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을 치우다보면, 아이들이 쓰던 크레용이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허리가 반쯤 부러져있는 것들, 조막만한 것들은 아직 쓸만해도
본자리를 찾아서 담기가 귀찮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게 될때가 있다.
크레용을 보면, 내가 부자가 되었단 생각이 든다.
가끔 서너개씩 버려도 1년은 끄덕없이 사용할 수 있는
크레용이 있다.
가장 많은 양은 가족실로 쓰는 작은방 놀이차에 들어가있고,
또 아이들 방마다, 그곳에서 쓰는 크레용이 있다.
이제는 아이들이 크다보니, 크레용보다는 연필이나, 물감, 싸인펜 같은
다른 도구를 이용하는 빈도수가 늘고있다.
그러니 크레용은 반쯤은 버린다한들, 그다지 아쉬울 것 없어보인다.
아이들이 막 손에 무언갈 쥐고 그리기 시작할때,
한 아이도 아니고 세 아이가 올망졸망할때,
크레용은 집안의 필수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정도로 돈이 없었을까 싶다.
쓸만한 크레용이 바닥이 나서,
가게에 가서보면, 한 상자에 일렬로 들어있는
크레용 박스를 언뜻 집어들지 못한다.
작은 것은 12색짜리, 보통것이 24색,
아마도 24색 정도는 사야지 한동안 그것으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 가격이 비싸야, 2불 99전인데,
맘놓고 그 돈을 쓸 수 없었다는 말이다.
꼭 거짓말을 하고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나조차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번씩 크레용박스를 들었다 놓았다 하던
기억이 내 창고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
교민신문사를 나오면서
정말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그당시 한국서 유행하고 있었던 도서대여점을 오픈했었다.
미국 엘에이에서 서점을 경영하고 있는 한인이
도서대여 전문점을 내걸고 이를 프랜차이즈화,
가맹점을 모집하고 있었다.
신문사에 있던 관계로 엘에이 한국일보에 실린
그 기사를 읽곤, 순전히 나의 도전적인 추진력으로
토론토 한인타운에 턱하니 차렸지만,
결국 망하고 말았다.
아마 그때쯤이 짧지않은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련기였던 것 같다.
큰애를 서점에 데리고 다니면서, 유치원을 보내고,
1살도 안된 막내와 둘째를 아침마다 배달해서
아이보는 집에 보내고,
남편 기억으로는 우유살 돈이 없어서,
집에 있던 모뎀을 팔아서 우유값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목에 복권당첨이란 말을 써넣은 이유를 이제는 말해야 하겠다.
그 막바지 어려움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가 이끈 곳이 나 혼자 <페이슬리 가나안>이라고 부르는 이곳.
살림집이 달린 가게를 은행융자로 샀다.
처음에는 일하는 사람에게
“이 우유 한 백 가져가도 되요?”이렇게 물었다.
그가 말했다.
“이건 당신거예요.”
살면서 복권당첨 기분을 자주 느낀다.
내 집 내 가게, 게다가 보너스처럼 주어진,
공해없는 아름다운 자연,
봄이면 강가에 수북이 자라나서
엄마와 언니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돌리게 만드는 고비, 달래들.
이것이 어찌 복권에 당첨되지 않고 이뤄질 수 있는 일이겠는가?
우리 가게에서는 여러종류의 복권을 팔고 있다.
나는 그 복권을 살(그냥 말없이 슬쩍해도 되는데) 유혹을 감히 떨친다.
하나님께서 두번의 복권당첨 기회를 주실 것으로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씩 그 유혹을 못 넘기고, 잘못 만들어진(손님이 사기를 원하지않는)
복권을 한장씩 슬쩍한다.
그리곤 맞추면서 그렇게 말한다.
“그럼 그렇지, 어떻게 두번 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랄 수 있겠어?”
허리가 반쯤 부러져있는 것들, 조막만한 것들은 아직 쓸만해도
본자리를 찾아서 담기가 귀찮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게 될때가 있다.
크레용을 보면, 내가 부자가 되었단 생각이 든다.
가끔 서너개씩 버려도 1년은 끄덕없이 사용할 수 있는
크레용이 있다.
가장 많은 양은 가족실로 쓰는 작은방 놀이차에 들어가있고,
또 아이들 방마다, 그곳에서 쓰는 크레용이 있다.
이제는 아이들이 크다보니, 크레용보다는 연필이나, 물감, 싸인펜 같은
다른 도구를 이용하는 빈도수가 늘고있다.
그러니 크레용은 반쯤은 버린다한들, 그다지 아쉬울 것 없어보인다.
아이들이 막 손에 무언갈 쥐고 그리기 시작할때,
한 아이도 아니고 세 아이가 올망졸망할때,
크레용은 집안의 필수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정도로 돈이 없었을까 싶다.
쓸만한 크레용이 바닥이 나서,
가게에 가서보면, 한 상자에 일렬로 들어있는
크레용 박스를 언뜻 집어들지 못한다.
작은 것은 12색짜리, 보통것이 24색,
아마도 24색 정도는 사야지 한동안 그것으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 가격이 비싸야, 2불 99전인데,
맘놓고 그 돈을 쓸 수 없었다는 말이다.
꼭 거짓말을 하고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나조차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번씩 크레용박스를 들었다 놓았다 하던
기억이 내 창고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
교민신문사를 나오면서
정말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그당시 한국서 유행하고 있었던 도서대여점을 오픈했었다.
미국 엘에이에서 서점을 경영하고 있는 한인이
도서대여 전문점을 내걸고 이를 프랜차이즈화,
가맹점을 모집하고 있었다.
신문사에 있던 관계로 엘에이 한국일보에 실린
그 기사를 읽곤, 순전히 나의 도전적인 추진력으로
토론토 한인타운에 턱하니 차렸지만,
결국 망하고 말았다.
아마 그때쯤이 짧지않은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련기였던 것 같다.
큰애를 서점에 데리고 다니면서, 유치원을 보내고,
1살도 안된 막내와 둘째를 아침마다 배달해서
아이보는 집에 보내고,
남편 기억으로는 우유살 돈이 없어서,
집에 있던 모뎀을 팔아서 우유값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목에 복권당첨이란 말을 써넣은 이유를 이제는 말해야 하겠다.
그 막바지 어려움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가 이끈 곳이 나 혼자 <페이슬리 가나안>이라고 부르는 이곳.
살림집이 달린 가게를 은행융자로 샀다.
처음에는 일하는 사람에게
“이 우유 한 백 가져가도 되요?”이렇게 물었다.
그가 말했다.
“이건 당신거예요.”
살면서 복권당첨 기분을 자주 느낀다.
내 집 내 가게, 게다가 보너스처럼 주어진,
공해없는 아름다운 자연,
봄이면 강가에 수북이 자라나서
엄마와 언니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돌리게 만드는 고비, 달래들.
이것이 어찌 복권에 당첨되지 않고 이뤄질 수 있는 일이겠는가?
우리 가게에서는 여러종류의 복권을 팔고 있다.
나는 그 복권을 살(그냥 말없이 슬쩍해도 되는데) 유혹을 감히 떨친다.
하나님께서 두번의 복권당첨 기회를 주실 것으로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씩 그 유혹을 못 넘기고, 잘못 만들어진(손님이 사기를 원하지않는)
복권을 한장씩 슬쩍한다.
그리곤 맞추면서 그렇게 말한다.
“그럼 그렇지, 어떻게 두번 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랄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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