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천근이었다. 바로 며칠전만 해도.
그런데 지금은 새털처럼 가볍다. 이게 웬일인가?
막내가 집을 떠날때가 임박해서까지, 나는 마음이 안절부절이었다. 집을 떠나기전 모든 것을 바로잡아놓고, 똑바로 가르치고, 엄마와 딸의 관계도 미끈덩미끈덩 만들어놓고자 했다.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떠나보내야 하는구나, 내가 문제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내내 고심했다.
온 여름을 아빠를 도와 가게일을 열심히 하긴 했지만, 그애가 즐거워보이지 않았다.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듯, 실수도 많고, 이해불통의 나날들도 있었다.
기숙사로 떠나기 이틀전, 마음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딸이 나를 찾을때까지 기다렸는데, 결국 내가 백기를 들어야만 했다.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으므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대화시도를 할수밖에 없었다.(자신을 그린 자화상)
그 조그마한, 겨우 18살의 소녀가 무슨 문제가 그리 많을까? 그런데 많다. 그저 성장통이라고 해두자. 그것이 그렇게 깊고, 뼈까지 아픈 것이었다고.
미리는 언니들보다, 인터넷에서 사귄 친구와 소통하면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자신보다 5살쯤 많은 그녀를 언니처럼 따르고 좋아했나 보다. 그래서 그녀가 결혼할때는 뉴욕까지 원정축하를 하러가기도 했다. 미리를 따라 졸지에 뉴욕여행을 했던 이야기도 내가 예전에 쓴적이 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녀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인터넷 친구는 촤담이라는, 이곳에서 5-6시간쯤 걸리는 곳에 사니, 왔다갔다 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미리를 통해서 본 그녀는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났다고도 볼수 있고, 미리와 오랜기간 친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리는 그 일을 계기로, 마음고생을 상당히 많이 했고, 가족중 누구에게도 마음문을 쉽게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와 헤어진 뒤로도 그녀에 대해서 아무런 말이 없어서, 어떻게 안에서 정리가 되어가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미리가 높은 의자에 그림으로 장식.
지난 금요일, 드디어 터부시되던 대화주제에 대해서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순조롭지 않았다.
좋은 부모님 밑에서, 경제적인 걱정없이 공부할 수 있는 자신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울먹이면서 말한다. 그 친구와 헤어지면서 어떻게 나자신을 표현해야 하는지 잊어버렸다고. 언니처럼 믿고 따랐는데, 그 상처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네 마음의 상처가 그렇게 크면, 대학에 가서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라, 너를 모르는 낯선 사람들에게 너를 드러내보이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봐라, 하였다. 그랬더니 그렇게 까지 하고 싶지는 않단다. 나는 틴에이저가 겪을 수 있는 마음고생을 가장 심하게 겪었던 것으로, 새로운 환경에 가게 되면, 잘 될수 있을 것으로 믿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리는 눈물 범벅으로 말을 다 못하고, 자리를 떴고, 나도 먹먹해져서 한동안 앉은자리에서 일어날 힘이 없었다.
나중에 미리의 방에 가니, 그애가 없다. 온집안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지하실에서 두꺼운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미리를 발견했다. 나와 남편은 그날 저녁 약속이 있었고, 슬픔에 겨워 누워있는 미리를 놓고 떠나려니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혼자 살아내야 할 일이 산처럼 쌓인 그녀이니, 어쩌랴, 마음을 다져먹고 밖에 나갔다왔다.
평소보다는 조금 일찍 들어왔다. 미리는 기분이 한결 괜찮보이긴 했다. 굿나잇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바로 그때 메세지가 울린다.
"umma.. come out for a second"
미리에게서 온 메세지다. 방문을 열고 나갔더니, 무조건 나를 끌어안는다. 나도 미리를 안아줬다. 내가 나갔다온 4시간만에 그애의 마음이 정리되었던 것 같다. 등을 쓰다듬고, 잘될거야 말해주고. 미리와 나의 화해는 그렇게 극적으로 이뤄졌다.
지금부터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달라.
미리가 키우던 쥐들이 있다. 작년 10월에 애완동물샵에서 샀는데, 보이 하나와 걸 쥐새끼 각각 한마리였다. "엉뚱"한 미리는 쥐들을 성별을 구분해서 키워보고 싶다고 하였다. 언니들도 떠나고, 마음붙일 곳이 없는듯해 허락했는데, 이것이 크다큰 문제의 소지였다. 걸, 보이 두 마리를 각각의 케이지에 키웠다. 둘을 임신시키지 않기 위해 "임신중절"을 알아보았더니 $300달러쯤 한댄다. 그것도 동물병원과 수술시설이 있는 구엘프대학에 가야 한다는 것. 쥐를 수술시키기 위해서 쓸 돈도 없지만, 있다해도, 수술을 위한 전 과정을 어찌 밟겠는가? 그런 수술이 있다더라, 그렇게 웃고 지나갔다. 미리는 종종 두마리를 데리고 놀았는데, 결국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어느날 아침 12마리의 쥐새끼들이 태어난 것이다. ㅎㅎ 미리말로는 처음에 세어보니 13마리였는데, 나중에 보니 12마리로 줄어들었다더라. 어미의 젖은 모두 12개. 그 쥐새끼들은 어미의 젖을 먹으며 자라나기 시작했다. 쥐들은 크는 속도도 빨라 베이비였던 것이 어느새 틴에저만큼 자랐는데, 문제는 미리가 9월이면 떠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쥐들을 키울 사람이 없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쥐꼬리 때문에 너무 징그러워서, 한번도 그것들을 쓰다듬은 적도 없었고, 키울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는지는 미리가 더 잘 안다. 방학이 시작되고, 쥐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우리 집안의 관건이었다. 동물애호가 두 언니는 동물보호센터등에 알아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래서 처음에 알아보았더니, 자신이 키우는 동물 한마리 "포기"하는데 들어가는 돈이 $50 랜다. 50 곱하기 12 하니, $600 를 내야 한다는 말. 웃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자세히 알아보니, 쥐새끼처럼 한 어미배에서 나온 새끼들은 그렇게 많이 받지는 않는다는데.. 문제는 돈을 주고서라도 포기할 마음이었지만, 쉘터에 남은 자리가 없다고 받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어쨋거나 오웬사운드 동물보호소(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미리가 울상)도 가니, 전화번호만 남겨놓고 가랜다. 물론 그 뒤로 전화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 여러 애완동물 샵에 혹 필요하면 주겠다고 언질을 주었지만, 다시 전화가 되돌아온 곳은 없었다.
길거리에 방류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그런 말들을 언니들에게 하지 말라는 것이 미리의 주문이었다. 나는 그런 일들을 숨겨서 할수는 없는 일, 다른 방법이 없다면, 그렇게 라도 해야하는데, 우선은 가족들의 인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미리는 쥐들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추궁을 두려워해서인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쥐들 때문에 한 일이라면, 프리마켓 관리자에게 그곳서 원하는 사람에게 줘도 되겠느냐고 문의했던 것, 우리 가게에 싸인붙이고 동네 아이들에게 홍보했던 것, 둘째 루미는 페이스북에 광고를 내고 양부모를 찾았던 것 등등이 있었다. 또한 미리의 친구는 9마리의 보이 쥐들을 "귀향파티"에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안겨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미리가 만든 쥐 입양 포스터.. 연락온 사람은 없었다는..
그러던 어느날, 키치너에 사는 막내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들이 기니픽을 원해서 지금 막 사려고 하는데, 조언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그애들을 그 자리에서 스톱시켰다. "미리언니"가 키우던 쥐들이 새 주인을 찾아야 하는데, 한번 다시 생각해보라고. 그래서 걸 쥐들 3마리는 키치너의 조카들 3명에게 가게 되었다. 그들에게 수많은 회유와 사탕발림과 동정에 호소해야만 했다.
하하 미안하다. 쥐들 이야기에 흥미가 없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아직도 이야기가 남았다. 9마리의 사내쥐들은 다행이 펫샵으로 가게 되었고, 미리가 자식으로 여기는 엄마쥐(프리다) 아빠쥐(오스카)는 토론토로 이사갔다. 아빠쥐는 언니 루미가 돌봐주기로, 엄마쥐는 루미의 친구 마리아가 역시 돌보기로 하였다. 프리다와 오스카는 미리가 방학하면 다시 찾기로 했고, 잠시 친척집에 맡겨진 셈. 프리다는 새집을 얻었는데, 3층짜리 럭셔리 케이지라니, 양부모를 잘만났다고 볼수밖에. 나는 프리다와 헤어지는 날, 루미(둘째)가 안고 있는 프리다를 나도 모르게 쓰다듬고 말았다. 결국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미리가 토론토대학교 기숙사로 떠나던날, 우리는 쥐들까지 이사시켜야 해서, 큰 달구지(트레일러)를 끌고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다운타운 좁은 학교길에 그것을 달고가서, 미리방에 짐을 부리는데, 차를 빼달라는 성화에 미리 짐을 팽개치고, 재빨리 내려올수밖에 없었다.
그애와 가슴까지 통하는 포옹을 한후로 나는 천근의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어미의 직관이라면, 미리는 마지막 순간에 엄마에게 마음을 열기로 결심한 듯 싶었다. 집을 떠나기 바로 직전...
미리가 그린 프리다.. 제가 좋아하는 화가
나는 이 작품이 조금 무섭다. 미리의 마음속 모양이 아닌가 해서. 혹 그랬더라도 이제는 훌훌 털고 일어났기를.
방학 동안 2개의 아이폰을 잊어버려서, 쥐새끼들을 처리하지 못해서 눈총을 샀고,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하지 않아 믿음을 주지 않았던 미리는, 그런 일들로 인해 자신도 기가 죽어있기도 하였다. "내가 멍청한가?" 하면서. 우리가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나도 어렸을때 "넌, 왜 그렇게 하니, 이렇게 하지?" "넌 정말 왜 그러니?" 하는 말을 같이 살았던 언니에게 많이 들었었던 사실이 환기되었다. 그래서 "미리야, 엄마도 그런 소리 듣기 싫었는데, 내가 너를 그렇게 대했구나. 부모는 네가 집을 떠나니까, 완벽하기를 바래서 그랬던 것 같다.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미리가 벌여놓았던 일들이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미리는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제게 잔소리만 하는 것 같은 언니의 도움으로 프리다, 오스카가 새로운 살곳을 얻었고, 제가 돌봐주어야만 했던 어린 사촌들이 어린 쥐 3마리를 키우기로 했고 말이다. 그림쪽으로도 공부할 생각을 하긴 했지만, 나중에 사회학으로 돌아섰다. 그 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길 바란다. 혹, 그것이 아니라면, 언제든 바뀔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마음의 안정을 찾았으니, 그녀가 잘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안고 살련다.
순수하고 풋풋한 대학1년생 미리야... 네 뒤에는 언니들, 엄마 아빠 그리고 친구들이 있다.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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