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모여서 여러가지 주제로 토론하는 "비정상회담"의 도입부에는 그 나라의 이슈들을 소개하는 "늦었슈" 코너가 있다. 녹화를 거쳐 방송되기 때문에, 정작 방송이 될때에는 그 뉴스는 더이상 "새로운 소식"이 되지 못하고 "늦은 소식"이 되는 바람에 "늦은 이슈"라는 뜻의 "늦었슈" 코너에서 청년들은 모국어로 자국의 소식을 전해준다.
방송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려는 것은 아니고, 나 역시 "늦은 이슈"가 하나 있어서 이 말을 차용했다. 늦었슈가 잊었슈가 되기전에 밀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지난 5월 7일 이 블로그에서도 공고한 대로 "온주 한인 직업스트레스 연구" 발표회가 있었다. 벌써 20여일이 경과했으니, 보통 "늦은 이슈"가 아니다. 토론토 일간지를 비롯해 몇개의 언론사에서 나와서 취재를 해갔고, 캐나다 한국일보에 난 기사를 보았는데, 그럴 수 없이 잘 보도 되었었다. 그래서 일단 내 의지가 꺾였다. 더 부연하려면 발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데, 그걸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김일호 박사님은 통계를 여러 모양으로 분석하여 제시하셨는데, 그중에서 어떤 부분이 중요한 것인지, 그 통계의 의미는 무엇인지, 중요 부분만 발췌하여 말하기에 역부족을 느꼈다.
또한가지가 있다면, 나의 "비객관성"이 개입된 행사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선 편의점을 경영하는 주인으로서 우리들의 정신건강과 현황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연구에, 나의 본 모습이 우중충하게 나와서인지, 직접적으로 드러내놓고 말하기가 꺼려졌다고 봐야한다. 만나면 "어렵지 않느냐"는 소리가 서로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내입에서도 몇번이나 "지난 겨울 힘들었다"고 하다보니, 더이상 그 말을 입밖으로 내기가 싫었다고나 할까?
"위축"된 마음이라 그런지, 모든 통계가 자영업자들의 불안정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 전문직 종사자, 일반 회사원들은 그런대로 안정적인 모양을 유지했다.
이날 행사에서 노삼열 박사는 "현대 사회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기회의 균등이란 말은 맞지 않는다. 한인이민자들은 인종적 소수민족, 70% 이상이 이민자들로 이뤄진 점, 언어문제, 소규모 자영업수가 많은 점등 때문에 희생양이 될수 있는 소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노박사는 "그동안 자신이 관여했던 정부지원 연구사업이 63개가 있었는데 그중 한인들에 대한 것은 7개 프로젝트에 불과했으며, 한인이민 사회에 대한 연구가 취약한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인가 발전하기 위해선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주 비지니스 종목인 편의점 운영자에 대한 연구는 그래서 중요성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토론토대학 정신의학과 노삼열 박사님.
서울대 대학원에서 사회역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일호 박사의 데이타 분석발표가 이어졌다. 김박사는 그래프를 이용하여 통계를 분석하였으며, 남성, 여성, 캐네디언 평균과 비교하기도 했고, 여러가지 방법을 이용하여 분석된 결과를 발표하였다. 시간이 촉박하여, 매우 빠르게 훑고 지나가야만 했던 것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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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을 위주로 찍어서 사진이 잘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남편이 나를 위해서 핸드폰으로 찍어놨던 것.
전문직, 사무직, 자영업자, 숙련 비숙련 노무직등 1300여명의 설문자중에서 자영업자는 550명 포함되었고 그간 소규모 연구는 있었지만, 이렇게 대규모 연구는 처음있는 일인 것으로 행사에서 밝혀졌다.
우선 영어사용면에서 자영업자와 비숙련, 숙련 노무자가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쓰기면에서는 거의 40%가 아주 못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전문직과 사무직은 큰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응답했다.
직장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냐에 대한 질문에서 90%이상이 1번 정도는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고, 30% 정도의 자영업자와 노무직 그룹은 인종차별 경험이 20회 이상 된다고 응답하였다. 일주일에 두번 이상 술을 마시는 과음 그룹은 자영업자 그룹이 가장 높고, 애연가 그룹은 노무직종에서 많이 나타났다.
본인 스스로 자가진단하는 건강 항목에서 자영업자와, 노무직종 사람들은 "건강하지 못하다"고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항목은 실제 건강과 바로 연결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문직 종사자와 비교할때 자영업자군의 응답자가 4배 이상으로 나와, 건강의 적신호가 켜지고 있는 것이라고 김박사는 설명했다.
정신건강에 관한한 각 직종이 비슷한 분포를 보였는데, 남자 자영업자들의 정신건강의 위험도가 조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75-80%는 배우자들과 밀접한 도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4-7%는 배우자들로부터 도움을 전연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중에 가족간의 불화가 큰 관계가 있다고 김박사는 설명했다.
일하는 시간은 자영업자들이 가장 길었다. 남자 평균 63시간을 일하고 여자는 54시간을 일해 30-40시간 일하는 다른 직종인들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직업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최고 하루 14시간 일한다고 응답한 사람도 있어서 그 대답의 진위여부를 의심하기도 했다고 김박사는 덧붙였다. 이런 장시간 노동시간 때문에 아픈데도 일했어야 할때도 많다고 응답했다.
이번 결과는 예상했지만, 조금 씁쓸했다. 자영업자들의 현주소가 매우 암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정신으로 사업체를 꾸려나가는 많은 이들을 주변에서 알고있다. 나는 요즈음, 그들의 사업방식을 경청하느라 바쁘다. 매너리즘에 빠져, 아무런 시도도 하지않으면서 "잘 안된다"고 했던 내게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다. 자영업의 가장 큰 장점은 근무환경을 내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하는 시간도, 취급품목도, 서비스의 질도 모두 경영자의 마음에 달려있다. 누군가로부터 지시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자영업에 매력을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행사 초반에 함께 인터뷰어로 일했던 두분의 경험담 발표가 있었다. 그중 심우성씨는 "설문지를 회수하는 수준이 아닌, 설문자의 마음을 담아와야 하는 한다는 사실을 일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면서 "편의점에 설문조사하러 가면, 왔다갔다하는 손님들을 받으면서 장사하시는 분옆에서 조용히 그들을 기다려주며, 설문을 마치곤 했다"면서 그 당시를 회상했다. 바로 그 마음이 내마음이었어서 그의 발표에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또 한명인 주영옥씨는 "특별히 일하는 여성들의 스트레스가 더 많은 것 같이 느껴졌다"면서 행사에 참여한 남성분들의 배려를 호소했다.
후원단체인 온타리오 한인실업인협회 권혁병 회장은 "노력한 만큼 얻어지지 않아, 정신적 압박감을 겪고있는 자영업자들에 이 연구가 어떻게 이용될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노박사는 "연구 데이터를 근거로 정부에 요구하면, 그것을 바탕으로 정책이 세워질수 있다"면서 일단 재료를 만들어놓은 상태이므로 후속작업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로얄 르페이지 한인부동산측에서 세미나실을 무료로 제공해 주어서 행사를 잘마쳤다. 이 연구의 코디네이터인 에스더씨가 음식을 정성껏 차려놓아서 담소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는 정신 심리학 계열의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참석하여 눈길을 끌었다. 글을 쓰는 필자의 동생도 상담학 석사출신으로 그들과의 교류를 위해 이자리에 참석했다. 한인사회를 위해 일하고 싶은 일꾼들을 만나볼수 있는 자리였다.
나는 이 행사에 사회자였다. 사회자라야 "발표자 소개"하는 정도여서 뭐라 말할 건덕지는 없다. 그래선지, 리포터의 입장으로 행사를 지켜보기 보다는 약간은 "흥분상태"가 아니었나 싶다. "늦었슈"가 된 또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연구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시골오지에 묻혀살다가 한인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친분관계를 맺게 되었다. 인터뷰어의 한명이었던 여성을 다시 만났는데, 그새 유아교육을 공부해서 직장에 나가기 직전이라고 했다. 2년전이었으니, 칼리지에 가서 공부를 끝낼 만큼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젊은 그녀의 나이로 보면, 너무나 잘한 일인 것 같다. 인터뷰어로 일해서 번 돈으로 등록금을 댔다고 하니, 어찌나 기쁜지 더할 나위 없었다.
어느 자리에서 만난 한인중에도 나이 40이 넘어 "목수일"을 배우러 칼리지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캐나다에 와서 자영업을 하고있지만, 그동안 하고싶었던 목수일을 해보니, 재미가 있단다.
나는 그들에게서 한인사회의 미래를 보는 것같다. 어쩌면 50이 넘은 나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싶은 일을 찾아서 시작해보는 것. 그렇다고 내가 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어쨋든 캐나다에 이민오게 된다면, "영어 때문에" 하면서 모든 가능성을 던져버리지 말고, 첫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영업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그길로 가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직업교육을 통해 길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목수일을 배운다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남들이 가는 길로 그저 따라가지 말아라. 내가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가 잘 생각해서 한번 도전해보라"고. 어쩌면 캐나다란 사회를 우리는 아직도 모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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