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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엄마의 간장

남편과 오랜만에 엄마집을 방문했다.

여전히 건강하신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운이 난다.

엄마집 거실에 큰 들통이 보인다. 그안을 들여다보니, 메주와 고추가 둥둥 뜬 간장물이다.

-엄마 간장 담았네.

엄마의 "뻐기는" 얼굴에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고추가 엄청 크네.

-낮에는 열어놓고, 밤에는 덮어놓지.

-왜 그런 이유가 있어?

-아무래도 밤이 되면 먼지도 들어갈 테니.

-낮에 열어놓는 것은 햇빛을 받아야 되니까? 숙성시키는 건가?

-볕보라고. 나중에 이걸 다 다려야해.

-냄새 엄청 나겠네.

-밤중에 다릴려고.

-...








-예전에 준 된장 맛있든?

-응

-그건 내가 콩으로 쑨 된장이잖니? 된장담고 나니, 간장이 너무 적게 나와서 많이 나눠먹지도 못했지. 고추 따서 말린 것 등을 넣고 된장을 만들지.

-간장, 된장, 고추장 이것이 한 식구지? 시골에서 보고는 처음 보네.

-느덜은 이거 못해먹어. 

-엄마, 그럼 이거 익어야 해. 얼마나 있어야 해. 

-한달반은 있어야지. 


엄마는 미리 담가놓은 고추장을 통에 담가놓고 주셨다.


-이게 마지막 고추장인 것 알지. 이제는 못담근다.

-응, 알았어. 그럼 고추장이 되고, 간장이 되고, 된장이 되는구나.

-고추장이 먼저 된다는 게 무슨 말이야.(남편)

-엄마가 고추장 먼저 담갔잖아.

-고추장은 별개여.

-메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면, 6개월 정도 걸리는 작업인 거야?

-원래 1년에 한번씩, 가을에 농사지어서 콩두드리면 메주 쑤는 거여. 메주를 쑤면 겨우내 일꾼방에다 매달아놓지. 그게 띄는 거여. 말랐다 떳다 이렇게. 그랬다 봄에 일찍 담는 거여. 원래 된장하고 간장하고는 묵을수록 맜있어.  100년묵은 간장이 가장 좋다는 거지. 그런데 한국서는 즉시로 간장을 담근다더라. 그거 연구 뭇하것어? 별 연구를 다 하는데. 

-이렇게 안해도 만든다 이거지?

-그렇지. 그건 정식이 아니고.

-화학적인 방법을 쓰겠지.(남편)

-어휴 엄마 큰일했네.

-재밌어. 매일 들여다 본다. 간장 담아놓으려면 통이 있어야 하는데. 된장통을 사러다녀도 없더라고.

-알았어. 지금부터 모을께.


이번에 간장 담가놓은 걸 직접 보니, 얼마나 신기했는지. 간장통에는 숯도 들어있고, 고추도 들어있고, 대추도 들어있었다. 항아리는 못 마련하고, 꺼다란 들통과 그 옆에 4갤론쯤 하는 통 두통을 만들어놓으셨다. 


엄마는 고추장을 미리 담가놓고 내려오는 길에 가져가라고 하셨다. 고추장 담는 날, 도와주기로 한 언니가 못오게 되어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신다. 고추장은 젓는 일이 힘겨운데,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안스럽다. 그런 큰일을 하실 연세가 지나셨는데, 아직도 무언갈 하시고 싶으신가 보다. 한국식품에 메주가 없는 것을 끌탕하셨는데, 작년인가는 메주를 직접 만드시기도 하셨었다. 그런 일들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갈텐데, 먼데 산다고 갔다 먹으라면 그냥 갔다 먹는 것이 다니, 염치가 없다. 


나중에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나중에 담그자고 하고, 오후쯤 갔더니 모두 다 해놓으셨더라며, 그걸 일일이 작은통에 담는 것을 도와주었다 했다. 간장 담글때, 엿기름을 사오고, 소금이 부족해서 소금 사오고, 또 간장물을 부어주는 것등, 언니도 여러모로 엄마를 도왔단다. 큰형부는 메주를 찾아다 주고, 그안에도 사연이 있다는데 듣지를 못했다. 큰언니와 형부가 엄마옆에서 많은 일을 하는데, 이렇게 한번 실수하면, 자매들의 지적질을 받게 되기도 하니, 가끔 하소연하기도 한다. 


이번엔 한국에 있는 언니가 메주를 부쳐주었단다. 그 메주를 부치는 손길과, 그것을 가지고 음식으로 만드는 엄마를 보니, 참으로 산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하고, 번잡하게 보이기도 한다. 농부로부터 생각해본다면, 장 담그는 일은, 그야말로 여러 손과 공정을 거치는 엄청난 농사임이 분명하다. 그러고보니, 메주를 보내면서도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있었을 것이며, 엄마는 장담그면서 또 고초를 겪으셨으니, 장에는 삶의 한숨과 수고가 고스란히 들어있을 것이다.


한편 엄마가 다릴 간장냄새에 신경이 쓰인다. 여러 사람이 사는 아파트에서 큰 문제가 없을지. 각자 집으로 가져가서, 끓여먹으라고 하는 건 어떤가 엄마께 여쭤봐야겠다. 하고싶은 것과, 할수있는 환경이 언제나 차이가 난다. 그 한계를 뚫는 사람들 때문에 인류가 발전하긴 하는데, 가끔 조금 덜 추구하고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조금 기대치를 낮추는 것. 여기엔 어떤 삶의 가치관이 포함된 것이 아닌가싶다. "조금 못미치게"가 아마도 나의 가치관이 아닐런지..


간장을 담가놓고, 그것이 익기를 바라면서 매일 들여다볼, 엄마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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