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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한국의 경력을 살려 일하는 이민1세 이야기


 

설문조사를 하다가 만난분이 있다. 그녀는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는 분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담을 나누게 됐는데, 그분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내가 밟아보지 못한 분야의 직업을 갖고있기에  더욱 관심이 간다.

이민온 이들은 대부분 많은 것들을 남기고 떠나온다. 그중엔 한국에서의 경력도 있다. 학벌이 좋고, 경력이 좋아도 다른 언어 쓰는 이땅에서 소용이 없다고 생각, 미련없이 버렸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아주 밑바닥부터.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한국에서 공부했던 것을 이땅에서 활용하고 싶어 어떤 길이 있나, 이모저모로 알아보는 실속파도 있다. 언어가 걸리지만, 몇가지 업그레이드해서 공부를 하면, 예전과 비슷한 직업을 가질 있는 길이 있음을 알게 된다.

 

당신이 44살에 이민을 온다면?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가장 쉬운 사업에 매달릴 것이다. 44살에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글쓴이도 20 후반에 이민을 왔지만, 무엇을 공부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만 생각했지, 능력을 키워 사회에서 주류와 합류하여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정말 까마득히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런 삶을 사는 한인들이 없지 않다.


은영(가명)씨는 한국에서 의료 관련 실험실에 20년간 근무하다가 캐나다에 이민오게 되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다른 일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하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서기 시작했다. 특별히 남편이 하고 있는 식당 일은 적성에 맞지 않는요리일인데, 일이 없다면 그걸 같이 하게 공산이 컸다.

 

그녀는 이력서를 써서 여러군데 넣어봤지만, 이곳에서의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했다. 그녀는 일단 온타리오 임상병리학 협회를 찾아가 어떻게 해야 모국서 하던 일을 이곳에서도 할수 있는지, 도움을 청했다. 그들은  맥매스터 대학에 개설된 10주간 집중코스를 소개했다. 바로 그곳에 등록해 매일 6시간 강의를 위해 워터루에서 해밀턴까지 운전해가면서 공부에 전념했다. 전공은 공부한 부분이라 쉬웠지만, 안전법등 이나라의 사회제도를 배우는 부분에서는 많이 힘들었다.  10주간의 공부를 마치면 시험볼 자격을 준다. 그녀는 임상병리사 자격시험에 합격, 자격증을 취득한다. 자격증을 얻으면 바로 직장을 찾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직업을 찾는 일은 그다지 쉽지 않다.

 

자격증은 있지만 경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 그녀는 일을 주지 않으면서 경력을 내놓으라는 이곳 회사들이 매정하게 느껴졌다 추억했다.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말라

캐나다서 직장잡기 발로 뛰어야

 

보건석사학위를 소지한 그녀는 한국에 있을때는 사람의 피를 검사하는 일을 했었다. 이력서를 들고 여러 회사를 전전하던 어느날 구엘프대학의 동물병원에서 실험실 테크놀로지스트를 모집하는 광고를 보게 된다. 그녀는 이력서를 들고 그곳에 찾아갔다. 작은 건물인줄 알고  찾아갔지만, 인사과를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는 규모있는 회사였다. 그때 지나가는 직원 하나를 붙잡고 잡을 구하러 왔는데 어떻게 해야하냐 물어봤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해당부서의  수퍼바이저를 만나보겠느냐고 물어본다. 그녀는 예기치않게 수퍼바이저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수퍼바이저는 이력서에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는 자기 부서는 자리가 없다면서 다른 부서를 소개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녀를 데려간 곳은 동물병원, 정부에서 오는 샘플들을 분류해서 해당부서에 보내주는 실험실의 우체국같은 곳이었다. 부서의 수퍼바이저는 그녀의 이력서를 훑어보더니, 마침 병가를 여직원의 일을 당분간해줄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무런 이라도 하겠다고 대답했고, 일을 하게 됐다.

 

은영씨는  자신의 경력과는 관련없는 일이었지만, 실험실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총체적인 시각을 그곳에서 갖게 된다.

 

그녀가 구엘프대학내의 Animal health lab. 임상병리학 테크놀로지스트(영구직)로서 일을 하게 것은 그런 비정규직을 여러번 거친 다음이었다. 그녀의 성실성과 일의 능력을 높이 직원들의 추천이 유효했고, 회사 건물안에 있으면서 정보에 빨라 빈자리가 났을때 지원하는 , 모든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다.

 

대학내에 있는 실험실이므로 대학에서 제공하는 각종 직원혜택을 받고 있으며, 강성 노조의 하나로 분류되는 United steel worker 노조원으로 직원보호를 받고있다. 대학내 기관이므로 은영씨나, 가족중 어느 누구라도 구웰프대학의 어느 과정이든지 무료로 학업할수 있다. 말하자면, 학부면 4년간 학비 면제가 되는셈이다. 연간 직원 혜택이 돈으로 환산하면 “2만불 이른다. 아이들 치과 교정등 건강보험으로부터 시작, 유급휴가와, 병가 등의 혜택을 받고 있다.

 

은영씨는 한국에서의 경력을 살려서 이곳에서 직업을 잡아야한다 주장한다. 쉽게 포기하지 말고, 협회, 관련단체등을 찾아다니며, 미비된 자격을 어떻게 보충해야 하는지 조언을 듣고, 공부가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평생 살아야할 캐나다땅인데, 1-2 학업에 몰두해서 필요한 자격을 갖추는 일에 투자해야 할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렇게 자격이 갖춰지면, 직장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하며, 최선의 팁은 이메일로 이력서를 보내는 방법 아니라, “직접 찾아가서, 이력서를 제출하고, 얼굴을 익혀야 한다 조언한다. 십중팔구, 이력서만 받아놓고 아는체를 하지않지만, 1주후에 한번 더가고, 또다시 1주후에 가서, 언제든 사람이 필요하면 불러달라고 해야, 그들이 사람이 결원이 생겼을때 불러준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직업을 구하는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조언으로, “발로 뛰어야 한다 .

 

은영씨는 한인들중엔 학벌이 좋고, 경력이 좋은 분들이 많다. 그들이 조금만 눈을 돌렸다면, 직장을 구할 있는 방법이 있었을 이라며 안타까워한다.  40세가 넘었다고 해도, 늦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 자신이 보여줬다. 언어는 처음에는 단단한 철옹성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가면서 점차로 허물어진다는 그녀의 주장이다. 그야말로 할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면 된다는 .

 

이제 어느덧 50 넘어서있는 글쓴이도 나름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할일은 나라에는 없어, 하고 쉬운 길로만 골라왔던 지난 세월이 아주 아깝다. “너무 일찍 포기한 것에 대한 후회 오래 갈것 같다. 은영씨의 이야기가 조금은 젊은 이민자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길 바란다. 은영씨와 전공이 같지 않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회사의 종류는 너무나 많다. 내가 하고싶은 , 찾아서 하면 된다.

 

나를 살찌우고 나라를 살찌우고, 나아가서는 조국을 선전하는 일이다. “명석한 한인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을 한다면, 우리의 자녀들도 보다 넓은 취업의 기회를 갖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