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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기적이라 부르고 싶어요

기가 막히지요?
언니가 저희집으로 이사왔습니다.
칼가리에 있는 신학대학을 늦은 나이에 졸업한 그 언니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6개월 정도 나갔다 왔습니다.
한국음악(국악)을 공부하고 싶다고,
서울대학교 국악과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개설한 공개강좌를 수강하고 왔지요.
졸업할때부터 어떤 화려한 진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사실 가족들은 어떤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공부하기 힘들고, 그 나오기 힘들다는 캐나다내 대학 학사자격증을 땄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근데, 정말 공부한 쪽으로는 돈 벌길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더한 것은 정작 본인이 <음악>으로 먹고 살길이 없다는 것을 진작에 감을 잡았다는 겁니다.

다리는 어릴때 앓은 소아마비로 아프지요? 다리가 아프므로, 신체가 그만큼 약합니다.
오래 서있는 직업은 힘들고, 왔다갔다해야 하는 일반인들이 하는 일도 엄두를 못냅니다.

그나마 엄마와 언니(결혼을 안했으므로) 앞에 남아있던 약간의 돈을 학비로 다 써야 했습니다.
5년간 학비와 기숙사비… 정말 잡비는 한푼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제가 아는데, 거짓말처럼 한푼의 돈도 남지않았습니다.

언니에게는 <독립>해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숙제가 있었던 듯 보입니다. 방학때마다, 토론토 엄마의 노인아파트에 같이 머물렀는데, 이제는 학교도 졸업하고, 늙으신 엄마의 신세를 질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 언니를 보고만 있었습니다.

언니는 그동안 정부 관련단체에 언니의 살길을 의논했었답니다.
처음엔,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그런 기관, 혹 그런 기술을 배울 곳이 있는가>에서 시작했다지요. 상담자들이 언니의 사정을 듣고, <어떻게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느냐>해서, 우선 정부아파트를 신청해야 하고,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인지, <벌이>가 없는 사람이 받아낼 수 있는 연금쪽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겁니다.

비어있는 방이 없을 뿐더러, 언제 차례가 될 지 모르는 정부아파트를 조금이라도, 일찍 얻기위해, 그런 사람들이 기다리는 임시대기소(쉘터)에서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정말 각양각색의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

그런 일을 할때, <언니가 그렇게까지 수모를 감당해야 하나>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지요. 엄마집이나, 우리집이나 나올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데… 하면서 말입니다.

어쨋든 그러는 와중에 언니와 의논을 하게 됐습니다. 정부아파트는 나오기가 어렵고, 개인집에 세를 들면, 정부에서 보조를 해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정부아파트는 연금에서 삼분의 일만 세비로 나가면 되지만, 사설에 들면 토론토에서는 그 세가 비싸, 나오는 돈으로 감당하고 먹고살일이 막막해진다는 것이었죠. 그러면서 우리집에 오면 어떻겠냐는.

사실 저는 그때부터 떨기 시작했습니다.
언니의 그말이 떨어지자마자 그 마음이 바뀔까봐,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언니, 사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렇게 화려하고, 볼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얼마나 먹겠어. 그냥 조용하게, 그렇게 살수 있다면, 그런 것을 감내할 수 있다면, 언니에게 시골에서 살아보라고 하고 싶었어. 우리는 너무 좋아. 아이들에게도 좋고, 우리 부부에게도 좋고 말이야> 라고 말했습니다.

시골임으로 그리 비싼 세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 마음에는 그냥이라도 같이 살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언니의 <독립>을 해치는 제안이므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2호실 <한의원>의 한방에 살림을 들여놨습니다. 이제 학생들이 돌아가는 6월말이면, 언니가 3호실을 혼자 사용할수 있게 됐습니다. 깨끗하고, 알뜰한 언니가 가꿀 새집이 벌써부터 눈에 그려집니다.

이상합니다.
언니가 우리집에 오기를 오래전에 기도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오래된 기도가 들어진 것 같은.
그러나, 사실은 공부도 하고, 모든일에 올바른 것이 뛰어난 언니가 보다 높이 날아오르기를 기도했습니다. 내 곁에서가 아니라, 언니가 폼나는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덕이 되기를.

그러나 아직도 언니에게는 쌓아야할 훈련의 과정이 남아있는가봅니다. 그 훈련을 동생과 함께, 시골에서 한치한치 쌓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언니에게는 빚이 많습니다.
토론토에서 안되는 도서대여점을 할때, 세 아이와 경제고에 허덕일때, 언니가 물어왔습니다.
<괜찮니?>
<괜찮지 않아. 힘들어.>
그때 언니가 나 대신 책방을 봐주고, 나는 어린것들과 집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책방이 잘 망하게 도와준 사람,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나를 하나님앞으로 오도록 기도해준 사람, 철없을때 <다리 저는> 언니를 부끄러워했던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보살펴준 사람…

이제 그 사랑의 빚을 갚을 길이 조금씩 열리는 것 같습니다.
이게 정녕 기적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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