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그레이 부루스와 인근지역의 눈보라는 상당했다. 토요일에는 시속 60km-80km 이상의 강풍이 불어와 시계를 전연 확보하지 못하는 화이트 아웃이 계속되어, 일기예보는 "제발" 운전하지 말라고 계속 경고를 보냈다. 도로 곳곳을 막아놓아 밖에 나갔던 사람들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런날 어쩔수 없이 밖에 있어야 했던 운전자들에게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
오늘 전해들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교회 목사님은 목사님들의 성경공부를 마치고, 금요일 저녁 토론토에서 오웬사운드로 올라오고 있었단다. 토론토와 오웬사운드의 중간지점이 오렌지빌인데, 그때부터 날씨가 험악해지기 시작했으나 무릎쓰고 운전을 하셨다. 안보이는 길을 운전해본 사람만이 그 고충을 안다. 제 길을 달리고 있는 것 같은데, 한참 지나다보면 반대편 차선쪽으로 들어가있다. 그나마 깨닫고 다시 차선을 조금씩 옮기면 다행이지만, 그대로 길가로 조금씩 밀고가 길가 눈밭에 차를 박게 되는 수가 생긴다.
목사님은 오렌지 빌 다음 마을인 쉘본(Shelburne)까지는 무사히 왔으나, 길을 막아놔서 더이상 진행할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간신히 주유소를 찾아들어가, 근방에 모텔, 호텔등에 전화를 했지만 방이 다 찼다는 소식들이다. 간신히 모텔 한군데를 찾았으나, 비싼 것은 차치하고라도, 오렌지빌쪽으로 다시 역행해서 가야 하니, 그 길을 다시 돌아갈 자신도 없을뿐더러, 목적지로부터 멀어지게 되니, 그건 안될 말씀이었다. 그때 경찰차가 한대 들어와서, 그에게 사정을 말했다 한다. 그랬더니 경찰관이 자신을 쫓아오라고, 잠잘 곳이 있다고 안내해줘서 그를 따라갔더니 그곳이 어리나(arena)였다고. 동네마다 있는 어리나는 체육관 시설이 있고, 동네행사를 할수 있는 커뮤니티 센터쯤이 된다. 목사님이 도착했을 당시, 다른 사람들은 없고, 자신이 첫번째 "피난민(?)" 이었는데, 얼마후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해서, 밤중쯤 되자 모두 400여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하였다.
아기부터 노인까지, 개 고양이등 애완동물등 살아있는 생명들이 모여드니 얼마나 웅성거렸을까? 그때 카운실러(시의원)가 나와서 현재의 도로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브리핑을 하면서 적십자사, 소방서, 경찰과 주민들이 협동하여 쉘터에 모여든 여러분들을 잘 대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길이 다시 열린 남쪽 방면으로 가는 사람들은 길을 떠나기도 했지만, 길이 막힌 사람들은 가고싶어도 갈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남은 사람들이 300여명 가까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때 그 이야기를 같이 듣던 교인 한명이, 어떻게 잠을 잤느냐고, 의자에 앉아서 잤느냐고 물었다. 궁금하긴 했지만, 곧 이야기를 해주실 것을 알고 기다린다. "바로 군용모포 500장이 도착했어요. 모두에게 나눠주더군요" 하자마자 다시 그 교인이 그런데, 어떻게 잤느냐고 또 재차 물었다. "바닥에 펴고 잤겠지요"라는 건 나의 궁시렁이었는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교인은 "어떻게 바닥에서 잘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담뇨가 있으니, 펴고 자지 않았을까요? 하면서 목사님을 바라보니, 그제서 목사님은 또 "바로 그때" 라고 운을 뗀후 야전침대가 한 트럭 배달되어 들어왔다고 하였다. 우리들은 모두 "와아"하였다.
목사님은 사람들을 독려하면서 함께 밤을 지새운, 여자 시의원을 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아침이 되자, 더이상 버틸수 없다며 떠났다는 것이다. 또한 시장도 상황이 바뀔때마다 브리핑을 해주었고, 그날 저녁은 주민들이 마련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고. 아침에는 커피와 머핀, 샌드위치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도 덧붙여 말씀해주신다. 그 다음날도 길이 막힌 도로가 많아, 한참을 머물다가 주일날 설교준비할 생각으로 간신히 막힌 길을 뚫고 올라오셨다는 목사님의 긴 스토리에 우리들의 머리속은 영화의 장면들처럼 그 상황이 그려진다. 눈으로 막힌 차가운 바깥날씨와 많은 사람들이 얼떨떨하면서 들어서서 두리번대는 큰 강당, 안정되면서 함께 잠을 잘 수많은 이웃들을 갑자기 갖게 된, 그들의 흥분된 마음들이 읽혀지기도 하였다. 목사님은 기념으로 담뇨를 선물받아 오셨단다. 그 모포는 한동안 졸지에 받았던 쉘본 주민들의 친절을 기억나게 할 것이다. 참고로 막힌 도로를 뚫고 들어갔다가 경찰에 걸리면 벌금과 벌점을 받을 수 있으며, 그곳에서 사고가 났을 경우 보험처리에서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을 알아두자.
나는 집에서 "쉘본에 묶인 사람들" 이야기를 더 검색해봤다. 그랬더니 C-TV와 몇개의 신문사에서 이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그날 쉘터에서 밤을 지샌 사람은 모두 275명이었고, 그중에는 신혼여행을 떠나던 부부도 있었다는 것을. 그들은 블루 마운틴으로 스키와 스파를 즐기러 호텔을 예약해놓은 상태였다고 하였다. 캔디스와 스테판 로빈은 C-TV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한 신혼여행이었다며, "깨어나기 전에 아침이 준비된 인크루시브 호텔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싱글거렸다.
이렇게 쉘터에 머물게 된 사람들은 행운아들에 속한다. 그날 6개월짜리부터 6살짜리까지 4명의 자녀를 태우고 집으로 가던 한 아기 아빠는 차가 빠져 오도가도 못하고 차속에서 잠을 자야 했다고 나중에 인터뷰했다. 길에 버려진 차를 찾아내어, 사람들을 실어나르고, 차를 빼내고 하는 일들을 토잉카, 앰브런스차, 경찰차 등이 했지만, 손이 미처 닿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교인중 한명은 토요일날 토론토 공항에 장모님을 모셔다 주어야 해서, 새벽같이 나갔는데, 많은 길이 막혀있어서 곡예운전을 해야 했다고 전해준다. 막힌 도로도 달리고, 비상등을 켜고, "긴급" 사인판을 내보이며 열심히 갔지만, 결국 비행기 탑승시간내에 도착하지 못해서 다시 올라와야 했다고. 그는 일요일날 새벽같이 다시 토론토로 내려가 장모님을 모셔다 드리고 올라왔다고 하는데, 거의 얼이 빠져보였다.
장모님은 "캐나다 살곳이 못된다" 혀를 내두르며 모국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3시간 걸리는 먼거리를 악천후에 왔다갔다 두번을 해야했던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되짚어보니 정신이 산란하다.
나는 모든 이야기 뒤에 쉘터에서 하루종일 조난자(?)들과 함께 했다던 여자 정치인에 생각이 머문다. 정치란 그럴때 필요하다는 생각. 무언가 도움이 필요할때 적재적소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 물자를 동원하고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 신분인 것은 그럴때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말이다.
지난주 토론토 스타 주말판에는 올리비아 쵸우(Olivia Chow)에 관한 기사가 큰 지면을 차지했다. 사회당 당수였던 잭 레이튼(Jack Layton)의 미망인이며 시의원을 역임한 연방국회의원인 올리비아 쵸우의 책 출간에 즈음한 인터뷰였다. 잭 레이튼이 2011년 사망했을 당시 그는 야심차게 사회당을 이끌어가던 정치인이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정치인으로서 그를 비하하는 글은 본 것 같이 않고 존경받는 정치인중이 한명인 것 같다. 올리비아 쵸우는 잭 레이튼을 보좌하면서 깊이 사랑했던 관계로 그녀 또한 대중의 사랑을 받았었다. 남편이 죽은 후 한동안 정치계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녀가 책을 내면서 다시 활동을 시작한듯 보인다. 토론토대학에 다니는 막내딸로부터 올리비아 쵸우가 학교를 방문했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눴는데,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전해듣는다.
올리비아 쵸우는 "My Journey"라는 책에서 자신의 성장기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역정을 밝혔는데, 주목할만한 것은 그녀가 중국인 이민자로서 우리들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는 점인 것 같다. 아직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10대 이민와서 방황했던 이야기, 20대때 남자친구로부터 구타받았던 이야기,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자리를 잡지 못한 이민가장으로서 정신병 치료까지 받았던 자신의 아버지와 가정이야기, 정치인 남편을 만나고 정치인이 되면서 가족 문제에 특별히 신경썼던 정치 인생등이 담겨있다고 미디아는 전한다.
정치인에게 믿음을 쉽게 주지는 못하지만, 어쩐지 그녀에게 기대를 걸게 된다. 수많은 고통을 이겨낸 사람에게 우리가 우선 점수를 주게 되는 그런 종류의 믿음이 아닌가 싶다. 현재 토론토에는 코케인 흡입과 알콜과다 추행등으로 시장으로서 체면에 먹칠하고 있는 롭 포드를 대신할 메이어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녀는 현 시장에 대한 신문사의 질문에, 토론토 사람들은 롭 포드보다는 좀더 나은 사람이 시장직을 수행할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언급했다. 토론토 스타는 거의 사설 수사기관처럼 각종 감춰진 비리들을 캐내는 데, 스타에게 걸려든 롭 포드의 정치인생도 막바지를 향해 가는 것 같다. 거의 동네 깡패 수준으로 그 격이 떨어진 것은 그가 사실 그런 요소들을 가졌기 때문이며, 이것을 캐내는데 스타가 큰 역할을 했다 하겠다.
쉘본의 여성 정치인의 이미지가 강렬해 마음속에 조금 담아두었던 올리비아 쵸우 이야기를 같은 여성정치인이란 맥락으로 끄집어 내어봤다. 나의 이런 넘겨짚기가 다른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야 할텐데. 쵸우는 2011년은 최고의 행복과 불행이 공존했던 한해였다고 회고한다. 정치적으로 자신과 남편의 입지가 탄탄해진 것이 행복이었고, 또 남편이 암으로 불시에 세상을 떠난 것이라 말하고 있다. 2년 동안 글을 쓰면서 자신을 회고한 쵸우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것이 자신을 치료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그녀의 말에 신뢰가 간다.
어려운 자를 돕는,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메스를 대는 따뜻하면서 과감한 정치인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올리비아 쵸우
(Image: Olivia Chow/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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