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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산소가 부족한 여자

"나는 이런 나를 지켜보고 있다."
이렇게 친구들에게 말했다.
나를 지켜보는 나라니.

"민디가 달라졌어." 이런 말도 적잖게 들었다. 나의 봄이 마침내 시작되고 있다고 믿기도 했다.

정말 나는 많이 달라졌다. 우선 목이 쉬도록 말했다.
평생에 한 말보다, 올 6개월간 한 말의 양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눈으로 이해해주길 바라는 그 수준에서 벗어나, 내 생각을, 내가 본 것을, 내가 느낀 것을 가감없이 전하려 애썼다. 

머리속에 든 생각은 바로바로 실행에 옮겼다. 사람들을 선동하고, 가족들을 움직였다. 소심했던 나는 간곳이 없고, 진짜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건은 연속적으로 터졌고 나는 사건의 핵심은 아니었어도 그 중심에 가깝게 있어서 침묵할 수가 없었다.
말은 서로간에 너무 중요했고, 진실을 밝혀내는데 가장 필요한 도구였다.

그와 더불어 새로운 일도 맡게 됐다. 오만군데를 원도 없이 돌아다녔다. 하루에 보통 500km 이상을 운전한 날도 많았다. 지난 5월초에 산 차가 벌 써 1만 km을 육박하고 있다. 한달에 5000km를 뛰었단 말이니 대견(?)하다.

이런 모든 것들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는 어디에서 샘솟는 에너지인줄 그 출처를 모르고 마구 사용했다. 사람들 만나는 일이 즐겁고, 무언가 바삐 뛰어야 한다는 게 바쁠일 없었던 내게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랬는데, 앞으로 마구 내달리던 나의 발목을 꽉 잡는 그런 사건이 터졌다. 

때는 바야흐로 초딩시절로 돌아간다. 아니면 중등시절.. 몇번 그런 일이 있었다. 조회시간에 픽쓰러지는 그런 학생중 내가 그 한명이었다. 매번 그랬던 것 같지는 않고 두어번 양호실에 갔었다. 살아오면서 몇번 기절한 적도 있었다. 아예 의식을 잃었을 때는 손으로 꼽을만큼, 찬 바닥에 누우면 정신이 드는 그런 정도였다. 

원인이 없이 시름시름 앓았던 적도 두어번 있었다. 가장 최근 것으로는 이사한 후에 기운을 못차리고 한 3일 앓았던 것. 그게 벌써 7년전이다.

작은 증상으로는 입술 가장자리가 자주 찢어지는 것, 입을 크게 벌리거나 하면, 바로 찢어져서 피가 난다. 간신히 아물만하면 다시 그런 사건이 재발하고.

치과치료를 하러가면 고역이다. 입을 벌리고 있어야 하는데, 항상 그부위가 다시 찢어지고 피가 난다. 치과의사의 권고가 있었다. 병원에 가서 검사하라는. 내 몸안에 부족한 영양소를 찾아내서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과는 4개월마다 가는데 의사의 그 권고를 지키지 못하다가, 이번에 딸과 함께 가정의에게 갔다.

피검사와 변 검사 기구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이번주 화요일, 변을 제출하고 피검사를 하고 집에 왔는데. 피를 뽑은지 1시간도 안됐는데 가정의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의사를 보러 빨리 오라는 게다. 갑자기 이게 뭔일이람? 조금은 우습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고 병원에 갔다. 가정의 진료실은 우리 동네, 우리집에서도 보이는 곳, 지척에 있다. 

의사는 피검사에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너무 낮게 나와서, 조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숨차지 않느냐, 가슴이 아프지 않느냐, 가끔 쓰러지느냐, 이런 것들을 물어왔다.

다음날 병원에 다시 가고, 자리가 나는 대로 응급실로 가라면서 병원 리셉션리스트에게 지시한다. 혹, 병원에 가기전이라도 어지럽거나 하면, 바로 응급실로 직행하라는 말도 덧붙인다. 리셉션리스트가 묻는다. "전에 트랜스퓨션(transfusion) 해봤어요?" " 아니요" 나는 트랜스퓨션이 무슨 말인줄 모르고 대답한다. 정밀검사를 위해 다른 데로 보내는 것을 말하나 보다..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뭔가 얼떨떨하다. 남들의 헤모글로빈 수치는 12-13 정도라는데 내 헤모글로빈 수치는 5.8이란다. 집에와서 검색을 시작하니, 좀 긴장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트랜스퓨션은 "수혈"을 의미했다.

갑자기 수혈하겠단 거야 뭐야 불안해진다.

수요일 피를 뽑으러 다시 검사실에 갔다. 피 뽑는 여자는 내 손목에 응급환자 팔찌를 만들어 매준다. 내일 수혈하는 것이냐니까, 그렇진 않을 것이란다. 며칠후가 될 것이라고. 나는 그제서 안심을 한다. 며칠 여유는 있구나. 지금까지 별탈없이 살아왔는데 꼭 남의 피를 받아야 하나? 다른 방법을 먼저 찾아달라고 하자, 이런 마음들이었다. 수혈을 위한 검사라는데, 시간이 꽤 걸릴 것이래서 약속 하나를 미뤘다.

다음날 아침 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눈매가 날까로운 간호사가 나를 큰 방으로 데려간다. 휠체어 의자에 앉으란다. 그러면서 수혈을 하겠고, 4시간쯤 소용될 것이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검사원의 말에 따르면, 오늘이 아니라는데, 꼭 그래야 하느냐고 묻는다. 간호사는 모든 수혈을 위한 준비가 끝났으며, 의사의 지시로 오늘 수혈하게 되지만, 네가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으니, 수혈에 관한 작은 책을 읽어보고 결정하겠느냐고 한다. 

그 책에는 다른 분야처럼 수혈에도 부작용이 있지만, 그 수치는 그리 높지 않은편이라는 둥, 적혈구,백혈구, 혈소판 등에 관한 설명이 있다. 책을 대충 보고났더니, 간호사가 묻는다. 환자가 동의하지 않고, 의사를 만난 다음에 다시 결정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며, 그렇게 하겠느냐고. 나는 수혈을 잠시 보류하는 것에 사인을 하고 병원을 나왔다.

항상 침착해 보였던 가정의가 "수혈"을 받게 하려고 애쓰고 내게 넣으려던 그 피는 3일후면 버려야 한다는 설명을 들어서 마음이 안좋았지만, 그냥 "수혈"을 받고싶진 않았다.

다시 가정의 사무실로 왔다.

의사와 조금 더 깊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이 동내 진료 6년만에 나같이 낮은 수치의 헤모글로빈을 가진 자는 처음이란다. 그는 내 말을 들어주려 애썼다. 엄마도 언니도 그런 경향이 있다. 가족력인 것같다.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아도 큰 문제 없었다 등등.. 


그는 만약에 내게 문제가 생기면, 왜 수혈 처방을 하지 않았느냐고 변호사가 물어볼 수도 있다. 네 상태는 "심각"하다. 일단 헤모글로빈 수치를 올려놓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차근차근 검사해보고, 섭생도 주의하면 될 것이다, 라면서 달랜다. 

언제나 후다닥 말하고 휑하니 사라지는 의사였는데, 환자를 대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더이상 뒤로 뺄수가 없다. 수혈받기로 동의했다. 

"나는 저들과 같지 않음을 기뻐합니다" 

이렇게 살아왔다. 저들과 같이 비만하지 않음을, 숨을 거칠게 쉬는 천식에서 먼 거리에 있음을. 너무 말라 무언가 병이 자라고 있는 것 같지 않음을.

그런데, 나 역시 그들과 똑같다. 누가 누구를 흉보고 있었는지. 

피부색이 좋지 않다는 이야긴 많이도 들어왔다. 언젠가 찍었던 단체사진에서는 나만 다른 피부톤이었다. 조명이 잘못되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것들이 모두 원인이 있었다는 말이다. . 좋은 점 하나는 피가 끓지않아, 화를 내는 것에 더디다는 것이다. 성격도 몸안의 물질의 다과에 따라 조금 영향받는  것이라면, 차고 냉철한 이성주의는 나의 부족한 피 때문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헤모글로빈 (hemoglobin 또는 haemoglobin)은 적혈구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단백질이다. 붉은색을 띠며, 철을 포함한다. 헤모글로빈은 산소가 많은 곳 폐에서는 산소와 잘 결합하고, 산소가 적은 곳에서는 붙어 있던 산소를 쉽게 떼어 내는 성질이 있다. 분자식은 C3032H4816O872N780S8Fe4 이다. 분자식에서 설명한 것처럼 철 원자가 4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철이 부족하면 헤모글로빈을 잘 만들 수가 없게 되어 빈혈이 일어나게 된다."로 설명하고 있다.

헤모글로빈은 피속 단백질인데 몸안에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헤모글로빈이 너무 부족하면, 뇌의 기능과 심장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단다.

몸안에 산소가 부족한 여자가 됐다. 산소를 넣기위한 자구책이었는지, 하품과 한숨이 남들보다는 빈번했던 것 같다. 가게에서 오래 일한 날은 더욱 심했고. 

남편은 "공인환자"로 인정해준다고 한다. 많은 일에서 열외를 시켜준다는데. 아픔이란 것은 썩 좋지 않다. 오랜만에 토론토 가족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일만 있으면 나비처럼 날아서 이곳저곳으로 날라다녔는데, 어쩐지 스스로도 "환자"가 된 기분이 들어 점잖게 집에서 캐나다데이를 보낸다. 

수혈받으면 남들과 같은 얼굴색이 될까? 큰 변화가 있진 않겠지만, 조금은 궁금하다. 수혈 부작용은 20만분의 일이라니, 또 너무 걱정하지 않기로 하고.

불량식품 먹지 않고 딴에는 건강식으로 잘먹고, 현대의학의 도움이 필요없다며, 잘난체하던 그 모든 것이 휘청거린다. 

싸움을 싫어하는 것도 나의 헤모글로빈 때문일까? 언성높여 싸웠던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다. 어릴때 한두어번의 경험 이후로 그런 싸움의 현장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타협과 순종과 설득과 인내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친구들 사이에서는 중재자가 된 적도 많았던 것 같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싸움이 깊어지기 전에 화해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 여겨왔다.


다혈질이어서 그래.. 우리가 흔히 쓰는 그런 말들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나를 보며 깨닫는다. 피가 부족한 빈혈의 나같은 사람들과 다혈질이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지.

그런데, 나의 상상과 추측이 일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조금 더 다혈이 되어야 할 지상과제를 갖고 있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 이젠 스테이크와 삼겹살로 전향해야 할 때가 된듯싶다.. 그러다보면, 어느날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