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중순의 인천.
15일 떠났으나, 도착은 16일이다. 한국은 캐나다보다 14시간이 빠르다. 게다가 비행시간 14시간을 보태니 담날 늦게 도착했다.
23kg짜리 두 개의 가방과 10kg짜리 기내 가방을 밀며 10kg 정도의 배낭과 지갑 등이 든 어깨걸이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3년 전부터 한국살이를 하고 있는 큰딸이 공항에 나오기로 했다. 딸은 만나자마자 유심을 샀다며 전화기를 받아서 유심을 넣어본다. 전화기에 유심을 바꿔 넣고, 새 전화번호를 하나 주려던 큰애의 계획이 차질이 있어 보인다. 유심이 들어가도 작동을 하지 않는다.
나를 다시 남겨두고 전화기를 가지고 통신회사로 갔다. 나는 혼자서는 움직일 수가 없이 짐에 파묻혀 있는데, 전화가 안 되는 이유가 갑자기 생각났다. 오기 전에 전화기를 "unlock"을 하고 혹시 필요할지 모른다며 그 번호를 받았는데, 그것을 알려주는 걸 잊었다. 그 번호가 있어야 새 유심이 작동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공항버스 티켓을 만나자마자 구매해, 버스 타는 시간은 다가오고, 전화기 문제를 해결하러 간 아이는 찾을 수 없고. 가방을 끌며 발로 차면서 큰애를 찾아다니는데, 다른 방법을 찾았다며 큰 통을 들고 온다. "에그"라고 불리는 시스템이다. 한국에 있는 동안 이 "에그"를 지니고 다니며, 카톡으로만 소통할 수 있었다. 무제한 와이파이 기능을 제공했다. 가끔은 에그를 집에 놓고 나오기도 하고, 충전을 제대로 하지 않아 난감할 때도 있었지만, 3주 동안 나와 함께 하며 나를 외부와 연결시켜주는 인터넷 도구로 유용했다. 호주에서 온 친구는 "도시락"이라는 것을 구입했는데, 그것도 와이파이를 제공하지만, 음성, 영상 통화는 제한되는 것이어서, 전화번호를 따로 받아 쓰고 있다고 하였다. 패드에 전화를 깔아 전화할 때나 올 때나 이어폰을 꽂고 패드를 꺼내야 하는 그녀를 볼 때 불편하게 느껴졌다.
"에그"와 "도시락"이라는 용어가 스마트폰 통신의 이름이라니, 음식과 전화 사이, 접점을 찾기 힘든 그 간격이 즐거움을 안겨줬다. 친구 S와 나는 "도시락"보다는 "에그"가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카톡이 되지 않는 연세 드신 분들과의 통화는 할 수 없어서, 전화가 필요한 일에는 곁에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큰딸 나래는 대학을 졸업하고 캐나다에 있다가 한국으로 취업차 와있다. 벌써 3년을 보냈다. 한국에 오려고 했을 때 취업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나는 캐나다 이민후 결혼을 했고, 이 땅에서 3명의 아이를 낳았다. 몇 년 후에 캐나다 시민권을 받았으니, 그 아이들은 명실공히 케네디언들이다. 그러나 그 아이를 낳을 때 우리는 영주권자이었고, 한국 국적을 갖고 있으므로, 내 아이들도 자연스레 한국 국적을 갖게 된다.(내 아이들이 한국국적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됐다) 교포 자격으로 한국에 가려고 했는데, 우리 신분에 문제가 있었다. 한국 국적이 정리되지 않았고, 혼인신고도 되지 않았으며, 아이들 출생신고는 더구나 하지 않았다. 취업을 할 수 있는 F4 비자는 교민(그 자녀까지)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다.
서류상의 일이지만 부모의 무심함에서 빗어진 일이라 이 모든 일을 한꺼번에 다해야 했다. 나래는 이런 수속과정을 잘 참아줬다. 1년도 넘게 걸린 서류 정리 과정 동안 월마트에 취직하기도 하고, 나름 고군분투하면서 한국 취업일을 기다렸다.
나래가 원어민 영어교사 인터뷰를 할 때, 엄마인 나는 "오라고 하는 곳"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갈 것을 종용했다. 새 교사를 구하는 입학시기를 놓쳐 1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게 될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그러나 나래는 "아무 곳이나" 갈 수 없다면서 인터뷰를 계속했다. 그리고는 자신에 맞는 학교를 찾았다고 반색한다. 그 학교를 찾기까지 나는 속이 타들어가면서 아이와 큰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그렇게 자신이 찾던 곳, 4-7세 대상 영어학원인데 캐나다 교육 스타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그곳에 들어가고 나래는 만족한 지, 나날이 발전하는 것이 먼 곳에서도 보였다.
나래 집에 도착했다. 분당에 있는 오피스텔로 학원에서 선생에게 제공한 곳이다. 월급은 많지 않지만 살 곳을 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나래는 짐작했지만, 엄마인 나보다도 살림을 잘하고 있다. 깨끗한 집, 약간의 외풍이 있었지만, 외풍이 약점으로 느껴지는 걸 상쇄시켜 주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온돌이다. 나는 거실 바닥이 따뜻한 것이 그렇게 마음을 포근하게 할 줄 몰랐다. 나래 침실은 복층으로 스튜디오식으로 만들어진 큰 방위에 계단을 올라가면, 침실이 있다. 서있을 수는 없으나 잠을 자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자신의 침대 옆에서 잘 것인지, 거실에서 잘 것인지 묻는 나래에게 나는 거실을 사용하겠다고 했다. 게스트를 위해 매트리스와 이불을 준비해놓고 있어서 거실 한편에 펴주었다. 매트리스에서 자다가, 언젠가는 매트리스를 옆으로 밀고 맨바닥에서 이불만 덮고 누워서 자기도 했다. 어렸을 때 한방에서 온 가족이 자던 생각이 났다. 그때는 아랫목부터 윗목까지 온도 차이가 컸는데, 균일한 온도가 이색적이었다.
언니가 와서 함께 홈-플러스에 쇼핑을 갔다. 다음날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1박 예정인 데다가 그다음 날, 또 다른 친구 집으로 가기로 해서, 총 2박 혹은 3박을 밖에서 자야 한다. 캐나다에서 가져오지 않은 헤어드라이어와 고데기를 사놔야 할 것 같았다. 그때까지도 나의 주된 걱정은 나의 머리 스타일을 어떻게 고쳐야 하나였다. 한국에 와서 나래와 언니, 두 명을 만났는데 언니도 "네 머리스타일은 심하다" 그리 말한다. 캐나다에서 미용실을 하는 동생에게 가서 어떻게 매만져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기회를 찾지 못했다. 한편으론 한국 미용기술을 맛보고 싶기도 하였다. 몇 가지 사 가지고 오면 된다고 함께 외출했는데, 그 홈플러스에는 마침 설 명절을 즈음하여 여러 가지 선물세트들이 전진 배치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Lindt 초콜릿 섹션을 보고야 말았다. 한국에 있는 것을 내가 싸들고 왔구나, 얼굴이 확 붉어졌다. 한국에 없는 게 없다더니, 바로 그렇구나, 부끄럽다.
모든 물건이 나에게 말을 걸듯, 다정스럽다. 오랫동안 외국에 살아왔어도, 한국사람을 위해 고안된 한국 제품들에 마음이 녹는다. 무엇이 부족하지 않은 한국을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래가 만들어준 밥을 먹는다. 밖에서 먹을까, 하는 이모의 제안에 집에 가서 해주겠다며 집으로 들어온 뒤, 나래는 된장찌개를 만든다. 조금씩만 먹으라며 아주 조금 퍼주는데, 그것으론 배가 차지 않아, 한번 더 달라고 하였다. 나는 나래의 보살핌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담날 나래는 출근하기 전, 기본적인 것을 알려준다. 카카오 지하철 앱과 네이버 지도를 설치해준 건 전날밤이었다. 이 둘이 있으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면서. 그리고 집에 들어오는 방법, 나가는 방법을 시연했다. 일찍 깨어난 덕분에 밖으로 나가보기로 한다. 어제 갔던 홈플러스 근처에 갔다. 상가들이 문을 열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오후 2시로 되어있어서 오전에 어슬렁거릴 시간이 있다. 미장원이 눈에 띈다. 숙원사업 파마를 하기로 작정한다. 문 여는 시간 동안 조금 더 건물 안팎을 헤매다가 10시 30분에 들어선다. 파마하고 싶다는 내게 접수받은 이는 다짜고짜, 전화번호를 묻는다. 전화번호가 없는데 말이다. 전화번호를 입력해야 일이 시작되는가 보다. 캐나다에서 왔음을 알리고, 우선 파마하기 전 의논을 하고 싶다고 하니, 한 미용사를 소개해준다. 그녀가 하자는 대로, 머리를 맡긴다.
디지털 파마, 열파마를 했는데, 조금씩 한국인처럼 변해가는 듯싶다. 하와이에 부모님이 살고 계시다는 헤어사롱의 그녀는 나와 이야기가 통했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하니, 최선을 다해 머리를 매만져주었다.
그러고 보니 에그를 들고 나오지 않아서 혼자 실종되어도 누구도 찾아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래 집으로 향한다. 배운 대로 암호를 입력했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집에서 짐을 챙겨 나가야 하는데, 갑자기 땀이 나려고 한다. "에그"도 없으니 나래와의 연락도 요원하다. 그런데 바로 방문 앞이라 그런지 와이파이가 작동한다. 나래의 집 와이파이였을 수도 있다. 급하게 전화하니 나래가 받는다.
"문이 안 열려!"
"비밀번호 넣고, 커버를 닫아"
다시 해본다. 커버를 너무 천천히 닫았었나 보다. 문이 열린다.
한국생활 초입에 간담이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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