓아갔더니, 도로위 훨씬 너머에 있는 나무들이다.
도로가 어딘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얼마나 당황하고 운전하기 힘들었는지, 오늘 집에 도착하면 글을 써보자.
개스바에서 얼마 오지 않았다.
천천히 달리고 있었는데, 차가 더이상 나가지 않는다.
눈이 많이 오면, 차가 나가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차가 기우는 걸 느낀다.
그때서 화들짝 정신이 든다.
내가 빠진 거구나.
왼쪽 차문을 연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재빨리 끊었다.
오른쪽 문도 힘겹게 열린다.
불어오는 바람과 눈에 부딪쳐, 문이 자꾸만 닫히려고 한다.
무릎걸음으로 걸어 가방과 전화기만 가지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고선 보니, 차가 기우뚱, 그리고 그 밑으로는 꽤 깊어보이는 언덕이다.
그러니까, 내가 중앙선을 넘어서 왼쪽 길가쪽으로 운전해가고 있었던 중이다. "눈"이라는 경계물이 없었다면, 언덕밑으로 계속 운전해나갔을 것이다.
다시 차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차문을 열고 발을 들여놓으면 차가 밑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남편에게 차사고를 말하는데, 어떤 차가 곁에 선다.
뭐를 도와줘야겠냐고.
안되는 영어가 더 떨려서 나온다.
거진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그가 이해하든 말든, 그를 붙잡는다.
어쩌면 차 옆에 서있는 것이 차주인의 할일이었겠지만, 그런 이성적인 판단이 들지 않는다.
내 마음은 내 차가 갸우뚱 한것만큼 이미 기울어져 있다.
내 곁에 서있던 그에게 어디로 가느냐 물었더니, 오웬사운드로 간댄다.
나는 남편에게 말한다. 그와 함께 언니에게로 돌아가서 기다리면 어떻겠느냐고.
토잉회사에 연락하라면서. 그는 저멀리서 자신이 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올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눈은 예리한 이빨이 되어, 모든 걸 할퀴고 있어, 그 누구도 길을 떠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나는 그 사고현장을 무조건 벗어나고만 싶다.
그러다 보니, 차 키도 열쇠구멍에 내버려두었다.
차키를 빼려고 차문을 조금 열다가, 남편에게 차키를 그냥 두어도 되겠느냐고 또 묻는다.
남편은 괜찮을 거라고 말한다. 사실 차문을 열고 무릎걸음으로 기어서 차키를 빼다보면, 차와 함께 밑으로 굴러떨어질 것만 같다.
그것도 무서웠다.
나는 그날 곁에 서줬던 차를 얻어타고 오웬사운드로 다시 왔다.
남의차, 그것도 남자 혼자 운전하는 차를 얻어타는 일은 내 생애에는 없을 줄 알았다.
그의 차를 얻어타고나서야 조금씩 이성이 들기 시작했다.
차안에 내버려둔 것들이 생각났다.
내가 "베이비"라고 불렀던 내 아이패드가 든, 성경가방, 그리고 딸내미에게 줄, 동물밥과, 우리들이 먹을 식량, 가게에서 필요한 담배까지.
그리고 나는 차키를 내팽개치고 그의 차를 탄 것이다.
언니네 집에서 억지로 1박2일 여행했던 일,
토잉회사 CAA에서는 차 주인이 없다고, 토잉을 못해준다고 했다는 말, 그 뒤로 동네 토잉회사와 연락을 취했다는 남편의 말,
눈이 너무 와서 차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소식..
내 차가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았나 걱정하면서 잠을 청했던 그날밤...
그 다음날 아침, 전날 저녁 밤11시가 되서야 내 차를 토잉해서 운반해갔다는 소식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그때서야 얼었던 몸이 녹았다고 할까.
남편은 나를 데리러 오웬사운드에 왔었다.
내 베이비(아이패드)도 안녕했고, 차도 밧데리가 나갔던 것 외에는 멀쩡했고,
밤새 얼어서 못쓰게 되었을 것 같은 과일들도 먹을만했다. CAA와의 정산만 남았다고 할까?
"눈 이야기"를 이렇게 쓰고 있는 나 역시 멀쩡하다는 증거.
그날 집에 돌아와서 막내딸이 보여주는 자신의 미술작품을 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그 구덩이에 굴렀다면, 이 작품들을 못보고 죽었겠구나, 하는 그런 것.
참으로 생과 사는 종이 한장 차이다.
살아있을 때를 감사하는 수밖에.
그리고 나는 오늘 저녁 스노우 스콜을 뚫고 올 남편을 기다려야 한다. 이러고 산다..
위로 세 사진은 페이슬리 가게앞에서.. 제대로 된 눈 사진을 얻은 건 쉽지 않아요.
사고 다음날 아침, 오웬사운드 언니네 아파트에서 밖을 내다 보면서.
눈이 많이 얌전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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