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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이 사람들 사는법

<제프네 이야기>
초중등학교가 함께 있는 이 마을 학교 졸업식은 매년 6월경 열린다.
초중등과정 8년, 유치원 2년까지를 합하면 10년간을 한 학교에서 보내다,
8학년쯤 되면, 여학생들은 제법 여성티가 나고, 남학생들도 목소리 바뀐 놈,
키도 번쩍 커서 총각티가 나기 시작한다.
이곳으로 유학와 있는 조카 덕분에 그애가 7학년일때는 7학년 학생들과 부모들이 졸업준비(저녁준비, 장식 등등)를 해야 하므로, 또 8학년때는 보호자 자격으로 참석했었다.
졸업식때는 여자아이들은 파티 드레스에다, 머리를 올리고 마치 신부들처럼 우아하게 꾸민다. 청바지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니던 모습만 보다가 졸업식에 가면, 전연 다른 아이들 같다.
조카애 졸업식장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아이는 제프라는 아이였다. 과학상, 수학상, 향토예비군이 주는 상 등등, 엉덩이를 붙이기가 무섭게 다시 호명되어서 밖에 나가서 수상했다.
키가 큰 제프의 엄마.
그날 정장차림으로 아이가 나갈때마다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쫓아나가 아이 사진을 찍어주곤 했다.
두 부부의 자랑스러움으로 빛나던 얼굴.
그들에게는 아들 제프와 딸 세라가 있는데, 그 딸은 우리애와 친한 친구이다.
그집에 가서 자고 오기도 자주. 언덕진 정원을 갖고있는 그들은 겨울이 되면 눈덮인 정원에 물을 부어서 긴 얼음판을 만든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썰매?를 타고 그 긴 길을 미끄럼타러, 우리 애들이 자주 갔었다.
어떤 때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함께 미끄럼놀이를 하는 것도 보았다. 나는 무서워서 한번도 타지 않았지만.
그런데, 어느날 제프엄마가 키가 큰 어떤 남자와 가게에 나타났다. “남자형제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친구다. 새집을 샀는데, 그걸 함께 고치고 있다”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즈음해서, 제프엄마는 집을 하나 더 장만하고 그 남자와 살고있다고 했다.
아이를 통해 얻어들은 이야기로는, 제프의 엄마와 그 사람은 “룸메이트”인데, 인터넷으로 만나, 그가 이 동네로 오게 되었고, 제프 아빠가 아이들과 산다는 것이다.
그때의 내 충격이란!
어쨋든 근 1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내 딸도 세라의 엄마집, 아빠집을 오가며 세라와 교우를 나누고 있다.
세라의 아빠도 별로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항상 같은 표정에, 인사도 잘하고, 아이들 말로는 세라아빠의 음식솜씨가 더 좋대나?

<케이트네 이야기>
케이트는 둘째반 아이이다.
공부는 잘하지만, 선생말을 잘 안듣고, 불평이 많고, 이해심이 없다.
아이들 필드트립에 따라가보니, 다른 친구와 뒤에 서서 딴짓하고, 조금 힘들면, 선생에게 짜증내고,
그래도 질문은 많아서, 진행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고.
어쨋든 그 케이트네 가족이 이 동네로 들어온 것도 2년이 넘어가는 것같다.
부부와 아이 하나,,, 그런데, 그 부부는 자기들은 헤어진 사이라고 했다.
그런데 같이 낯선 곳으로?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 때문에 가까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언어에 일가견이 있는지, 오자마자 한국말 배우기를 하더니
“안녕하세요” “담배 주세요” “감사합니다” “천만에요”를 거의 완벽한 발음으로 한다.
남편이 장난으로 사투리 “안녕하신교?”를 가르쳐주었더니 또 한동안 들어오자마자 “안녕하신교?”해서 우리를 웃기기도 했다.
부인은 곧 다른 남자를 이곳에서 사귀었다.
지금은 그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얻어 안고 다닌다.
케이트는 엄마와 살면서 아빠에게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쉘리네 이야기>
쉘리는 애가 셋있는 아줌마이다. 남자아이만. 모두 우리 아이 또래들이다.
언제 이혼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인것 같다.
우리 옆집이 경찰부부의 집인데, 그 집에 결혼하지 않는 약간 늙어보이는 아들(스캇)이 하나 있다.
쉘리가 아이들 데리고 자주 우리 옆집에 놀러오더니,
얼마전부터 옆집 아들과 함께 살고있다. 물론 세 아이도.
스캇의 엄마(말하자면 시어머니가 될까?)는 세 아이에게도 무척 잘하는것 같다.
지난 여름에는 모두 함께 캠핑을 떠났다 돌아왔다고, 까무잡잡한 얼굴로 말했다.

<기타>
우리집에서 일하는 메리의 아들은 재작년에 결혼했다. 총각이었다.
위성방송국에서 기술자로 일한다. 그의 부인은 이혼해서 남자아이 하나를 데리고 살던 사람이다.
그때 4살이던 남자아이(매튜)는 이제 6살이 되었고, 메리 아들에게서도 한명의 딸을 얻었다.
메리의 손자, 손녀 사랑은 정말 여늬 할머니와 다를바 없다.
친손녀가 생기기 전부터도 매튜를 얼마나 사랑하고, 며느리 자랑을 하는지…

케른은 은행원으로 일한다.
그녀에게는 첫번째 남자에게서 낳은 여자아이와, 두번째 남자에게서 낳은 두 아이가 있다.
우리는 두번째 남자와 살때 그녀를 알았는데, 어느날 그와도 헤어졌다.
그 남자말인즉, 일갔다와서 피곤해서 설겆이를 안도와주었다가 내침을 당했다나.
어쨋든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 그래서 최근에 한명의 아이를 또 낳았다.
모두 4명의 아이를 세번째 남자와 키우고 있다. 그녀는 30살이 채 안되어 보인다.
쌍둥이 유모차에 두 아이를 태우고 남자가 밀고 가게에 들어온다.
이제 제법 큰 여자아이는, 또 다른 동생을 데리고 다니고...

..........................................

지금 이야기한 가족들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이들이 우선권에 있다는 것이다.
부부끼리는 헤어졌으며, 남아있는 감정의 앙금이 어떤지 알 수 없으나, 아이들을 위해서 붙어산다.
세라엄마와 아빠집의 사이는 불과 차로 1-2분 거리에 있고,
아이들을 위한 시간쓰기를 나눠서 하는 것 같다.
가령, 아들의 농구시합이 있어서 아이를 데리고 와야하는 경우에는 어떤 때는 아빠가,
어떤 때는 엄마가 그를 책임지는 것이다.
케이트 엄마와 아빠 역시 이 먼곳까지 같이 이사왔다.
메리의 양손자 매튜는 매주일 아빠를 만나러 간다. 제 아빠 사는 곳과 이곳의 중간지점을 정하고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한다고 한다.

고등학교까지의 무료교육,
18세까지 아이 양육비,
이혼후에도 키우지 않는 부모는 반드시 아이 양육을 보조해야 하는 것 등등
이런 제도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일까?

어땐 때 보면, 아이가 짐이 아니라, 아이를 오히려 반기는 것 같다.
내 품에 떨어진 아이, 그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낭만적인 추리일지는 모르지만, 아이 하나 얻어들이는 것,
그 자체를 인정하고, 그를 즐긴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고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우리가 처음 이사와서 한동안, 나는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잔뜩 주늑이 들어있었다.
아이들은 날이 따뜻해지자, 뒤뜰에서 맨땅을 가지고 장난한다.
조용하던 뒤뜰이 우리 아이들 소리에 시끌시끌해진다.
어쩔줄 몰라하던 그때, 옆집 아저씨가 모래장난을 할 수 있는, 모래박스를 만들어다 주셨다.
네 군데에 작은 나무의자를 만들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아이들이 모래놀이 할 수 있는.
비치에 가서 모래를 퍼담아와서 그곳에 쏟아부어놓고, 좋아하던 기억.
지금도, 그때 만들어준 모래박스가 뒤뜰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아이들을 향한 그런 사랑, 그런 정성이 이들의 가슴에 있다고 나는 느낀다.
누구의 자식이어서가 아니고, 아이라는 독립된 개체로 생각하는…
나의 낭만적인 상상은 끝간데를 모르고 나아간다.

18일이 되면, 페이슬리에 이사온지 5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을 기념해서 가게에서는 경품권 추첨행사를 갖는다.
DVD 플레이어가 걸린 추첨박스에 전화번호와 이름을 써넣으면서,
손님들은 모두 믿기지 않는단다.
“벌써 5년이란 말이지?”
“시간이 살같이 흐른다”
한마디씩 하고 나간다.
그런 말을 듣는 우리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새식구>라는
소외감도 한편으로 들고,
액면 그대로, 정말 세월이 빠르다는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해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렇게 깊어지진 않는다.
가게에서 인사하고, 동네 공통 관심사를 나누고, 애들 이야기하고,,,
그런 단순한 인간관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냥 겉으로 보는 사람들과 그 안의 사람들은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쓴 이야기도 실상은 껍질에 불과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조금더 근접하게 그들의 속이야기를 알고싶지만,
그건 아직 좀 요원해 보인다.
이 글을 절대로 읽지 않을 내 글에 언급되는 가정들에 우선 미안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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