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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꽃장사

자조적으로나, 격을 낮춰 부르고 싶을때, 우리가 하는 장사를 <구멍가게>라 부른다.
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 오래전부터 그런 용어들을 사용해왔다. 나는 <구멍>이란 뜻과 <가게>란 뜻이 어울리지도 않고, 어디 음침한 굴속같은데서 장사하는 것이 아니어서, 스스로를 <구멍가게>를 한다고 지칭한 적은 없다.
한국의 친구에게 소식이 왔는데, “너희 그곳에서 슈퍼마켓 한다며?”하는 것이다. <구멍가게>와 더불어 슈퍼마켓을 한다고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 어감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이곳 사람들이 부르는 말 그대로 한다면 <코너 스토어>든가, <컨비니언스 스토어>가 된다. 코너 스토어는 가게가 주로 사거리에 접해있는 코너에 있는 가게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에 우리 가게처럼 상가 중심에 들어있는 가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컨비니언스 스토어도 조금 그런데, 한국식으로 하면 <편의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주로 이사람들이 급히 필요한, 일상용품, 담배, 신문, 초코렛, 껌, 칩스가 주요 품목이다.

우리 가게는 이보다는 품목이 다양해서 작은 슈퍼마켓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지모르겠다. 그런 의미로는 <그로서리 스토아>가 있다. 생필품, 야채, 고기, 빵까지 파는 곳… 그러나, 우리 가게는 그만한 규모는 되지 않는다. 꼬마들에게는 <캔디 스토어>라고 불리기도 하고.. (내용 덧붙임:글을 마치고 나서 생각났는데, 버라이어티 스토어란 게 있다. 잡화상으로 번역할 수도 있는데, 음식이 주를 이룬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어쨋든 우리 가게는 영어로 하면, 버라이어티 스토어, 한국말로 하면 <편의점>이 그중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가게의 장점이 있다. 무엇을 갖다 놓아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먹는 것부터 입는 것까지. 겨울철엔 장갑에 헤어밴드까지, 여름엔 빙수 스타일의 스러쉬를 판매하기도 한다.

왜 이리 서론이 길었는가? 올해 꽃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한인들이 하는 <편의점>에서 꽃들을 철마다 취급한다. 꽃이 많은 것은 그 주인의 부지런함과, 그밖에 여러가지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5월말경 되면, 꽃이 시장에 나온다. Hanging basket이라고 불리는 꽃들이 가장 일반적인데, 집집마다 처마끝에 매달아놓을 수 있게 만들어진 꽃이다. 꽃 종류도 많고 화원에서 키운 실력도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10인치 한 바구니에 10달러를 넘나든다.

이번에 우리는 세 트럭을 주문했다. 한번 올때마다 400바구니가 넘게 오니, 그를 부리기도, 관리하기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근방에 있는 동생네 가게에서 가져가고, 다른 가게에서 필요한 만큼 가져갔다.

중요한 것은 남아있던 꽃바구니에 대한 것이다. 너무 꽃이 많았던 관계로, 바구니를 둘러쌓던 비닐을 벗기지 않고 뒤뜰에 오랫동안 두었다. 비닐을 씌워놓으면, 꽃이 모아져서 훨씬 예뻐보인다. 잎이 잘 보이지 않아, 꽃만 무성한 꽃밭처럼 보이는 것이다. 바구니를 세워놓고 오랫동안 비도 오고 그랬다.
시간이 조금 간 뒤, 비닐을 벗겨내고 보니, 꽃잎이 떨어져 잎사귀에 얹혀서 그안에서 썩어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소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한꺼번에 꽃이 너무 많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내버려둔 댓가가 아주 엄청났다. 바구니 40여개를 거의 버리게 되었었는데…. 그냥 버리느니, 한번 썩은 잎과 가지들을 훑어내보자 마음을 먹었다. <미니 캐스케이드>란 종류의 꽃이었는데, 얼마나 잎이 많고, 작은 꽃이 많은지, 그걸 다 솎아내는 일은 대단한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썩어서 곰팡이까지 핀 썩은 잎사귀들이 가지까지 함께 썩게 해서, 많은 가지를 쳐내야 했고.

언니와 함께 손에 진물이 들도록 하나하나, 수술을 정성껏 했다. 그러고 나서 꽃바구니의 몰골을 보니, 완전히 앙상한 가지만 남은, 중병앓이를 하는 환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가게 밖에 진열된 모종들과, 바스켓등 꽃을 팔고, 우리가 수술했던 것은 뒤뜰에 놓고 때마다 물을 주었다. 밖에 내놓은 꽃들이 대부분 없어져 갈 즈음, 가만히 보니, 소생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이 꽃들이 작은 잎을 내고 있었다. 그 잎이 자라갈 즈음, 꽃들을 피어내고. 아마 몇주간을 거진 버려진 채로 밖에 내두었었나 보다. 꽃이 소담해지는 것들을 다시 정리해서 하나씩 가게 앞에 진열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절반의 가격에 판매하는데 8개쯤 남은 것 같다. 그것이 다 나갈라는지, 며칠후에 가격을 완전히 낮춰서 그냥 팔아야할런지, 아니면 우리집 뒤뜰에 바구니를 걷어내고 심어야 할른지, 결판이 날것이다.

꽃바구니의 교훈은
입이 무성해야, 꽃이 무성하다.
다 죽어갔던 것도 다시 살릴 수 있다.
예쁠때, 정성을 쏟아서 빨리 팔아야 제값을 받을 수 있고, 나중에 들어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등이다.

그래도, 남은 모종으로 아이들과 작은 화단(꽃종류와 야채를 섞어서)을 만들었고, 그 대단한 물량을 다 소화했으니, 그럭저럭 성공적이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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