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주인장 한월수 여사
우리 가족들은 종종 엄마의 아파트를 엄마호텔이라고 부른다.
이 호텔의 특징은 세끼 식사제공에다가, 호텔비가 "공짜"라는 사실이다.
잠자리는 본인이 좋아하는 쪽으로 가능하면 마련이 된다.
엄마가 쓰시던 침대가 1순위, 침대밑에 방바닥이 2순위, 거실이 3순위가 된다.
이불과 벼개는 언제나 보송보송하게 말라있으며, 바닥에 자는 사람들을 위해 다섯장 정도를 바닥에 깔아주시기도 한다.
예약을 할 필요도 없고, 언제나 VIP들을 위해 비워놓았다가 그들을 최대의 환영인사로 맞아준다.
게다가 스넥도 공짜, 집에 올때는 호텔측에서 제공한 각종 선물들을 꾸러미꾸러미 들고 나서게 된다.
세상에 이런 호텔이 있다는 게, 믿어지는가?
어떤 때는 게스트의 친구와 친척까지도 오게 되기도 한다. 그들에게도 호텔주인장은 "다 내 손님"이라며 인심을 아끼시지 않는다.
이번 방문은 어땠는가 한번 들여다보자.
민들레가 상에 올려졌었다.
밤 11시 저녁상에 그날 아침 엄마께서 캤다는 민들레는 "나 눈밭에서 나온 나물이야" 하는 초록의 얼굴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이게... 이게 정말 오늘 캔 거야?
아직도 눈이 성성한데, 엄마는 민들레가 부르는 소리를 들으셨는가?
토론토의 날씨는 그레이 부루스의 날씨보다 2-3도 따뜻하다지만, 봄나물은 상상도 못해봤다.
50대의 두딸은 80대의 어머니가 차린 민들레와 게장의 식탁앞에서 가슴이 먹먹하다.
8시쯤 도착할 것으로 아는 엄마에게 8시쯤 전화를 드렸다. 이제서 떠난다고.
장장 6박7일간의 토론토 방문의 첫날부터 엄마에게 긴 기다림을 드렸다.
그래도 빈속이어서 11시 저녁밥이지만, 든든히 조금씩 퍼서 3공기를 먹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자식들이 밥공기를 두번 이상은 퍼담아야 좋아하시므로, 처음에 너무 많이 담기지 않도록 해야한다.
그러면, 두번까지는 내 적정양이 되고, 세번째는 엄마를 위해서 또 한사발 퍼담는다.
자 그럼 게장은 어떻게 담아야 한다구?
나는 아이패드를 무릎에 올리고 엄마의 말을 받아 타이핑한다.
"엄마가 일러준 것들"이란 도큐먼트 항목에 이어붙이면 된다.
10월말쯤 산다.
살아있는 것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세번 다려붓는다.
김코만 간장이 너무 시꺼머니, 물을 조금 넣고, 소금을 조금 넣고 만들어서 펄펄 끓인다.
엄마, 그런데 게를 사다가 어떻게 간수하지? 살아있는 걸?
처음 사서, 무조건 냉동고에 얼려라. 약간 얼린 다음 소금물 탄 것에 담가놓고 게에 있는 불순물을 걸러낸다.
펄같은 것이 빠져나온다. 칫솔로 문질러서 닦는다.
그런데, 이건 나의 방법이고, 자식들에게 일러줄때는 그냥 냉동고에 얼려서 죽게 하라고 한다. 약간 얼려서 다시 꺼내 닦으라는 것을 건너뛴다는 말이다.
산 것을 만지다가 손이 물리면 큰 사고가 벌어지므로. 다 죽기전에 닦아야 깨끗하게 닦이지만, 혹 잘못될까봐 이렇게 권유하지는 못하겠더라.
다시 내가 하던 방법으로 돌아가면, 냉동고에서 꺼내 닦은 것을 가지런하게 다시 얼린다.
언제고 필요할때 간장게장을 담을 수 있다.
조금 고급스럽게 하려면, 끓인 간장물에 감초, 대추, 마늘, 생강, 마른고추등등을 띄운다.
너무 싱겁게 하면 껍데기가 질겨지기도 한다.
덜 식혔을 때 간장물을 부으면 나중에 건져보면 알멩이가 없다. 이 말은 게살이 모두 빠져나가 고 없어졌다는 말.
3번 다려붓는데 10일 정도 걸린다.
같은 물에 계속 담가먹는게 더 맛이 있다.
교회 바자회 식구들이 간장게장을 담가서 팔자고 했지만, 그게 그럴수 있는 품목이 아니다.
많은 양, 며칠씩 끓여부어야 하고, 그 수익이 안나온다.
매년 부탁이 와서 거절하기 힘들었는데, 올해는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다행스럽다.
조금씩 만들어서 나눠먹는 게 낫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먹고서 잘먹었다고 말해주면 그것보다 좋은 건 없다.
아무런 소리가 없는 사람들, 아주 서운하다.
나는 옆에서 그 말을 타이핑하고, 언니는 추렴을 넣으면서 엄마와 대화를 이끌어간다.
6일간 엄마는 두부도 만드셨고, 백무리, 녹두고물떡 등을 만드셨는데, 나는 그것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엄마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고 싶었지만, 나 나대로 바빴다.
그래도 만드실때 사진기를 들이대면서 찍었더니, 무척 좋아하신다.
엄마의 작업들이 예술가못지 않다.
자식을 위해서 엄마의 머리는 벌써 몇바퀴째 회전중이다.
무엇을 만들어먹이나, 무엇을 싸서 집에 가지고 가게할까?
녹두고물을 묻힌 찹쌀떡, 중간에 대추 설탕에 조린 것을 넣어 단맛을 첨가했다.
밤새 잠이 안 오신다더니, 그에 두부를 만드셨다. 내게 일러주고 싶은 품목이었다는데, 나는 자느라, 거진 다 만들어진 것만 보았다.
다음에 가서 잘 적어와야겠다.
이건 두부를 만들고 나온 콩비지..
이걸 또 숙성해야만 먹을 수 있는 비지가 된다고 하셨다.
밥통에 숙성시켜 한 그릇 얻어왔다.
이건 멥쌀로 만든 백무리. 밤과 콩등을 안에 넣었다.
토론토 방문에서 나는 매일 아침 출근을 했다.
엄마와 함께 살던 15년전 그날 이후로 엄마의 집에서 출근을 한 것은 처음이다.
첫날 엄마는 내게 점심을 싸주셨다. 밥과 김과 민들레 나물을. 그런 다음 작은 보온통에 따뜻한 찻물도 넣으셨다.
(첫 출근지에서 그들은 우리에게 점심을 제공했고, 따뜻한 커피와 음료수도 있었다. 나는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그냥 가져왔다.)
그리고 버스를 처음 타는 딸에게 버스타는 법을 일러주셨다. 다운타운 출근에 차를 가져가는 것은 멍청한 일이라는 걸 알았고, 토론토 생활 동안 버스를 타고 다니리라 작정했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나온 엄마의 배웅을 받았다.
버스에 오르며, 작은 모습으로 사라져가는 엄마를 본다. "딸이 변호사라도 됐다면, 멋있는 양장을 빼입고 캐리어 우먼같은 당당함으로 출근했다면, 엄마가 더욱 기쁘셨겠는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내 마음을 엄마에게 투영해본 건 아닐까, 글을 쓰는 지금 자각이 든다.
엄마의 아파트에서 차를 타면, 바로 서브웨이가 시작되는 Finch 스테이션으로 간다. 그곳에서 지하철을 타고 내려가고..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교육 마지막날, 드디어 서브웨이 타는 법을 완전 습득했다. 버스- 서브웨이 - 스트릿트 카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르고, 덜 힘든 방법이란 것도. 처음에는 걷기도 했고, 두번째는 버스 - 남향 서브웨이 - 서향 서브웨이 -스트릿트 카 등으로 네개의 교통수단을 이용하기도 했다. 토론토 완전정복이 쉽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속에 섞여 서있었던 경험은 내 나이를 20년은 젊게 만드는 것 같았다.
월요일 저녁 퇴근후에는 엄마와 언니의 친구, 이 선생님 내외분의 초청으로 근사한 저녁대접을 받았다. 둘째날 저녁에는 일과 관련된 인터뷰 때문에 또 저녁시간을 보냈고. 세번째날 저녁에는 오웬사운드 친구를 언니와 함께 만났는데, 그녀가 명동칼국수로 데리고 갔다. 칼국수와 왕만두를 시켰는데.. 미식가하고는 거리가 먼 내게 하나 남아있는 음식의 향수가 있다면 남영동 굴다리밑 작은 분식점에서 초간장에 찍어먹었던 그 찜통에서 쪄낸 만두의 맛... 그날 그맛을 그 식당에서 만났다. 그런데 며칠간의 피로가 쌓였었는지, 2차로 갔던 카페에서 나는 거의 비몽사몽 헤매야했다. 일주일의 피로가 그날 식곤증과 함께 마구 몰려왔던 것을. 그날 친구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그리고 그 다음날, 귀여운 딸 루미를 초대했다. 숙제와 에세이, 시험 때문에 도통 시간을 낼 수 없다며, 나의 러브콜을 계속 지연시켰는데, 할머니집에서의 저녁식사를 오케이 한 것이다. 순야채주의자 손녀를 위해 엄마는 다시 바빠지셨고. 그날의 식탁은 멸치 한 마리 포함안된 완전 채식의 식탁이 차려졌다. 할머니가 만든 두부를 넣은 된장찌개를 중심으로 한 식탁.
마지막날에는 브런치겸 토론토 친구(내게도 있다!!)를 만나 식당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다시 엄마집으로 가서 엄마와 함께 한국장을 봤다. 당신이 사신 것을 들고 버스로 굳이 돌아가신다는 엄마가 참으로 귀엽다. 갈길이 먼 너희들은 빨리 가라는 것이다. 몇가지 물건을 사니, 벌써 손에 가득한 것을. 엄마를 모셔다 드렸다.
돌아오는 날은 마침 성금요일, 휴일인지라 대부분 상점들은 문을 닫았지만, 한국마켓만은 위풍당당히 문을 열어서 장을 볼수있었다. 다른 민족들도 많이 보이는 걸로 봐서, 문을 연 곳이 없어선지 분주했다. 세계 어디를 가든 한국식인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점이다. 한국인의 사전에 모두가 노는날, 그래서 장보기는 더욱 필요한 법, 그런 날 문을 닫을 순 없다. 소비자에게도 그건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더 가면, 법정 공휴일에 반드시 쉬어야 하는 이 나라 사람들과 비슷해질까? 두고볼 일이다.
이렇게 토론토 방문을 끝내고 왔다.
자랑스런 어조로 말한, 출근, 퇴근, 다운타운 사무실, 지하철, 사람들... 이런 것들을 왜 했는가 하는 것은 곧이어 봇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내게는 흥미로운 일인데, 딱히 별일은 아닐 수도 있다. 시골살이 오래된 아줌마가 겪었던 특별한 경험을 곧 개봉하겠다. 기대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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