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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여러 이름으로 살기

바로 며칠전에 올린 글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원래 이렇게 모든 사건은 꼬리를 물고 물리게 되어있는 것인지, 그후로 여러날 동안 이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이 갑순 이라는 여자가 어떤 이유에선가 이민길에 오르게 된다.

그때는 갑순씨가 미혼의 여성이었고, 당당히 자기 이름을 쓰고 여권을 만든다. 그러나 이미 이름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 갑순이 gab soon lee 가 된 것이다. 여권을 만들던 사람이 soon이 middle name이냐고 물어보았을 것도 같다. 가운데 있으니, 미들 네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gabsoon lee가 아니고 gab soon lee가 된 이유이다. 살다보니 이곳 사람들이 middle name은 빼버리고, first name과 last name만 부를때가 많다. 그러니까 그녀의 이름은 gab lee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미들 네임이 없이 붙여서 적어야 했던 것이 잘된 표기방법이었다.

 

어쨋거나 갑순씨는 이민 이듬해 운좋게 캐나다에서 한국남자 박갑돌씨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이갑순씨는 그 당시에는 당연히 북미에서는 "죽어도" 남편 성을 따라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혼인신고를 하고 난후 누가 등을 떠밀진 않았지만, 정부 기관에 가서  SIN(소시얼 인슈런스 넘버)의 이름을 바꾼다. 미혼일때 다니던 직장에서는 옛 이름 그대로 수표가 나오고 있다. 이것까지는 바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때쯤 해서, 갑순씨는 Mindy라는 영어이름을 갖게 된다. 아이들 학교의 학부모로 활약할 때는 Gab Soon보다는 Mindy가 훨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현지인들에게는 Gab Soon은 없는 이름이고, Mindy로만 불린다. 그리고 조금 더 정중히 불러주는 이들은 그녀에게 Mrs. Park이라고 부른다.

이름이 혼잡하게 섞이고 있다. 이갑순에서 민디 박으로 어떤 때는 갑순 박, 갑 리가 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밖에도 운전면허증, 건강보험등 신분증으로 쓰이는 것들이 있었지만, 차차 이를 바꿔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서 무감각해져간다. 누구도 이름을 바꾸라(공문서라든가) 채근하는 사람이 없었고, 이름 때문에 문제가 될 일이 없었다.

 

SIN에서만 Gab Soon Park으로 되어있었고, 다른 신분증들은 그대로 쓰고 있었다. 심지어 은행 카드도 예전에 쓰던 이름이었다. 이러다가 여권이란 걸 만들게 된다. 여권은 사진이 있는 운전면허증이 주 신분증이 되어, 다시한번 Gab Soon Lee가 선명하게 프린트된다.

 

어느날 갑순씨는 어떤 책을 읽다가 "남편성"을 따르는 것이 더이상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글을 읽는다. 정부의 재촉도 없었던 것이 그때서 이해된다. 그럼에도 스스로 이름을 바꾸기 시작했던 건, "어린 시절에 학습된 이름에 관한 서양법"을 그대로 적용시켜 벌어진 일이다.

 

이민생활이 길어지면서, 때에 따라서 기분내키는 내로 이름을 쓰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다른 신분증이 필요한 일에는 운전면허증에 있는 이름을 사용하고, 그렇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때는 평상시 쓰던 Mindy Park도 잘 튀어나왔다.

 

이러면 안되지, 했던 때가 많이 있었다. 나중에 큰 일이 생겨 법적인 이름을 따지게 될때 큰 곤란을 당하게 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아이들과 내 전화를 개통하면서, 내 이름으로 했지만, 두 이름이 완전히 달라 두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는 말이다. 한 전화계약서에는 gab soon lee 가 다른 전화계약서에는 mindy park이. 전화회사를 옮기면 무슨 혜택이 있나 하고 청구서를 들여다 보았더니 이런 모양새였다. 이것으로는 두 사람이 같다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다. 또 한번은 미국여행길에서 였다. 버스티켓을 끊은 것과 내 여권 이름이 달라서 승객으로 오르는데 곤란할뻔 했다. 티켓은 남편의 성을 사용했고, 여권은 나의 성을 사용했던 것이다. 아이들 버스표를 보여주며 남편 성을 따라서 버스 티켓을 구입한 과정을 구구절절이 설명해야 했다.

 

지난주에 코스트코에 들렸었다. 코스트코도 멤버쉽으로 경영하는데, 마침 옛 멤버쉽 카드만 있어서, 그걸로 조회를 했더니, 내 이름이 나오긴 하는데, 운전면허증과 다른 이름이었다. 주소까지도 옛 주소여서, 이 코스트코 직원들이 여러명이 모여서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내게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설명하다가, 나중에는 물건 안사도 된다고 했더니, 그 여자 직원 말에, 신용카드와, 운전면허증, 그리고 멤버쉽 카드의 이름이 모두 다르니, 큰 문제가 생길수도 있다고 경고하였다. 이번에는 물건을 줄테니, 온타리오 서비스에 가서 이름을 정정하라고 꽤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큰 회사인고로, "여기 신분이 이상한 여자가 있다"고 경찰까지 끌어들인다면, 두 세 이름이 모두 동일인물임을 주장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하고, 벌금까지 물어야 하는 상황이 됐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갑순씨가 캐나다땅에 와서 열심히 산 것이, 몇년간은 이갑순의 이름으로 몇년간은 Mindy park으로 또 몇년간은 갑순 박으로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 것이니, 어휴 이 많은 이름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틀전에 아이폰을 마련했다. 비싼 것은 아니고, 시중에서 한물 간것을 약간의 돈을 주고, 매달 40달러 정도의 프로그램을 택해서 말이다. 예전 기기로는 메세지조차 안되어서, 스마트폰 마련에 뜸을 들이다가 막내것과 함께 장만했다.

 

스마트폰을 미리 이용해온 남편은 여러 기능중에서서 카카오톡의 왕팬이다. 카카오톡에 낯선(이곳이 시골임을 알아달라) 이곳 아저씨 아줌마들에게 카카오톡을 널리 전파하는 일등 전도사 역할을 자처한다. 나는 아이패드에 이미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우리 둘다 그 부분은 잊고 있었다. 그것과의 연동 문제를. 집에 들어온 남편이 일단 내 휴대폰을 잡더니 카톡을 다운받기 위해 분주하다. 나는 밥을 차리면서, 그가 물어보는 대로 계정을 무엇으로 할까, 하면 내 이름을 조합해서 알려주고, 비밀번호를 무엇으로 할까, 하면 또 그것을 불러주었다. 그런데 막 다운로드가 끝나서 써야 하는데, 갑자기 카톡에서 "경고 문자"가 뜬다. 자신들의 법칙상 "경고 대상자"라며, 카카오톡 본사에 문의하란다.

 

휴대폰 새로 장만한 제일의 기쁨이 서로간에 카카오톡으로 연결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안되니 남편은 작은 전화를 붙잡고 긴 시간 씨름한다. 그때서 내 머리에 번쩍하고 불이 들어온다.

 

애플 사용자들은 애플 아이디가 있다. 그것은 아이패드든, 아이폰이든 그대로 한 이름이 사용된다. 그리고 나중에 보니, 카카오톡도 자신의 계정이 있으면 다른 기기에서도 그것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급하게 새로 산 아이폰으로 애플 아이디를 새로 만들고, 그 새로운 애플 아이디로 카카오톡을 다운받아서 그것도 새로운 계정을 만들려고 했고, 이러는 와중에 카카오톡 본사에서 제동을 건 것같다.

 

아이패드에서도 다른 기기에서 카카오톡을 사용하니, "서비스 중단"이라고 뜨고, 계정 자체를 없애고 새로 만들려고 해도, 카톡에서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제 문의 메일을 보냈는데, 만 하루 24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다. 초 단위로 움직이는 세상에 24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거의 고통에 가깝다.

 

결국 이름의 문제다. 애플 앱에서는 예전에 있던 그 이름으로 사용했어야 했고, 카톡도 다시 다운로드 하기 전에 분명히 그런 것을 공지했을 것이다. 내 기기를 갖고 남편이 마음대로 새로운 계정을 만들다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 얼마나 그가 민망할까.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에게 원인을 돌리는 수밖에는 없다. 내 잘못이라면, 새로운 계정을 만들고, 내 비밀번호가 필요한 일에 남편이 그 일을 다하도록 그대로 두었다는 질책이 떨어질까?

 

어쨋든 한 이름으로 살아야 할 이유들이 주변에 산재해 있다.

 

혹 새로 결혼하는 이들이나, 이민을 오게 되는 여자들을 위해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주자.

 

온타리오에서는 남편의 성을 따를 법적인 책임은 없다. 본인이 그것을 원한다면, 결혼 증명서등을 갖고 가면 무료로 이름을 바꿔준다. 이민해 오는 사람들도 한국에서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여권을 만들고, 그 이름을 계속 사용하면 된다. 이때 퍼스트 네임과 라스트 네임만 있는 것이지, 두번째 음절을 미들 네임으로 나누면 복잡해진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름이 "이 갑"이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되므로. 두개의 성, 두개 이상의 이름, 그리고 인터넷 이름까지 몇개의 이름으로 살게 되는 현대인들은 나중 법적으로 미묘한 일이 발생할 때를 대비하여, 법적인 이름이 무엇인지, 애칭을 써야할 때와 본인의 공식 이름을 써야할 때를 잘 가려서 사용해야겠다. 갑순씨도 다시 제 이름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온타리오 서비스를 조만간 찾을 예정이다. SIN을 일단 바꾸고, 그밖에 신용카드등 잘못 사용된 이름들을 차례로 바꿔야 한다.

 

그나저나 카카오톡에서는 왜 답신이 안오나. 스마트폰으로 바꾼 구체적 기쁨이 아직 찾아오고 있지 않아, 아주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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