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도 로즈메리였다. 또다른 로즈메리는 나의 사돈이 되는 루미의 시어머니의 이름이다. 우리는 그녀의 이름을 수없이 불렀다. 로즈메리가 결혼에서 맡은 일이 많았기에.
결혼이 얼마나 힘든지, 그걸 은근슬쩍 알려줬던 20대의 그녀.
그녀는 신문사 광고담당이었던 한인 1.5세 아가씨였는데, 편집할 때면 디자인된 광고를 갖고와서 신문 편집용지 하단에 붙이면서,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남자친구가 있는 듯했고, 결혼 준비중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수심이 가득한 채로 말한다.
그 준비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그걸 모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결혼할 대상을 못찾아서 고민인 것은 이해하겠는데, 결혼식이 그리 어렵다고 했다. 나도 캐나다에서 결혼했지만, 나는 한국식인 결혼이어서 지금 생각해도 결혼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었다.
두번째는 조카 우순이의 결혼이었다. 10년째 사귀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지못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짝이 있으면 물한사발이라도 떠놓고 결혼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우리들의 시각이었으니까. 조카가 사귄지 10년째 되던 해,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하고, 한국식 캐나다식이 반반씩 섞인 큰 결혼식을 마쳤다. 그러고도 시간이 흘러흘러 조카의 결혼이 얼마만큼 힘들었을까, 알게되는 계기가 생겼다. 바로 루미의 결혼을 몸소 치러야 했으니.
지난주에 치러졌던 결혼식은 많은 이야기를 남기며 잘 마무리됐다. 백조가 우아한 몸짓을 하기 위해서는 물밑으로 수많은 발길질을 해야한다. 루미의 결혼식이 그러하였다. 겉으로는 크게 흉잡을 것 없는 아름다운 결혼이었다. 그걸 준비하는 사람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나래
한국에서 2주간 휴가를 내어왔다. 동생이 언니가 없는 결혼은 할수 없다고 했고, 본인도 결혼식에 꼭 참석한다 하여, 결혼날짜가 나래 위주로 하여 짜여졌다. 나래는 bridesmaid로 루미옆에서 모든 일을 도와주어야 했다. 나래도 처음 계획으로는 친구 만남을 결혼준비보다 약간 우위에 두었다. 오랫동안 친구들을 보지못했고, 못본지 4년이 넘는 아이들도 있어서, 이번에 오면 모두를 만나고 가야 할 것이라도 말했다. 친구들을 만나면서 결혼준비를 짬짬이 할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휴가 계획을 짰다는 연락이다. 그 사정을 알게된 결혼준비 핵심멤버인 조카 헬렌과 미리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래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다는 것이다. 우선은 결혼준비에 온 정신을 쏟고 친구만남은 결혼식이 끝난후 해야한다는 의견들이었다. 나래는 결혼전에 친구를 만나고, 결혼후에는 집에와서 부모와 시간을 보내다 간다는 계획이었는데, 우선 미리가 그 계획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여, 긴 토론을 통하여 나래의 계획을 수정하게 됐다. 우리도 결혼후 친구를 만나고, 집에 올 시간이 없으면 안와도 괜찮다, 결혼준비가 먼저다, 이렇게 말해줬다.
나래는 휴가계획을 모두 고쳐, 친구만남을 결혼후로 미뤘다. 그리고는 정말로 페이슬리에는 올 시간이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마지막날, 우리가 토론토로 가서 만나고, 그 다음날 공항에 데려다주었다.
나래는 동생집에 머물면서, 테이블 데코레이션, 꽃장식, 신부 운전기사, 신부와 함께 하는 1박2일 bachelorette 파티도 가야했고, 신부 친구들과 함께 한 "고급 티 파티" 등등, 여러가지 일을 소화해냈다.
친한 친구들이 들러리를 서준다고 하는데, 나래가 했던 일로 봐서는 친구에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을까, 그만큼 많은 일들을 맡아해야 하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미리
미리는 어떤 과업을 완성해내듯 비장하게 이 일을 감당해냈다. 이런 저런 일로 내가 루미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그렇잖아도 힘든 일이 많을텐데, 엄마가 참으라고 하곤 했다. 결혼준비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내게 수시로 상기시켜주고, 그러나 그 과정 자체를 즐기라는 당부를 하기도 했다. 내게는 어쩌면 일생에 한번있을 일일 수도 있다며, 후회없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사실 신부 루미의 스트레스가 가끔은 "히스테릭"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루미를 달래주고, 믿어주고, 용기를 주는 가장 고마운 동생이었다. 심하게말하면, 신부의 "하녀"였던 미리의 이번 결혼식 과정은 매번 산을 정복해야 하는 고된 일정이었으리라 본다.
결혼식이 잘 끝나고, 언니집에서 우리가 머물던 숙소에 와서, 내게 한참을 하소연했다. "지쳤다"면서 집에 바로 갔으면 한다고. 우리는 하룻밤 더 자고 떠나올 예정이었는데, 미리의 그런 심정을 이해못할 것도 아니었다. 숙소앞에서 나와 미리는 30여분간 대화를 나눴다. 그러면서 차차 나아지기 시작해서, 그 다음날 집에 갈수 있었다. 무언가 잘 안풀리는 일이 있을 때마다 루미 언니의 투정을 받아내느라, 온갖 힘을 소진했지만, 마지막까지 그 일을 충실히 해냈다.
# 루미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거야"라는 말을 몇번씩 했다. 그만큼 힘이 들었다는 말이었겠지. 완벽함을 사랑하는 루미에게, 수많은 제대로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결혼은 그야말로, 매번 후회와 자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우선 드레스만 해도 그랬다. 결혼 날짜가 잡히고, 바로 로즈메리와 드레스를 보러갔다. 드레스에 많은 돈을 들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이 있었지, 그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방도를 몰랐다. 미래 시어머니의 호의에 거절을 못하고 웨딩샵에서 입혀주는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계약한 것까지는 괜찮았다. 그 당시에 루미는 상당히 몸무게가 나가는 형편이어서, 그 몸보다는 조금 작게 드레스를 주문했는데, 그게 큰 잘못이었다. 드레스가 고쳐질 즈음 전화해서 몸무게를 말하고, 사이즈를 말하니 그렇게는 할수 없다며, 자신들이 만들어진 드레스를 주었다. 물론 너무 큰 사이즈의 드레스를. 신랑 어머님을 생각하여 찾아와서 고쳐주는 집을 수소문하여 갖다 맡겼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드레스"에 대해서 일언반구 말할수도 없었다. 그 수선집이 제대로 된 집인지, 꼭 그 드레스를 고집하지 않고, 다른 드레스를 보는 게 어떻겠느냐, 할 수도 없고. 시어머니와 얽혀있는 일이고 하고, 저도 나도 그냥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수선가격은 드레스값과 같은 가격이라 하였다. 드레스를 1,600달러에 샀는데, 수선비가 1,600달러가 든다는 말을 들었을때 턱 잠시 숨이 멈춰졌다. 그런데 계속 시간을 끌더니 결혼 며칠전에 연락이 와서 갔더니, 몸의 사이즈가 조금 더 줄었다면서 또 더 고쳐야 한다고 해서, 다시 맡기고 왔다고 하였다. 마지막 찾는 날쯤 일이 늘어나서 400달러를 더 줘야 한다고 그걸 마련해야 한다고 난리이다. 그날 내가 루미랑 함께 갔다. 그 여자의 영혼없는 질문, 둘러대는 말, 바쁜척해 보이는 행동, 내게는 다 기막힌 사기꾼의 표정이다. 드레스를 입어보는데, 단추가 느슨해서 내가 왜 이건 이러냐, 했더니 다시 고쳐준다고 가져갔다. 옆방에서 수선을 하는가 보았다. 그러더니 단추 하나 고치는데 45분의 시간이 든다고 하니, 그 단추를 왜 고쳐달라고 했던가 후회가 되었다. 루미는 내가 인상쓰는 것마저도 안절부절하였다. 내일 모레가 결혼식인데 이미 엎지러진 물, 더 크게 벌릴다고 나아질 형편이 아니어서 참아야만 했다. 어쨋든 45분 동안 주문했던 꽃을 찾고 다시 가서 돈을 주고 드레스를 찾아왔다. 루미는 농담반, "이 드레스를 불태우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애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기가 막혔다.
드레스만큼은 아니지만 크고작은 약속들이 어그러지고, 의사소통이 안되고 그랬었던 게 틀림없다. 사진사, 디제이, 예식장 담당자들과의 몇번씩 미팅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식 주례를 서주셨던 트리스탄의 외삼촌 휴 레이드 목사님과의 몇번의 회동등 루미가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게스트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초대장을 보내고, 웨딩 리허설 준비까지.
루미와 트리스탄을 통해서 결혼준비가 진행이 되니, 중간에서 모든 질문과 진행상황을 일일이 알려줘야 하는 것등, 내가 알수 없는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엄마인 나도 루미에게 서운할 때가 있었다. 조금 더 너그럽게 진행할 수 없었나, 하는 것이 나의 질문이긴 하다. 나래는 미리에게 "미안하지만 내가 다시 브라이드 메이드 하는 일은 없을 거다. 알아서 하라"하고 말했다지, 내게는 "결혼을 다른 곳에서 하고 와서 알려주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루미 편에서 생각해보자면 계획된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사람들이 답답하였을 것이다. 자꾸 늦어지고, 다른 말하는 이들도 있었을테고. 결혼식날 사진촬영을 결혼식후 하고오기로 처음에 계획했었다. 식장과 리셉션장이 함께 있어서 하객들에게 도움이 되는 장소였는데, 신랑신부와 부모가 사진촬영으로 자리를 비우게 된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되는데, 결혼전에 신랑에게 신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는 그 한가지를 지키기 위해 루미와 트리스탄이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계획이었다. 아무래도 그렇게 되면 결혼식이 상당히 이상하게 진행될 것이기에 조정의 의견을 내놓았다. 루미는 눈물을 보였다. 에드워드 가든에 사진촬영 약속을 해놓았는데, 그 돈이 400달러나 된다 하였다. 옮기기 힘들다면서. 나는 가까운 공원이 없는가, 아주 더운 여름날 식장 주변의 공원을 헤매고 다녔다. 결혼촬영을 할만한 장소는 눈에 띄지 않았다. 나중에 식장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혼식 전에 사진촬영을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강력한 의견이 들어와서 바꾸게 되었디. 본인들도 처음 결혼하는 것이니, 시간안배와 전체적인 조화 사이에서 제대로 감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큰 낭패를 볼만했던 "사진촬영" 문제가 해결되었다. 막상 당일 신랑이 가든에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루미는 마음고생을 더 해야했다. 제대로 맞아떨어지듯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듯, 루미에게는 살얼음같은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그걸 곁에서 지켜본 두 딸 나래와 미리, 결혼식에 얼마한한 함정이 있는지 익히 알게되니, 이제는 이런 결혼식을 다시 하지 않게 될 공산도 크다.
'나래 루미 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미의 결혼(끝) (0) | 2019.08.13 |
---|---|
루미의 결혼 (2) (0) | 2019.08.10 |
루미의 약혼파티 (0) | 2019.06.05 |
선천적 복수국적자.. 2세 여자의 경우 (0) | 2015.10.07 |
루미의 대학 졸업 (0) | 2015.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