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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속으로

두번째 영어소설

이민오기전 심드렁하는 자식들에게 엄마는 이런 말로 입질을 하셨다.
-그곳에 가면 너희들 모두 공부할 수 있다.
"너희들 모두"는 함께 가는 5명의 딸 모두에게 포함되는 말이었지만, 그 말이 일찌감치 신빙성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쳤고, 직장을 다녔던 내가 무슨 염치로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고 하겠으며, 모두가 공부하면 누가 생계는 책임지느냐가 나의 관점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국으로 나올 생각을 마음한쪽에 놓아두고 있던 터라, 그냥저냥 시간을 보내다가(가능하다면, 내가 하던 일을 해서 직업 경력을 조금 더 높여놓고) "빠이 빠이"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공부"한다는 것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았다.

 

결과론적으로 말해서 나머지 3명의 동생과 1명의 언니가 현지에서 전문대학 이상의 공부를 마쳤지만, 그 대열에서 나는 제외됐었다.

 

일을 하면서도 내안에 충분한 이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혼자 공부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심이 마음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 어느날 엄마하고 다툼중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일은 내내 부끄러운 기억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생들이 힘들이지 않고 공부만 한 건 아니었다.
시간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또 학비도 정부에서 융자해서 사용했으며, 엄마는 딸들의 학자금을 마련하느라, 험한 고생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문제는 내가 공부할 용기와 의욕이 없었으면서, 어떤때는 집안의 희생타가 된 것 같은 발언을 한다는 데 있다.

 

이민을 와서 보니, 나이 어린 순서로부터 이곳 말에 일찍 적응해갔다. 동생들 보다는 공부를 해도 내가 한자라도 더 했는데, 그런 일들이 잘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나와 내 위의 언니가 가장 오랫동안 말이 서툴렀고, 아직까지도 발음은 원시인 수준이다.

 

캐나다에서 무학력인 내가 최근에 이뤄낸 업적을 자랑하려고 이 글을 이렇게 시작했다.

 

올해 초,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원본으로 읽었다.

<다빈치 코드>가 여러가지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기도 하지만, 우선 그 작품은 그야말로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어서, 내가 생각해도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끝을 냈던 것 같다.

그리고 영어소설을 읽은 것은 순전히 그 작품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몇달 전, 교통사고난 동생을 병문안하러 혼자 도시로 내려갈 일이 있었다. 동생네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느라고 쇼핑몰에 잠깐 들렀는데, 나는 생뚱맞게도 서점에서 더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서점은 나의 오랜 친구이지만, 그건 한국어 서점이었지, 외국서점은 아이들 때문에 오는 그냥 가게에 불과했는데, 웬일인지 뭔가 "영어"로 된 것이 읽고 싶었다.

어떤 사전지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서점에서 좋은 책을 골라내기는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 였을 것이다.

 

그래도, 읽기 쉬운 소설로 한정하고, 제본이 깨끗하면서 세일해서 가격이 저렴한,, 실패하는 셈치고 골라본 책이 조앤 존스톤(Joan Johnston)이 지은 "The Price"였다.

 

표지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링 작가라고 박혀있는데, 이 타이틀은 엔간한 소설에 많이 붙어있어서, 얼마만큼의 신뢰도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작가의 나이가 나와 비슷한 것 같고, 표지가 도시빌딩들이 멀리 서있는 중에 초원에 두 마리의 말이 있는 그림이어서, 도시와 시골이야기가 아닐까, 그리고 "댓가"에 대한 것이니, 그저 읽기 편한 소설같아 보였다.

 

물론 이 소설을 사고도 읽지 않고 또 몇달을 뒀다.

 

얼마전 다른 읽을거리가 궁해져서 이 책을 잡게 됐다. 어느때는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든다고 침대에 올라간뒤, 이 책을 붙잡고 2시간 이상은 족히 읽었던 적도 많았다. 1주일에서 2주일 사이에 다 읽은 것 같다.

 

책은 흥미로왔다.

 

특히 이혼하고, 파트타임 아버지가 된 주인공 루크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옛 부인과는 안맞아서 헤어졌지만, 2주만에 한번씩 두 딸을 데려다가 보살피고, 그 아이들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아빠의 부단한 모습을 보니 안스러웠다.

 

루크의 어머니는 집안끼리 오랫동안 원수지간이었던 남자와 재혼하게 되고, 루크는 의붓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을 오랫동안 하게 된다. 편안하게 살수 있었던 고향의 삶을 버리고, 도시로 나와서 법률회사에서 파트너(법률회사의 경영자의 한 사람)가 되기 위해 불철주야 뛰는 그런 고단한 생활을 하게 된다.


주인공이 옛 애인을 다시 만나면서, 그녀와 사랑을 회복하는 과정이 은밀하고, 조심스러우면서 여성스럽게 묘사되어있다.

시판되고 있는 당뇨병 특효약에 대한 소송건을 맡아서 그 안에 배어있는 온갖 음모들을 파헤져나가는 것도 스릴 있었다. 이 당뇨병약은 그의 큰딸도 복용하는 것으로, 인슐린 주사대신 너무나 편한 방법으로 사람들로부터 각광을 받지만, 몇명의 아이가 혼수상태로 죽음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다. 법률회사가 이 부정에 깊이 개입하고 있고. 그 가운데 진실을 파헤치려는 사람들이 죽는 사고까지 발생한다.

 

빡빡한 회사(도시)생활과 법률과 약학에 대한 것이 나오고, 그안에서 사람들의 사랑행위와 불륜등이 적절히 가미되어 읽기에 지루하지 않다.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아이들이 재미있느냐고 물어보면, 대학생이 되면 읽어보라고 했다..

 

루크는 딸의 생명이 달려있는 당뇨병 특효약의 폐해를 밝히기 위해 마지막에는 의붓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부성애가 오랜 동안 마음을 막고 있던 미움을 허무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불화하던 의붓아버지와 화해하게 되고, 음모자들을 색출해내는 쾌거를 이룩한다.

그 일을 하는 동안 사람의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알게 된 루크는 능력을 인정받아 법률회사의 동역자로 초대를 받게 되나 그로 인한 부와 개인적인 명예를 모두 버리고 사랑하는 애인과 시골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끝 해피엔딩, 권선징악의 책!

 

루크가 몸담았던 도시는 이번에 허리케인이 온다고 떠들썩한 그 미국에서 네번째로 큰 도시인 휴스턴, 그의 고향은 작은 시골마을, 아마도 페이슬리 같은 곳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작은 마을로 돌아가서 시골의 변호사로 늙어가는 그와 말을 타며 놀 그의 가족들...
생각만 해도 즐겁다.

 

물론, 알지 못하는 단어들, 어려운 문장들이 나올때 그를 다 해결하고 넘어간 건 아니다. 조금 더 부지런해서 그렇게 까지 하면 책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와 내 실력향상에 도움이 될텐데 이번에는 대강 넘겼다. 내 단어실력은 정말 별볼일없고, 쉬운단어도 제대로된 스펠링을 쓰려면 헤매는데, 읽기는 그런대로 상상력을 가미해도 되니, 가장 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책을 마치고,,,, 자신감이 든다.
이제는 읽고 싶은 책을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한국책만을 읽기 위해 애썼는데, 시장이 넓어졌으니, 횡재했다 싶다.

 

그러나 너무 이 방면에 무식해서, 어떤 작가의, 무슨 책을 읽을 것인지 정보가 없다.

 

최근에 소리천사님 방에서 독후감을 읽은 "The Shadow of the Wind"를 지난번 밖에 나간김에 찾아보았다. 그 서점에는 없고 주문하면 갔다 준다고 해서 그냥 두라고 하고 나왔다.

도서정보에도 귀를 열어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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