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 cum laude
이 몰랐던 단어가 주는 묘한 설레임이 엄마의 푼수끼와 맞물려 그것이 에너지가 되어 공중에서 불꽃으로 확 타올랐던 사건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안하고 여름을 날수는 없을 것같다.
시간을 돌려보자.
졸업을 앞둔 둘째 루미한테서 "잡job"을 찾는다는 기특한 소식이 들려왔었다. 이력서를 낸 곳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는 아이의 통화내용이 조금 수상했다. 파트타임도 괜찮고, 그런 일이라면 잘할 수 있으며, 언제든 일할 수 있다는 내용등이었다. 전화를 끊은후 그애가 하는 말이, "펫샵(Pet Shop)"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오랜만에 마음편히 쉰다며 집에 올라오는 길이었는데, 그 인터뷰 때문에 며칠후에는 내려가야 한다면서 기뻐한다.
딸이 잡 인터뷰 전화를 받았다는데 당연히 "축하한다"는 말이 나와야 정상이지만, 나는 앞이 깜깜해지는 느낌이었다. 졸업시험을 끝낸지 며칠후, 대망의 대학졸업을 앞둔 아이가 가야할 첫번째 직업이 펫샵의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하니, 이건 좀 아니다 싶었던 것이다.
동물을 지나치게(?) 좋아하고, 간간히 펫 시터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해서, 만만하게 생각되었던 것이 펫샵에서 일하는 것이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지만, 어떻게 제대로 된 직장을 알아볼 생각을 하지도 않고, 그렇게 결정했을까, 마음이 무거웠다.
집에 있는 동안은 그 일에 대해서 별말이 없이 즐겁게 지냈다. 모처럼 온가족이 모였었고, 아이들이 차린 저녁상을 받으며 기뻐하기도 했다.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하고 말이다. 사건은 토론토 가는 차안에서 터졌다. 루미가 말한다.
-지난 4년간 학교생활 열심히 했고 잘 마쳤다. 이제 새로운 생활로 접어들어서 기뻤다. 그러나 엄마의 표정이 좋지않아 마음이 안좋다. 여러곳에 이력서를 넣었고, 그중 한군데서 그나마 연락이 와서 기뻤었다.
* 직업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잘안다. 그러나 아무런 곳이나 가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펫샵에 간다는 것에 대해서 축하한다고 말해줄 수는 없었다.
- 그 일을 오랫동안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아파트 렌트비는 벌어야 하니, 우선 일하면서 다른 곳을 찾아보려고 했다.
* 네가 열심히 공부했고, 능력도 있다. 무엇을 하든지 기다려줄 수 있다. 조금 시간을 가져라.
결국 그애는 눈물을 보였고, 나 역시 그애를 안으며 울었다. 우리는 번잡한 그애 아파트 앞에서 차를 주차시키고, 한동안 어찌해야 할바를 몰랐다. 더 머물수도 없는 곳에서 서로를 안타까와하면서 헤어졌다.
그 뒷날 펫샵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둘째에게 전화가 왔다. 펫샵 주인이 "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이런 곳에 왔냐"는 듯한 뉘앙스로 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엄마말이 맞는 것 같단다. 그래서 장황하게 다시 이야기를 해줬다. 지금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보자, 그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며칠후였던 것 같다. 루미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학교에서 다음과 같은 편지가 왔다는 것이다.
Dear Janet, I congratulate you on your outstanding academic achievement as a summa cum laude graduate in the Faculty of Liberal Arts & Professional Studies. You are part of an elite group of scholars: summa cum laude-the highest academic distinction-is reserved for students who have achieved superlative academic results. As a testament to your academic success, we will be publishing a congratulatory message with the names of our most distinguished graduates in the Toronto Star on Saturday, June 20. I am honoured to have the opportunity to celebrate your exceptional accomplishment. If you do not wish to have your name listed, please reply to me by Friday, June 12. On a more personal note, and in addition to the newspaper announcement, I will be following up with a congratulatory letter by mail. I am looking forward to presenting you with your degree at Convocation and to congratulating you on your impressive academic achievement. Well done! Sincerely, Martin Singer
Faculty of Liberal Arts & Professional Studie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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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하고, 토론토 스타지에 이름이 날 것이라는 소식에 나와 남편은 뿅갔다. 졸업이 6월 16일이었는데, 아마도 그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 그러나 나의 푼수끼는 그날 저녁 카톡을 붙잡고 가족들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랑질을 하기 시작했다. 때만났다는 듯이 "우리 애가 얼마나 공부를 잘했는지, 좀 봐주시오" 하면서 오두방정을 떨었다.
아마도 "highest"란 단어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마치 내딸 혼자가 "Summa Cum Laude"를 받는양, 문과대학 전체의 수석이라도 된것처럼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통 자랑할 일은 아니지 않았겠는가?
우선은 루미에게 축하를 주고, 그 여세를 몰아서 "대학원"의 압박을 가했다. 그동안 가정형편을 고민한 때문인지, 공부가 지겨워져서였는지 대학원에 가지 않는다고 말해왔기에 밀어붙이지 못했지만, "공부에 소질있음"을 증명받은 셈이니, 더 공부하여 제대로 된 길을 찾아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루미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로라도 부모의 도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루미가 조금 숨을 고르는 계기가 됐다. 우리도 난데없이 힘이 생기고 딸의 미래의 문이 밝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것들은 긍정적인 측면이다.
그저 아이를 축하하고, 가족들간에 조촐한 자축분위기에서 멈췄어야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 라틴어로 "summa cum laude"는 성적이 가장 우수한 졸업생에게 주는 칭호이긴 하나, 최우수졸업생의 개념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수석졸업"의 의미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요크대학에서는 전공점수 평점이 8.0이 넘는 졸업생(즉 A학점 이상)에게 이 칭호를 부여했다. 루미가 졸업한 Liberal Arts and Professional studys Faculty(쉽게 말하면 문과대학)에는 총 60여개의 학과 3천여명의 학생이 있는데, 이중 100 여명이 "숨마 쿰 라우데"로 졸업했다. magna cum laude가 그 다음을 잇고, cum laude가 뒤따른다.
루미 한명이리라 예상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수의 학생들이 특별한 상을 받는다고 생각했기에, 미리 자랑을 심하게 했었다. 그날 졸업식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주면서, 각자가 받은 학위의 종류를 발표해 주었을뿐, 특별히 학생중의 몇명을 골라 특별상을 주지는 않았다. 수석과 차석, 그리고 사회단체에서 주는 어떠한 상도 없어서 서운하면서도 공평하다 생각되었다. 많은 잘한 학생들중에 한명이었던 둘째 루미.
루미 사건을 겪으면서 학업위주, 성적위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자신을 투명하게 직시할 수 있었다. 딸내미를 핑계로 "어미된 자가 꽤 괜찮은 사람"임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기도 했다. 학교에서 편지를 받고 졸업식이 있기까지 2주간, 그동안 이모저로로 마음을 끓였던 나에게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시나, 이런 "자뻑"에 빠지기도 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나서, 너무 심하게 떠벌린 자랑을 해명하느라, 땀깨나 흘렸다. 어떤 사람에게 준 말은 도는 넘지 않았을지 몰라도 나의 마음의 도는 이미 넘어버렸었다. 우쭐하는 마음, 그속에는 보상받으려는 "엄마의 마음"이 가장 큰 자리를 차지했다.
어쨋든 이렇게 저렇게 사연많은 졸업식이 끝났다. 루미는 자신감을 되찾고, 차근차근히 자신의 앞길을 준비해나가고 있다. 내년쯤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어떤 학과를 가야 하나 골똘히 생각중이다. 그애가 공부한 학과는 Health And Society로 건강과 사회 관련 학과이다. 아빠의 바램은 "변호사"지만 그애는 "변호사"는 아니라고 한다. 무엇이 되든 사실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더 심하게 말하면, 펫샵에서 일한다고 해도 참아줄수도 있을 것 같다. 그애를 믿게 되었으므로.
루미는 자신이 성적을 잘 받은 까닭은 부모의 도움으로 일하지 않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말하며, 공을 우리에게 돌린다. 내가 심하게 기뻐하자, 엄마가 알리고 싶은 사람에게 다 알려도 된다고, 허락까지 해주는 착한 딸이다.
나의 자랑에 맞장구를 쳐주고, 으쓱한 마음을 더욱 으쓱하게 만들어주었던 가족 친구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한다. 진짜 자랑거리가 생기면 또 한번 방정을 떨테니, 그때 다시 박수를 쳐주시기를 고대한다. 이번에 속았다고 외면하지 마시고.
지난 고등학교 졸업때도 부모에게 큰 자랑이 되었던 루미야.
너무 고맙다. 수고했다. 너의 성실함과 겸손함 그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네게 부모로서 큰상을 주고싶다.
전광판에는 SNS에 올린 축하글이 실시간으로 떠올랐다.
졸업식에서 학장은 학생들의 성취를 축하한 다음, 그 성취를 있게 한 자리에 앉아있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고마움을 돌리라 당부한 다음, 새로운 도전에 대한 마음가짐을 주문하고, 그 다음에 할 일은 받은 것을 사회에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영어로 길게 말했는데, 대충 그런 정도의 내용이었다. 너무 당연하고 또 보편적인 연설이어서 줄거리를 집어내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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