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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스 카운티 산책

페이슬리 딴따라들

올 한해, 페이슬리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안좋은 일들이 있었다.

가장 큰 것이 <물사건>이다.
올 3월에 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없다는 건강센터의 진단이 내려졌다.
모든 물은 끓여먹어야하며, 양치질도 끓인물로 해야했다.
목욕도 성인은 괜찮지만, 아이들물은 끓여서 하라는 지시였다.
마을 주부중 한명은 일일이 생수회사에 전화를 해서, 물 기부를 받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마을회관옆에 자리한 트럭에 가서 생수를 얻어오곤 했다.
집집마다 넘쳐나는 생수병이 재활용장에 산더미같이 쌓인 사진이 신문에 나고,
그나마 시간이 지나자 기부회사도 없어져가고.
자치정부와 마을주민들간의 관계도 안좋았다.

그 당시 시장은 신문에
"물을 끓여먹는 일은 작은 불편에 속한다.
자치정부에서는 무료 물공급을 할 예산이 안된다"는 말을 해서, 상당한 원성을 샀다.
그 발언은 그의 차기 시장선거에 치명적이었는지, 그는 탈락되고 만다.
또한 중요한 것은 강에서 끌어다먹는 수질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새로운 우물을 파던지, 다른 지역의 물을 공수해서 쓰려면,
파이프 공사등 여러 가지 난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식수는 5개월후에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새로운 물공급은 아직 돌파구를 찾지못하고 있다.
마을공청회도 여러번, 주민들이 부담해야할 돈과, 최선책 사이에서 조율중이다.

옆마을인 워커턴이 2년전 물에 들어간 바이러스 때문에 7명이 죽고 2천여명이 앓은적이 있는지라,
식수문제는 간단히 다뤄질 성질이 아니었다.
앞으로 들어갈 공사비부터 그 모든 것을 시정부가,
즉 그 시정부는 주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니 주민들에게서 나가야 된다는 뜻이니,
지역발전에 상당한 영향이 있는 중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물 사건이 있는중에 고기회사 <부루스 팩커스>의 화재사건이 났다.
이 일로 공장에 다니던 60명의 직원들이 일시에 직장을 잃었다.
60명이면 가족들까지 포함한다면 페이슬리 인구의 10% 이상이
당장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동네 상점마다, 푸드박스와 기부금함이 놓였었다.
다행이도 다른 마을에 있는 전기회사인 <부루스 파워>의 직원들이 상당금액을 모금했으며
그 회사에서는 모금된 금액만큼 보조해줘서 어느정도의 돈을
전 직원들에게 배당할 수 있었다.

페이슬리의 가장 큰 아픔은 그렇게 두가지로 대별된다.

이의 치료를 위한 <음악의 밤>이 열렸다.
연합교회가 준비하고, 온전히 페이슬리 출신의 사람들로만 구성된 음악회였다.
주민이 함께 모여 페이슬리의 아픔을 치유하고,
성탄의 기쁨을 준비하자는 취지였던 것 같다.
이란 제목으로 열린 이 행사에서
모여진 돈은 모두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에게 나눠질 작정이다.
중간중간에 참석자들이 함께 부르는 캐롤송을 넣고,
페이슬리 딴따라들이 순서를 장식했다.

낯익은 얼굴들, 그들을 소개한다.

*존 리더

명실공히 페이슬리의 간판 스타이다.
국내적 명성을 얻기엔 지나치게 많은 나이지만, 동네의 행사에서는 흠잡을 데 없다.
우선 목소리가 우렁우렁하다.
50중반을 바라보는 그는 우리뒷집에 살았었다.
여름이면 뒷마당에서 기타들고 목청을 높이는 그를 자주 볼 수 있다.

가게일로 바빠서 쉼쉴틈이 없는 남편과 그를 비교해서 언니는
<개미와 베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그건 우리쪽 해석이지, 그는 일도 열심히 한다.
이사와서 안면도 안 튼 것 같은데, 존은 자기집 잔디를 열심히 깎더니,
우리집편의 잔디까지 깎고 있었다.
나는 하도놀라서, 안되는 영어로 하지말라고 얼굴을 붉혔었다.
이유없는 친절을 받을만큼 나는 너그럽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는 그후로도 자신의 잔디를 깎을때는 우리쪽까지 밀어주곤 했다.

집, 자동차등 보험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그는 작년에 강가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한치씩 담을 높이더니
올 가을에 집을 팔고 새집으로 이사했다.
존 리더가 키우던 큰 개를 우리애들이 사랑했는데,
이제는 집앞에 있던 그 개까지 모두 이사갔다.
페이슬리의 친절을 우리에게 알려준 최초의 인물이었다.

존은 이날, 기타를 메고 나와서 이라크에서 들리는 살상의 소식들이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면서, 크리스마스 이야기와 노래를 선사했다.

*맨디 크래독

미혼여성이다.
<페이슬리상조인회>의 상근직원이면서 한달에 한 번 발간되는 <아보카도>라는
페이슬리 신문을 만들고 있다.
그녀의 노래실력은 만만치 않아서,
크고작은 행사에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한 음반회사와 녹음을 마쳤다고 했다.
그녀가 가수로 입문할수 있을지 우리들의 관심이 몰려있다.

*윌키 패밀리

그레그 윌키는 바이올린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합창단 공연때는 피아노와 합주를 하기도 했다.
그 사람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음악가인 것을 이번에 알았다.
부인은 첼로, 딸은 바이올린 그리고 그의 누나가 바이올린으로 합류했다.
그래서 세명의 바이올리니스트와 첼로의 합주가 있었다.
그 부인의 인상이 기억에 남는다.
곡이 기니까, 중간에 악보를 넘길 때 박수안쳐도 된다며 시작한 그들은
교회안에 특별한 활음으로 청중을 뒤덮었다.
이번 행사엔 출연하지 않았지만 그의 막내아들은 피아노를 잘 친다.
아이들 학교 행사에 가면 8학년인 그가 반주를 지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바이올린 제조가족으로 유명한 그들은 그에 걸맞게 음악가족의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어
페이슬리의 자긍심을 일깨워준다.

*존 빅터

그는 4년전에 이태리에서 이주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딸과 혼자 살고있던 페이슬리의 중년 여성과 인터넷으로 만나서 결혼으로 온 것이다.
그는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플롯, 클라리넷, 색소폰등 다루는 악기가
몇가지나 된다고 들었다.
존은 플롯 독주와 피리연주, 그리고 독창을 선보였다.
그는 참 작은 사람인데 몸집이 큰 그의 인터넷으로 만난 부인이 생각나 웃음이 나온다.

*쉘리 파커

70살이 넘은 할머니다.
작년에 열을 냈던 <학교구하기 운동>에 그녀가 앞장서는 것을 봤다.
작은키에 통통한 몸집을 한 그녀는 모임에서 찬조연설을 하면서
<학교 리뷰행사가 있는 날, 교육청까지 가는 버스를 대절시키겠다.
여러분들은 참석해서 페이슬리의 힘을 보여달라>고 호소했던 생각이 난다.
버스 대절비등을 그녀가 제공했다고 들었다.
그녀의 맹활약 덕분인지 페이슬리 학교는 살아남았다.

그녀는 라디오 앵커 출신으로 각종 밴드부의 싱어로도 활동중이란다.
나는 그녀와 함께 학교의 아침식사 클럽에 봉사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모임에서 그녀를 몇번봤는데,
쪼글쪼글해진 얼굴을 빼면 그녀의 혈기는 청년의 그것과 다름없다.

마을의 각종 행사에 발로 뛰는 할머니,
학교 밴드부에 그녀가 기부한 금액으로 새로운 악기가 들어왔다는 소식도 <학교음악회>에 가서
들었다.
그녀는 교장의 찬사에 <힘이 되는대로 더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답했다.

이번 행사에서 그녀 역시 가수처럼 노래했다.
그녀를 보면서 <목소리>는 그 무엇보다 늙게 늙는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페이슬리 커뮤니티 콰이어(합창단)

나도 합창단의 일원으로 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지난주 정기공연이 있었다. 이번엔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연습시간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공연때가 되니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고 자신이 없었다.
실력을 믿고 집에서 매주 복습하지 않아서 인가, 곡이 어려운가 노심초사했다.
마지막에 마음을 모듬고, 기도하면서 공연을 마쳤다.

그날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의 반응이 다른때보다 좋았던 것 같았다.
하다못해 음악에 무뚝뚝한 남편도 <이번엔 잘하더라>고 칭찬했다.
이럴 때 난산이라고 말하는 걸까? 어렵게 태어난 자식, 혹 팔다리가 성하지 않으면 어쩌나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이도 정상이면서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면 이렇게 기쁠지..

우리 합창단은 이날 행사에서 3곡을 불렀다.
무대복이 아니고, 캐주얼하게 입고.
언니의 나중 평, "합창의 꽃"이었다고.
이날 우리 합창단뿐이 아니고 각 교회의 성가대와 중창단들도 함께했었다.
그들과는 우리와 수준이 달랐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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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사람들은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순서를 맡았었다.
아주 평범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까지.
그러느라 2시간 30분간에 걸친 긴 공연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알았다.
페이슬리는 스스로를 회복시킬 수 있는 자생능력과
각자의 자질이 출중한 많은 <인물>들을 갖추고 있다는.

어쩌면 우리의 아픔은 아주 작은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각지의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치유되는 날들이 되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간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