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 넘어서를 인생후반전이라 한다면, 후반전에 들어 최고로 바쁜 2달을 보냈다.
모든 것은 한꺼번에 이뤄졌다.
막내가 마지막으로 집을 떠나고, 몇몇이 얼마나 허전한가를 물어오곤 했지만, 인사치레상 "섭섭"함을 표현했을뿐 정말로 너무 가뿐했다.
어른 둘과 아이 하나가 먹을 때 일의 강도와 고민등을 10이라 할때, 어른 둘만 먹을 때 그 강도는 3 정도로 떨어졌다.
아이가 한끼 굶어야 할 때는 전전긍긍, 어찌해야 할바를 몰랐는데, 사정상 남편이 한끼 굶을 때는 그럴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됐다.
입맛을 맞추는 것도, 먹는 시간을 형편에 따라 바꾸는 것도 모든 게 너무 쉬워져서 정말 살림이란 게 별게 아니구나 스스로 놀라게 된다.
자, 일이 이렇게 쉬워졌으니, 시간이 많이 남아야 한다.
그런데 그 자리를 채운 그 무엇이 있었다.
골. 프.
그 대단한 바다에 아주 풍덩 빠져버렸다.
골프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봐왔다. 주변뿐 아니라, 가족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다. 그들의 한결같은 말은 "너무 재미있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유혹을 느끼지 못했었다. 아마도 그때는 "때"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나와 남편은 "싸구려" 골프장비는 있었다. 가끔 우리끼리 치기도 하고, 손님대접으로 같이 나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저 휘둘러서 공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골프였던지라, 재미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그런 세월이 10여년. 골프는 영 할일이 없을때 하는 것으로 치워놓았던 게다.
자주 모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골프 이야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잘치는 한분이 골프를 가르쳐주겠다고, 함께 해보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이미 인간적으로 친숙하였고, 골프가 아니더라도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들이니, 함께 무엇을 하든 유익할 것은 분명하였다. 그리고 그 때쯤 나는 "허약체질"로 판명이 나있는 상태고, 건강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숙명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또 군침이 돌았던 이유중에 하나는 올해 회원권을 구입하면, 10월까지 이용하고 내년 1년간 더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즌 마지막쯤에 구입하면 공짜로 그 다음해까지 이용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되는 셈이다. 또한 시골에 있는 골프장이라 그런지 도시의 골프회원권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작지는 않는 돈이지만, 그 돈을 내고 운동과 사람들과의 만남까지 얻을 수 있으니, 뭐 투자할만하다 싶기도 하다.
이미 골프에 일가견이 있는 두집 부부와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집, 연습해본 경험이 있는 집, 그리고 가끔 쳐본적이 있는 우리집, 모두 5부부가 한 골프장의 회원권을 동시에 구입했다. 회원권을 구입할때만 해도, 골프라는 게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는 채로 말이다.
아무때나 가서 칠수 있는 회원권을 샀으니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우리를 가르치기로 한 최코치는 그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골프 라운딩은 가끔씩 해야하는 것이고, 일단은 연습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원권을 사면서 연습장 회원권도 하나 만들었다. 모두 같은 날 모여 연습하기로 한것이다. 그때부터 최코치의 강훈련이 시작되었고, 학생들은 열심히 따라주었다.
특별히 한 학생은 코치의 권고에 따라 아예 매일 연습장에 나와 공을 친다. 나는 사실 굉장히 놀랐다. 연습이 필요하다면 하겠지만 코치의 권고대로 따라서 하는 학생을 바로 옆에서 보니, 고무가 되었다. 최코치는 스스로도 연습을 해야한다며 열심이었고, 시간날때마다 연습생들에게 코치해주었다. 열심있는 선생과 학생들이 만나니, 골프가 흥미로운 운동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되지 아니하였다. 채를 들어올렸다 내려치는 그 동작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골프의 모든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 왜 그리 어려운 것일까? 그것이 골프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고, 각자의 신체에 따른 조금 다른 동작도 발생한다. 처음엔 손목을 꺽어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지금도 그것이 잘되지 않는다. 그 다음 체중이동. 남편은 고개를 드는 병을 고치려고 공을 칠때마다 주문을 외운다. 고들총이라고. 이 말은 고개들면 총맞어의 약자란다.
이렇게 배우면서 함께 라운딩도 한다. 완전초보임은 말할것도 없다. 그런데 이 골프라는 놈은 "다음엔 꼭 잘할 수 있을 것"같은 그런 착각이 든다는 것이다. 잘친 것만 기억나고, 옆으로 삐질삐질 빠져나간 공들은 기억에서 자꾸 밀어낸다. 제대로 맞았을때의 그 "새 한마리를 날려보낸 것 같은 가벼운 터치"의 맛을 알게 되기도 하였다.
골프는 공과의 인연이 시작되는 동시에 사람들과도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가령, 거의 마지막으로 보여지는 지난 금요일의 라운딩에 대해서 말해보자. 날씨는 좋지않았지만, 그래도 시작할때 비가 오지는 않았다. 여자 4명이 모였다. 영상 4도쯤이었는데, 5번홀을 돌고났더니 눈이 날리기 시작한다. 조금 있다가 우박이 떨어진다. 더이상 공을 칠수 있는 날씨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머리에 떨어지는 눈과 비로 내 머리카락은 얼어붙어 뻣뻣해져가는 것 같았다. 옷입은 것도 조금 부실했고, 잔디밭 곳곳은 물바다가 되어, 잘 헤쳐걸어야 했다. 9번홀에 도착했는데, 햇빛이 나기 시작한다.
4명의 여자들은 햇빛을 받으며 서서, 비에 젖고 날씨에 얼어서 벌겋게 된 서로를 쳐다보고 웃기 시작한다.
마지막홀이라고 생각하고 공을 쳐올리며 가자 하였다. 4번 선수가 치는데 무엇인가가 휙 멀리 날라갔는데, 날아야할 공이 아니라 골프채가 저멀리 날아가버린 것이다. 골프채가 손에서 미끄러져나간것. 우리들은 그 모양을 보고 허리를 구부리며 웃지않을 수 없었다.
매번 골프칠때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나는 두번이나 혼자 치기도 했다. 한번은 약속이 있는줄 알고 나갔는데, 나 모르게 약속이 옮겨져서, 나간김에 18홀을 혼자 돌았다. 혼자치니, 이러저런 생각도 하기도 하면서, 웃거나, 찡그리면서 해와 공과 잔디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렇게 자유롭고 좋았다. 시간이 없을때 혼자 나가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혼자 치는 사람에게는 앞사람들이 양보를 해주더라.
처음에는 비오면 골프는 못치는 걸로 알았다. 그러나 "웬간한 비"는 또 극복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흰눈이 덮여서 공이 안보일때까지 골프광들은 골프장을 찾는다. 그러나 겨울이 빨리오는 그레이 부루스는 이제 골프시즌은 끝이다.
싱글에 육박하는 최코치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스윙방법은 "임경빈 프로"가 가르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여러가지 스윙방법이 있겠지만, "흑마단" -클럽 이름이 Black Horse"여서 이렇게 부른다- 선수들은 임경빈 프로의 것을 배우기로 하였다. 이미 일정한 단계에 도달한 이들은 새로운 스윙방법을 배우기 쉽지 않다는데, 초보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한가지 스윙법으로 하면 되니 말이다.
옛 친구 하나는 이렇게 말했다. "골프는 현대인들을 밖으로 불러낸 유일한 운동"이라고.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해서 "전염병"처럼 멀리두려고 했다. 오염되지 않도록. 골프에 "미친 것같아 보이는 사람들" 때문에 더욱 그러하기도 했다. 그런데 "미칠만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언가 할일이 생기니, 자뚜리 시간들을 요긴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시간조정에 달인이 되어가고 있기도 하고. 물론 부작용도 많다.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하는 난제가 있다.
토론토의 엄마에게 갔더니, "골프중독 딸"이 하나 더 늘었다고 시름이 느셨다. 나는 엄마에게 "건강" 때문에 치는 것이라고 눙을 친다. 그러니 엄마에게 소홀히 하면 안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주변 사람들은 조금은 변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언제나 예스"였는데, "시간이 안맞네요, 없네요" 하면서 빼는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너무 서운해하지 말기를. 나도 어쩔 수 없는 "중독의 바다"에 들어선 것이 분명하니까. 다행이 2013년의 골프시즌은 끝났다. 내년 눈이 녹을때까지 골프와 안녕이다.
건강을 생각하며 했던 약간의 시도들은 언제나 휴지기를 가졌는데, 골프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골프에 미치는 사람들, 몰두하는 사람들, 가르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골프인구는 줄어들수 없을 것 같다. 언제 어디서나 적용되는 "적당히"가 골프에서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남편 학사장교 동문 가족들이 골프차 시골로 찾아왔는데, 나는 음식을 차리느라, 함께 공을 치지 못했다.(아, 대견한 민디여!) 그때 함께 운동하고 싶은 욕구를 참느라 애써야했다. 운동에 사로잡히기는 처음있는 일이어서 얼떨떨하다. 다음날 골프할 생각 때문에 잠이 안왔다는 사촌오빠의 이야기도 이해가 되고, 새벽골프를 위해 5시쯤 일어나서 나갔었다는 미국의 언니 이야기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년, 나의 골프여정은 어찌될지 지금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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