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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장사한다는 것

캐나다에 이민와 있는 한인들의 주요업종이
그로서리, 컨비니언스 가게 계통의 자영업이다.
신문, 잡지,복권, 담배, 음료수, 초코렛, 캔디
종류를 주로 취급하는 곳을 컨비니언스 스토어 라고 부르고,
따서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게 되어있는
깡통음식등 요리에 필요한 것을
어느정도 갖춰놓은 곳을 그로서리 스토어라고 부른다.
그 둘을 합쳐놓은 것같은 가게가 실상은 많다.
(우리 가게는 그로서리 스토어라고 부른다)

한인이민역사가 40여년이 넘어가지만, 직업의 분포도는 그렇게 넓지 않아서,
한인단체나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들, 의사 변호사등 전문직 종사자,
외국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소수며 가게경영주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항간에서는 한인들이 딸리는 영어 실력으로 할 것이 없어서,
비교적 영어사용이 많지않고,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는
노동집약적인 업종에 몰려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도 있다.

왜냐하면, 이른 새벽부터 문을 열어 저녁 늦게까지,
부부가 매달려있어야 하는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자조섞인 비장한 표정으로
“한인들이 가게경영에서 벗어나” 새로운 업종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주로 가게완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대체로 가게경영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자신의 신분의 추락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하는지,
무척 몸을 사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민으로 온 사람들이 가장 안전빵으로 도전해볼
수 있는 직업으로 오늘도 추천되고 있으며,
가게 경영 한인들은 대체로 자리를 잡고,
캐나다드림(?)들을 이루어가고 있다.(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책가게를 마지막 <폐점세일>로 정리하고,
우리는 그나마 큰 빚은 모두 갚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수중에 있었던 돈은 없었을때,
남편의 “가게를 해보자”는 제안은
전연 실감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당시 정을 들이고 있던 교회 젊은부부들 모임에,
남편이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줬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어디 먼곳으로 떠나서 가게를 하자니?)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한번 가보기나 하자”며 찬 눈길을
헤치고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전 주인을 따라서 올라와본 살림집,
한인이 한집도 없는 마을.
생전 가게라고는 꿈에서라도 생각지 않았었는데,

집안의 온실에 수북히 늘어선 푸른 화초들을 보면서,
내가 한 생각은
“이런 곳에서 아이들 키우면서 살 수 있겠다,
그래 아이들만 키우면서 살자” 하는 것이었다.
엄마 노릇을 한번 단단히 해보자는 생각이
이때서야 들었던 것도 같다.
내 위주가 아닌, 아이들 위주의…


우리가 기댈 데라고는 친정에 달랑있는
나와 언니의 이름으로 되어있는 주택,
그를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었으려나 모르겠다.

그러나, 한번 망한 우리에게,
우리가 손을 벌리기도 전에 친정식구들이
방어태세인 것은 말을 하지 않아도 눈치로 보였고,
나 또한 친정에 기댈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될 일”도 아니면서, 우선 오퍼를 넣고
돈을 구하기 위해 남편이 이리저리 뛰었다.
주로 은행들이었는데, 돈을 줄 수 있다고 했다가
안된다고 했고,

나는 그때 창세기부터 읽고있는 중이었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말을 안듣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글을 읽으면서,
나도 어느곳으로 인도해주시려고 하나 하는
막연한 희망을 갖게 됐다.

그래도 너무 무모한 기도인 것 같아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면 가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하나님께 내기를 걸었다.

그때 내가 “당신이 허락해주신다면 두가지를 실천하겠다”
고 말씀드렸다.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게으르다”는 소리를 참 많이 듣고 자랐다.
나 자신은 모르겠는데, 부지런한 사람들로 부터
그런 지천을 많이 받았고,
부모 떨어져 서울언니네 집에서 유학할때도,
“머리감았니?” “청소했니” “발 닦았니?” 하면서
언니에게 무던히도 혼났다.
그 큰언니 이야긴 다음에 기회있으면 하겠지만,
그래서 나에겐 “게으름”을 이겨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내가 가게경영을 하게 된다면,
그 당시 2살,4살,6살이던 세딸 키우면서,
가게일 도우면서, 살림하면서
정말 게으를 사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 약속을 나를 위해서 드렸다.

두번째 약속은 남편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칼럼에서는 생략하려고 한다.


어쨋든 나의 기도가 하나님께 쓸만했는지,
주인과 약속했던 날짜(그날이 지나면 오퍼는 취소가 되는 것이었다)
하루전이었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돈이 준비됐다는 은행부로커의 연락을 받았다.

긴 과정을 통해서 가게에 입문한 나에겐,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이 업계에 노하우를 쌓아온
우리의 이민선배들이 존경스럽다.

장시간 노동은 일하는 사람을 적절히 쓰므로,
피할 수 있으며,
많은 이웃들과 사귀게 된다.
부러 친구만드는 것에 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어떤 신문에서 보니,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서로 엉덩이를 부딪치며
살았던 이웃”이라고 서로를 소개한 글을 읽었다.
정말로 엉덩이가 큰 하얀얼굴의 아줌마들은 서로
몇번씩은 부딪쳤을 법하다.
장난으로 일부러 몸부딪침을 하는 손님들도 있으니..

동네가게는 그런 정겨움이 있는 곳이다.

막내의 친구인 7살짜리 조던(Jordan)은 나보고 그런다.

“Mindy! I like your store. Your store is best.
You know, whole world people try to come to your store.”

금발머리의 예쁜 아이가 독특한 억양으로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데는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가게에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니..”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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