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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성공적"인 강연회였다고....?

성공? 실패?


그 두 단어앞에서 망설인다.

어떤이에게는 "실패"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성공"으로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노교수님의 강의도 "성공"에 대한 것이었다.

그분은 뭐라고 하셨나? 좋아하는 일을 신나게 하는것, 아주 작은 것이라도 열정을 들여 꿈을 쫓아나가는 것이라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꿈을 이룬 지난 토요일은 "성공적"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실패작이란 시선에도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선 실패로 볼수 있는 가장 큰 요소는 사람들의 참석이다.


각 가정에 편지우송을 우선했다.

이메일이 있음에도 편지를 보낸 것은 그것이 보다 정성들인 것같은, 그래서 준비하는 사람의 성의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이다.

깨끗하게 인쇄한 것이 보기에 좋고, 와보고싶은 마음이 들것이라 생각했다. 주소를 다시 옮겨쓰지 않고 편지만 들면 강연장소를 쉽게 찾을수 있겠고 말이다.

그리고 편지우송전에 손으로 전달한 사람이 절반이 됐다. 얼굴을 보면서 전달한 것은 만날 기회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주소를 모르는 사람들에 한해서 이메일로 보냈다.

강의가 열리기전 또 절반의 사람들에게 전화를 넣었다. 다 전화하지 않는 까닭은, 오기 힘들 것 같은 사람, 이미 올것으로 생각되는 사람, 전화하기 계면쩍은 사람들을 제하니 그렇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오겠다는 예상 인원은 25명쯤 되었다. 그리고 나를 깜짝 놀라게 출현하는 사람들이 몇사람은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서 30명쯤, 운이 좋다면 40명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는 거대한 포부를 가슴에 안은채 그날을 맞았다.


책상을 6개 펴고 각 책상에 6개의 의자를 놓으니, 36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몇명 늦게 온 사람들을 포함, 전체 21명이었던 것 것 같다. 최소 20명은 올거야 했는데, 바로 그렇게 되었고, 언질 없이 "순수"하게 나타난 한인은 한명도 없었다. 올 것으로 믿었던 몇명이 빠지는 바람에 내 예상치보다 줄기까지 하였다.


미안한 것은 그 멀리 토론토에서 올라와주신 분들이었다. 교수님과 사모님, 온타리오 한인 자영업자 스트레스연구 소속의 김일호 박사, 유에스더님께 말이다. 우리 그레이 부루스에도 이런 좋은 강연회에 관심있는 많은 한인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랑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또하나, 강연의 주제가 "사람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는 지인의 지적에 고개가 숙여진다. "캐나다 한국인의 오늘과 내일"은 너무 딱딱하다. 그 강의제목도 교수님께 내가 제안한 것이었기에 미안함이 더욱 컸다. 뭔가 추상적이면서 사람들의 가슴안에 의문으로 남은 그것을 강연제목으로 했다면, 혹 더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융통성없는 내가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해서 벌어진 일이다.


자, 그렇지만 왜 내가 "성공"으로 생각하는가, 들어보시라.


우선 강의를 위해 오신 노삼열 교수님은 근 2시간 동안 열강을 펼쳐주셨다. 캐나다 사회에 이민자로 사는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자녀들에게 어떤 기대와 부모로서의 역할을 해야하는지, 이웃끼리 어떻게 어울리고 살아나가야 하는지, 핵심을 짚어주셨다. 노교수는 "다른 사람의 발뒷굼치만 보고 쫓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모든 것이 잘될때는 그렇게만 살아도 올라가는 길목에 있기도 하지만, 현재의 시간들은 예전에 없는 "후퇴기"의 날들이라 그렇게 쫓아갔다간 함께 굴러떨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사회환경을 알아야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제대로 된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것. 인터넷등의 미디어에서 듣는 지식만으로는 올바른 판단을 할수 없으니, 전문가들의 지식을 전달받는 이런 자리에 참석하는 것도 중요하는 것.


20여명이 듣기에 아까운 강의였다. 강의후에 이어진 좌담회에서도 교수님은 성실히 본인이 가진 지적 노하우를 전수해주기 위해서 애쓰셨다. 참석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모두 자신의 소개를 할수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밝혀야, 그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는 게 나의 오래된 신념이다. 길게 혹은 짧게 자신에 대한 소개로 좌담회를 열었고,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이때 사회적 스킬의 중요성, 아이들을 위해서 이민을 왔다지만, 그건 아이들로부터 "풍부한 사회적 자본을 졸지에 박탈해버린 나쁜 결정"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신다. 그렇기 때문에 한인부모들이 해야할 일은 사회적 자본을 쌓는 일이고, 그런 환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사회적 자본은 흔히 말하는 "연줄" 같은 것으로 한인들에게 취약한 부분이라 지적하셨다.


참으로 그렇다. 굴러다니는 집안의 책들을 골라읽으며, 혹은 숨어읽으며 자랐던 어린시절을 생각할때, 영어로 된 책은 하나도 없이, 한국어로 된 약간의 책만이 있었던 집안의 분위기, 생각할때마다 짠하다. 내가 커오면서 쌓아왔던 친구, 친척, 학교 선후배의 도움을 우리 아이들은 하나도 누리지 못했다. 아이들의 자기사랑은 그런 주변사람들의 인정이 반복될때 깊어지고 굳어진다는데. 그 자기사랑이 성공의 초석이 되고.  그저 고개파묻고 아이들을 키워내는 데만 열중했다. 나의 사회적 배경이 없는 것이 아이들에게  성장영양소를 박탈한 것이었다니, 그 헛점을 찔린 사람들은 마음이 아파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공부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을 잡아라, 주문만 했던 것이니.


노교수는 뉴저지의 "한국학교" 설립등을 예로 들면서, "한글"뿐 아니라, "역사" "문화"등을 가르치는 "한국학교"를 바람직한 대안으로 제안하셨다. (노교수님의 강의요약은 다음호에 올릴 예정이다.)




사회자본이란 말이 참으로 "요원"하게 들리기도 한다. 지금까지 쌓아놓지 못했던 것을 어찌 하루아침에 쌓는단 말인가 하고.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 그런 것들을 쌓는 과정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지금부터는 인식을 하면서 이사회에 필요한 구성원이 됨과 동시에 한민족의 자긍심을 잊지 않는 방법으로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 교회와 한인단체들이 힘을 함쳐서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하셨다.


그날 온 사람만 안다. 어떤 것들이 간식으로 나왔는지. 모든 사람들이 감탄하던 그 잡채의 맛, 나 또한 잊을 수 없다. 또한 새벽부터 김밥을 말아온분, 야채 과일을 준비한 사람이 있었고, 나는 "떡"을 쪄갔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떡을 목요일 가져와 아침에 찜통에 쪘는데, 그 일이 그렇게 녹록치않았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아직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토론토 방문객 4분과 그레이 부루스중 부루스 남쪽에 사는 사람들, 10명이 모여 밤시간을 보냈다. 그날의 상차림이 괜찮았다는 후문.. 특별히 내가 만든 생태탕이 인기있었다고 말하면 딴지걸 사람 있을까? 다른 두분께서는 닭도리탕과, 호박해물찜.. 그것들도 별식이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다시 이어지고, 그레이 부루스의 토요일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다음날 썸머타임 해제로 1시간을 번 우리들은 토론토 방문자들이 자리를 뜨고 일어선 시간 11시로부터 2시간여 더 회포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교수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토론토에 잘 도착하셨다며 다음과 같은 인삿말씀을 주셨다. 이 인사말을 함께 나누면 내가 이번 강연회를 왜 "성공적"이라 하는지, 확실히 알수 있을 것이다.


"오늘 참으로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선 마음좋은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무척 기뻤고, 정직한 마음을 서로 더듬을 수 있어 더욱 고마왔습니다. 그리고 동포들이 같은 고통과 회의를 함께나누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더욱 깊은 감명을 간직한 채 돌아왔습니다. 분에 넘치는 대접과 사랑을 받고 왔어요. 돌아오는 길에 집사람과 많은 여러분들의 고마운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중략).. 혹 오늘의 강연에 이은 다른 주제에 대한 요구가 있다면 편한 마음으로 알려주세요."



정말 여러 사람의 마음이 들어갔던 행사였다. 그것이 그렇게 소중하고 감사하다. 다른 두분도 같은 내용의 감사의 편지를 보내오셨다. 오웬사운드의 아름다운 가을정취에 흠뻑 젖었다면서, 음식과 언어와 경치가 어울어진 잊을 수 없는 여행이 되었다고 하셨다. 그러니, 이번 강연은 "성공"이라 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