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졸업식은 참으로 많을 것을 되집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별로 영광스럽지 않았던 내 졸업식이 생각났고
(그때 첫 직장에서 실패하고 실업중이었다)
언니도 졸업후에 어떤 화려한 진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참 다른 느낌, 입학식이란 용어는 없는 이곳에 졸업식은 참으로 거창하게 치러졌다.
특히 언니는 종교음악 중에서도 성악을 전공했는데
졸업 이틀전에 개인독창회가 있었다.
입학생 20여명중 남은 5명의 졸업생들은 모두
졸업개인연주회를 갖게 되는데, 언니도 그중의 한명이었다.
나는 엄마 한복을 빌려입고 사진기를 들고 갔는데,
독창회에는 교수들, 교수들의 가족들, 학생들, 학생들의 가족들,
또한 그 근처에 사는 한인이민자들, 그곳에 유학와 있는
한인유학생들까지 많이들 모였다.
캐나다 나이 46살 6개월에 가진 첫 독창회.
어릴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저는 조그만 몸집의 언니가 무대에
오르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피아노를 약간 치던 언니가 성악에 그처럼 잠재력이 있었다는 것도..
또한 성악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성역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그런 날이었다.
외국곡을 부르고 난 다음에,
예쁜 한복을 입고나와 한국가곡 사랑(홍난파곡), 갑돌이와 갑순이, 봉선화를 불렀다.
마지막에는 엄마가 평소에 좋아하는 노래 찬송가 "샤론의 꽃"을 언니가 먼저 부르고,
반주해주던 외국인 지도교수와 후렴을 한국말로
듀엣으로 부르는데,
그 아름다왔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연주회가 끝나고 리셉션장에서 언니를 지도했던
미셸이라는 교수는 "감상이 어떻냐"고 물어왔다.
내가 "언니가 노래를 그렇게 잘하는 줄 몰랐다"고 하니,
언니에게 "그것 보라"고 "당신이 해낸 것"이라며 눈을 찡긋한다.
나중 언니말을 따르니, 언니의 신체의 특성(소아마비, 정상인에 비해 허약함)을 교수가 잘 알고, 자신을 도와준 이야기를 한다.
기분이 가라앉았을 때도 노래가 안나오고, 또 너무 흥분되어도 안되던 그 평정함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는...
그렇게 독창회를 갖고 그 다음날은 학장이 베푸는 졸업생 가족 리셉션에 이쁜 드레스를 입고 엄마와 내가 가족대표로 참석했었다.
그 시간은 지도 교수들이라든지, 학생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자리인 것 같았다.
우리는 이번에 졸업하게 되는 한인학생과 그의 어머니, 동생등 한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다음, 졸업 이브 기념행사, 그곳에서는 교수들과 학생들에 대한 소개들와 작은 음악회가 펼쳐졌다.
마지막 날, 졸업축하 예배를 시작으로
가족들과 학생들이 함께 구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그 오후에 본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장은 일률적으로 같은 것이 아니라, 2년 과정, 3년 과정, 그리고 학사학위자, 석사학위자, 박사학위자가 모두 다른 모양의 가운을 입고 있었다.
같은 식장에 있더라도, 각자가 성취한 바가 다름을 나타내는 것이다.
참고로 언니는 한국에서 다니던 2년과정의 신학교 학점이 약간 인정되었는 데도,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서 학사학위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단 1분도 짬이 없이 지냈다는 언니,
그의 성실한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어쨋든 근 2박3일에 걸친 참 긴 졸업여정이었다.
별로 영광스럽지 않았던 내 졸업식이 생각났고
(그때 첫 직장에서 실패하고 실업중이었다)
언니도 졸업후에 어떤 화려한 진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참 다른 느낌, 입학식이란 용어는 없는 이곳에 졸업식은 참으로 거창하게 치러졌다.
특히 언니는 종교음악 중에서도 성악을 전공했는데
졸업 이틀전에 개인독창회가 있었다.
입학생 20여명중 남은 5명의 졸업생들은 모두
졸업개인연주회를 갖게 되는데, 언니도 그중의 한명이었다.
나는 엄마 한복을 빌려입고 사진기를 들고 갔는데,
독창회에는 교수들, 교수들의 가족들, 학생들, 학생들의 가족들,
또한 그 근처에 사는 한인이민자들, 그곳에 유학와 있는
한인유학생들까지 많이들 모였다.
캐나다 나이 46살 6개월에 가진 첫 독창회.
어릴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저는 조그만 몸집의 언니가 무대에
오르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피아노를 약간 치던 언니가 성악에 그처럼 잠재력이 있었다는 것도..
또한 성악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성역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그런 날이었다.
외국곡을 부르고 난 다음에,
예쁜 한복을 입고나와 한국가곡 사랑(홍난파곡), 갑돌이와 갑순이, 봉선화를 불렀다.
마지막에는 엄마가 평소에 좋아하는 노래 찬송가 "샤론의 꽃"을 언니가 먼저 부르고,
반주해주던 외국인 지도교수와 후렴을 한국말로
듀엣으로 부르는데,
그 아름다왔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연주회가 끝나고 리셉션장에서 언니를 지도했던
미셸이라는 교수는 "감상이 어떻냐"고 물어왔다.
내가 "언니가 노래를 그렇게 잘하는 줄 몰랐다"고 하니,
언니에게 "그것 보라"고 "당신이 해낸 것"이라며 눈을 찡긋한다.
나중 언니말을 따르니, 언니의 신체의 특성(소아마비, 정상인에 비해 허약함)을 교수가 잘 알고, 자신을 도와준 이야기를 한다.
기분이 가라앉았을 때도 노래가 안나오고, 또 너무 흥분되어도 안되던 그 평정함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는...
그렇게 독창회를 갖고 그 다음날은 학장이 베푸는 졸업생 가족 리셉션에 이쁜 드레스를 입고 엄마와 내가 가족대표로 참석했었다.
그 시간은 지도 교수들이라든지, 학생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자리인 것 같았다.
우리는 이번에 졸업하게 되는 한인학생과 그의 어머니, 동생등 한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다음, 졸업 이브 기념행사, 그곳에서는 교수들과 학생들에 대한 소개들와 작은 음악회가 펼쳐졌다.
마지막 날, 졸업축하 예배를 시작으로
가족들과 학생들이 함께 구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그 오후에 본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장은 일률적으로 같은 것이 아니라, 2년 과정, 3년 과정, 그리고 학사학위자, 석사학위자, 박사학위자가 모두 다른 모양의 가운을 입고 있었다.
같은 식장에 있더라도, 각자가 성취한 바가 다름을 나타내는 것이다.
참고로 언니는 한국에서 다니던 2년과정의 신학교 학점이 약간 인정되었는 데도,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서 학사학위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단 1분도 짬이 없이 지냈다는 언니,
그의 성실한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어쨋든 근 2박3일에 걸친 참 긴 졸업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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