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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루미 미리.

선천적 복수국적자.. 2세 여자의 경우

가게에는 오래된 오디오가 하나 있다. 가게를 인수했을때부터 전주인에게서 물려받은 기기중의 하나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그 오디오를 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단지 파워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된다. 그러면, 언제나 같은 방송국에서 발신하는 다른 내용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로컬방송으로 뉴스와 음악이 번갈아가면서 방송되는, 이 지역 사람들이 즐겨듣는 방송이겠다.


가게안에는 천장 아래에 스피커 몇대가 설치되어 있고, 그것 또한 우리의 손을 탈일은 없었다. 가끔 방송 상태가 좋지 않으면 잠시 꺼놓았다가 다시 트는 정도로 단 한번도 고장을 일으키기나 하지 않았다.


지난 여름부터 우리와 함께 생활하게 된 큰딸이 가게를 나가게 되면서, 가게 오디오에 자신의 음악을 접속해 틀면 안되냐고 물어왔다.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된 음악이나, 스마트폰에 저장된 음악을 틀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더니 기계가 오래되어서 스마트폰과 오디오를 접속할 수 없는 것 같단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면서, 그 오디오는 얼마나 된 것이냐고 묻는다. 나는 설명끝에 전 주인이 10년 사용했고, 우리가 17년 되었으니 적어도 27년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절대로 바뀌지 않는 옛사람"처럼 오래되었다고 나도 모르게 덧붙였다.


문제가 되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는 게으름으로 인한 또하나의 빅뱅사건이 터졌다.


한국에 영어교사로 가기위해 큰딸이 준비중이다. TEFL(테플, 외국인에게 영어가르치는 자격증)도 좋은 점수로 끝냈고, 한국 공공 교육기관에 소개시켜주는 리쿠르터와의 인터뷰도 통과해, 그녀가 조언해준 대로 비자 관계를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접속해보니, 무언가 쉽지 않은 조짐이 보였다. 예전에 내가 포스팅했던 기사중에 아들내미를 한국의 영어교사로 보내려다 포기한 내용이 있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병역문제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딸만 셋인 우리집은 그런 걱정에선 해방이구나, 솔직이 안심했었다. 그런데, 기사를 찾아읽을수록, 점점 미궁에 빠져드는 그 무엇이 있었다.


토론토 영사관에 나래(큰딸)와 함께 갔다. 이 자리에서 알게된 사실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낭패감을 선사했다. 내년 3월 학기에는 갈수 있을 거라 생각해왔는데, 학교를 구하기도 전에 비자문제에서 막혀버리게 되었다.


사연인즉슨, 우리들의 결혼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둘다 캐나다에서 만났고, 캐나다에서 결혼했다. 딸 셋을 낳고 지금껏 살아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국과 서류상으로 부딪칠 일이 없었다. 캐나다와 한국이 무비자 협정이 되어서 한국방문할 때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무엇을 해야 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영사관에 가서 안 사실은, 부모가 한국국적이었을 때 태어난 우리집 아이들은 자동 한국국적을 가지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권한이 있는 국적이 아니라,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이란다. 18세 이전에 한국국적을 취득하든지, 이탈하든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18세 이전에 국적을 이탈하지 않았으면 그후라도 국적이탈을 해야 비자를 신청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집 아이들의 또하나의 문제는 부모가 한국에 혼인신고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이고, 출생신고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인지라 이 모든 과정을 거친후 국적이탈을 해야만, 재외동포로서 한국서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F4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외국에서 태어나 그 나라의 국적을 갖고있는 아이에게 부모가 한국국적이 있었다는 이유로 한국국적자로 취급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이런 2세들을 선천적 복수국적자라고 부른다. 우리들은 1996년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했으니, 그날 이후로 국적상실이 되었으나, 그또한, 국적상실 신고를 했어야 한다는 사실도 또 이번에 알게 됐다.


그러니까 한국에 혼인신고, 출생신고, 나래의 국적이탈신고, 우리들의 국적상실신고가 끝나야 비로서 F4비자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있게 된다는 게 담당자의 말이었다. 이번에 혼인신고를 위해 필요한 서류를 살펴보니 이 나라에서 발행하는 결혼증명서가 필요한데 이것만을 신청하는 데도 3주가 걸린다고 나와있고, 각각 신고서에 필요한 양식이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그 모든 서류를 구비하려면 한세월 걸릴 것이고, 특별히 이곳서 신청하면 한국으로 보내기 때문에 국적이탈신고같은 경우는 6개월이 걸린다고 하니 이게 총 서류완비에만도 1년여가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적이탈 신고를 위해서 캐나다정부에 신청하는 시민권증명서만도 12페이지에 달하는 긴 양식으로, 시민권카드(내가 지니고 있는 것)로 한다면 간단할 것을 왜 그리 복잡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국적상실을 하기위해서 그렇게 많은 서류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데, 한국으로 일하러 가려는 젊은이들의 발을 아주 묶어놓으려는 심사인 것 같다.


담당자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 아예 잊고 다른 일을 하던가,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오늘 다시 전화해보니, 다른 담당자는 1년 6개월은 걸릴 것이라는 데 이건 아예 진로를 변경하라는 말과 다름이 아니다.


외국인들에게 주는 E2비자를 받고 한국으로 가면 안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사관에서는 그럴 수 없단다. 아이가 태어날때 우리들이 한국국적을 갖고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 또한 한국국적을 자동적으로 갖고 있었고, 그것을 이탈해야 재외동포 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모든 일이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던 것들이었다. 이민올때 한국 정부에서 주지시켜주어야 하는 항목이었어야 할 것도 같다. 내가 과문해서 인지, 이민올때 그런 교육은 받은 적이 없었다고 본다. 어쩌면 영사관의 업무가 또한 그런 것일텐데, 그 또한 그들의 업무소관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아니면, 열심히 했지만, 듣지않는 사람들의 문제라고 하든지.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를 아는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한번 방문후에 필요한 정보를 알기위해 토론토 총영사관 웹사이트를 여러번 뒤적였으며, 그래도 풀리지 않는 의문을 위해 전화를 했지만, 담당자가 없어서인지 수많은 접속끝에 약간의 정보를 더 얻어낼 수 있었다. 국적이탈에 필요한 10여가지의 서류들을 빠짐없이 구비하려면, 온타리오 서비스, 캐나다 서비스, 증명사진관, 영사관 얼마나 수없이 방문해야 할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영사관은 3시간 걸리는 곳에 있으니 매번 갈수도 없고 속타는 여정의 시작이다.


한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한국 영어교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나래의 집념이다. 오래전부터 계획해왔던 것이라 포기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가서 배우고, 가르치고, 느끼고 오겠다는 것이다. 서류를 준비하는 동안 한국말을 더 배우고 가겠다고 하니 그애를 믿고 봐줘야 한다.


만약에 우리의 과거(?)가 깨끗했으면, 이렇게 막막함을 느끼게 되지 않았을텐데. 한국에선 아직도 나와 남편은 결혼안한 채로, 그냥 권한은 없는, 국적상실신고를 기다리는 국적상실자로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이민온지 30여년이 되어가는 때 발견하는 서글픔이 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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