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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루미 미리.

파티---9살 루미의 하루

엄마가 오늘 코리언들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다고
가려냐고 물어보셨다.
약간의 나쁜 기억이 있지만, 그래도 친구도 만날 수 있고,
어쨋든 <파티>라고 하니 따라나서기로 했다.
동생 미리는 안가고싶다고 한다.
이제 7살인데, 나래언니와 나는 가는데, 안갈 수 없을텐데 말이다.
엄마 아빠가 “어떻게 혼자 있을 수 있니?”했더니 마지못한 듯 간다고 한다.
차타고 어느 정도 가야하니, 몇가지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엄마가 머리빗어야 한다고 동생을 부르는데,
미리는 가방을 싸느라고 정신이 없다.
“미리, 우리 중국가는 것 아냐. 그 많은 장난감 다 가져갈 필요없어!”하고
말해줬다.
어쨋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다.

엄마가 두꺼운 코트를 입어야 한다고 했는데,
스웨터를 두개나 껴입어서 얇은 잠바를 걸치고 나섰더니만,
차에서부터 춥다.
엄마가 코트를 벗어준다는 걸 괜찮다고 했다. 엄마도 추울 것이 아닌가?
대부분 실내에 가면, 너무 더워서 옷을 벗게 되니,
괜찮아질 것이라 기대했다.

한3년전인가? 내가 1학년이던 시절 와봤던 장소였다.
큰 술집. 한인아저씨가 경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곳에 들어가니, 아저씨 아줌마들이 눈에 띄인다.
우리같은 꼬마들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3년전에 만났던 나와 같은 또래인
여자아이는 찾아도 없다.

예상했던 만큼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높은 천장에 매달린 총천연색 불빛에서는 차가운 빛만
쏟아져나온다. 잠바를 벗지 않았는데도 몸이 조금 떨린다.

곧이어 많은 분들이 들어오신다.
“많이 컸네”하시는 분도 있고,
얼굴조차 쳐다봐주지 않는 이들도 많다.

아무래도 잘못온 건 아닌가 싶은 생각.

음식은 한국식이다. 밥도 많이 차갑다.
매운 것이 많다.
나는 탕수육 몇개와 잡채를 먹었다.
나에겐 별로인 음식이었지만 다른 분들은 잘 먹는 것 같다.

이제 내 경험 최악의 것들을 털어놓을 때가 됐다.

나쁜 담배연기를 내 앞에서 뿜어대는 어른들 때문에 숨이 막힌다.
한분 아저씨는 내가 쳐다볼 때마다 맥주를 계속 들이켠다.

가라오케를 한다.
모르는 노래지만, 참 노래를 잘 부르는 아줌마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한 아저씨의 노래는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울리는 마이크를 바짝 입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니(제목이 고래사냥이었다),
나중엔 진행자가 가라오케 기계를 꺼버렸다.

그리고 어른들의 게임.
엄마와 다른 아줌마들이 불려나갔다.
아저씨가 타원형으로 마디를 이룬 긴 풍선을 불라고 모두에게 주신다.
그리곤 남편들을 불러내서 부인들 뒤에 서게 한다.
엄마는 우리가 풍선불어달라고 하면 한번도 제대로 불어준적이 없으시더니,
이번에도 바람을 집어넣지 못하셨다.

풍선불기가 끝나니, 풍선의 사이즈가 이집의 사이즈라고 발표한다.
모인 사람들이 왁자하게 웃는다.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 풍선을 남자들에게 불게 하곤, 또 그것을 멀리 날려보내기 하는 것이 게임의 골자이다.
배꼽 아래(프라이빗 파트)에 풍선을 대게 하곤 날려보내라는 것이다.
나래언니는 <그로스!>하면서 눈을 감아버린다.
나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러나 어른들은 또 왁자하니 웃는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게임이 이상하다.
두번째 게임은 더욱 심했다.
아저씨들을 불러내서 하는 벨트 풀기 게임이었다.
먼저 풀러도 진행자 아저씨에게 실격당하고.
아저씨들이 벨트를 풀렀다 맸다 한다.

우리들은 놀 것이 없었다.
그래도 당구대가 있어서 엄마가 1불을 넣어주니 공이 많이 나왔다.
그를 잠시 놀고는 엄마와 다른 아줌마들이 앉아있는 곳으로 갔다.
엄마와 함께 이야기하던 아줌마가 나보고
“아빠있는 데 가지 그러니?”그러더니
“왜 저쪽에 가서 놀지 그러니?”한다.
엄마가 “괜찮아요”하면서 나를 끌어앉는다.
차에서부터 춥더니, 머리도 아프고 힘이든다.
나는 눈물이 났다.

엄마, 동생과 같이 화장실에 가니, 막내가 집에 가자고 한다.
잠잘 시간도 지났고, 내일 학교를 가야한다면서.
나도 가고 싶다.
엄마가 “너희들에겐 힘들어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에겐 중요한 자리”라고 말씀하신다.
조금 더 참아주어야 겠다.

화장실 벽에는 나쁜 낙서들이 있다. 토론토 다운타운에 가면
건물벽에 쓰여있는 것같은 그런 나쁜 말들이다.
또한 있어야할 화장지는 없고, 그 자리에 담배꽁초들이 놓여있다.
정말 이상한 곳이다.

다음날 친구에게 엊저녁의 “호러블 파티”에 대해서 말했다.
어떤 종류의 파티냐고 해서 “네가 알고싶어하지 않을 그런 종류의 파티”였다고 말해줬다.


<엄마의 이야기>

한인 파티에 가면 몇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아이들을 위한 부분이 전혀 없다는 것.
아마도 아이들은 데리고 가지 말았어야 했나보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데려오지 않는 것을 명시해야 한다.
그날도 대여섯명의 아이들과 두서너명의 십대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많아도 아이들과 상관없이 어른들이 즐긴다.

한국말 해독이 쉽지않은 우리 아이들도 그 자리의 분위기를
대충 눈치채는 것 같다.
야한 농담들, 그리고 가라오케.
경품 추첨이 또 지루하게 이어지고.
아주 작은 선물까지 추첨을 통해 분배하는 통에, 상품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처럼
느껴졌었다.

엄마는 아이들의 눈이 된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즐거워하면 나 역시 그렇지만,
전연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지난 밤의 행사는
내 아이 지키기 위해선 어떤 식이 되어야 할까 생각하게 했다.

조금 넓은 집, 각자 한 가지씩 해오고,
주최측서 중요한 반찬 챙기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고.
어른들도, 공식행사와 여흥을 순서를 정해서
너무 난삽해지지 않도록 하고.

재작년 여름에 한인파티에 갔다가 한번씩 실망한 우리 애들은
이젠 다시는 안간다고 할 것 같다.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순서를 생각해야 할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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