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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루미 미리.

우리집 밤풍경

우리집은 저녁을 먹고난후 마치,
학교와 시장이 혼합되어있는 듯한 열기가 풍긴다.
아이들이 숙제를 들고,
혹은 학교에서 가져온 레터를 들고 나에게 온다.
지우개 어딨어?
연필깎는 칼 어딨지?
종이 한장 없니?
엄마 자 어딨어?
이쪽 저쪽에서 한마디씩만 하면,
교통정리가 안되면 마치,
시장통같은 분위기가 된다.
숙제를 같이 모여한다.
막내는 숙제가 없어서 속상하다.
언니들이 공부하는데, 저는 내 근처를 왔다갔다하며
공부할 것을 찾아달라고 한다.
나는 그애에게 집중할 시간이 없다.
숙제하면서도, 학교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한명이 풀어놓으면,
그에다 토달고, 보태고 하느라고 숙제가 끝이 날줄 모른다.
그안에 간간이 내가 소리지르고..
큰애는 나에게 아부도 한다.
"엄마가 영어를 잘해 선생님하면, 잘할거야"라고.
학교선생보다 내가 설명해주면 더 잘알겠단다.
고맙다고 말해준다.
그래도 그러다 보면 어느덧 숙제가 끝난다.
숙제가 많지는 않는데, 어떤 날은 한두시간을 끌기도 한다.
언니들이 공부가 끝날 즈음,
막내는 다시 나에게 베드타임 스토리를 읽어달라고 한다.
어지러져있는 거실에 눈을 주면서,
난 또 그애 침대곁에 앉아 책을 읽어주고 자장가를 불러준다.
막내티를 톡톡히 내는게 잠들때이다.
언니들은 내가 꾸물럭거리는 사이,
글 읽어주기를 기다리다가 그냥 잠들곤 했는데,
막내는 모든 것이 끝나기 전까지는 잠을 자지 않는다.

이런 일상적인 일을 작년에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저녁에 몇시간 가게도 보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잘못된 계산이었다.
아이들과 엄마가 밀착되어야 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우리집은 저녁을 먹은 후다.
한 6시30분경부터 10시까지.
이때까지는 아이들과 놀고 공부하고 이야기하고
잠들기전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잡아줘야 한다.
편안한 잠자리가 되도록.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서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이 왔다.
조기유학을 생각중인 부모가 있는데,
이곳의 현실과 내 개인적인 의견이 어떤가하는.
내 생각은 이민은 환영이지만,
부모없는 조기유학은 당연히 반대이다.
바로 위와같은 이유 때문이다.

한국과 같이 “공부”가 모든 것에 우선하진 않아도,
역시 이곳도 아이들의 일은 공부하는 거다.
그 절반은 엄마와 같이 하는거다.
학교 숙제도 "네가 태어났을 때의 특별한 이야기.., 네 이름이 갖고있는 의미"등등
부모와 함께 해야하는 것들이 많다.
공부뿐이 아니라,
학교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행사에
부모의 도움이 자주 요청되며
아주 작은 행사라도 부모의 동의를 구한다.
가령 모두가 가는 야외학습의 날이라고 해도
부모가 이전에 보낸 동의서에 서명해서 보내지 않으면 아이가 야외학습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런 경우에는 집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다시 한번 확인하고 아이를 데리고 간다.
아이가 아플 경우는 학교에서 연락이 온다.
그러면 부모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이를 데려다가 적절한 치료를 해야만 한다.
아이가 저학년일 경우 옷이 젖었다,
너무 얇게 입고왔다 하며 불러대는 경우도 많다.

유학을 생각하고 있다면,
본인의 힘으로 모든 걸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안에 영어를 준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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