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들에 대한 실패와 성공, 그리고 그 둘을 합한 것 같은 세상에 나도는 많은 사례들중에 나도 하나를 보태려고 한다.
물론 당사자의 유학햇수, 적응능력과 노력여부를 중심에 놓고 본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보낸 가족, 그들을 돌보는 현지인, 그들이 깃든 학교, 그들이 가있는 나라,,, 등 물고 물리는 민감한 문제들을 소홀히 생각할 수 없다. 때문에 개별적인 경험들을 나누는 것은 그런대로 유익하지 않을까싶다.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런 유학생들을 데리고 있는, 하숙집 아줌마의 입장으로 그들을 가까이 접하고 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니의 아들 김민욱이다.
민욱이는 2000년 3월에 캐나다에 왔다. 그가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왔으니, 캐나다 나이로 한다면 13살되던 해이다. 7학년에 편입하게 되었다. 첫날, 친구들과 농구를 했다며 마중나갔던 제 엄마와 나를 향해 씨익웃던 그가 생각난다.
우리들이 안절부절하며 하루를 보냈던 것에 비하면 너무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며칠후에는 집에 친구도 데려오고, 아이들과의 생활은 별 문제가 없어보였다.
1년 6개월뒤에 초중등학교라고 말할 수 있는 "페이슬리 센추럴 스쿠울(Paisley Central School)"을 낮은 점수로 간신히 졸업했다. 학업능력이 못미치면 유급도 시키는 학교이니, 민욱이의 졸업은 사실 대단히 영광스러운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많은 졸업생들에게 주는 상중에서 하나도 건지지 못하는 그를 보는 내 맘은 조금 안스러웠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공부했냐고 묻는 내게 초등학교에서는 상당히 못했고, 중학교 1학년때는 아빠에게 많이 혼나면서 공부한 보람이 있어서 그래도 좀 나았다고 말한다. 1학기때의 평균은 75점이었고, 2학기때는 60점이었다고.
언니는 아들의 문제로 학교에 면담을 가면, 교사들이 하나같이 민욱이의 산만한 수업태도를 지적하고, 여러가지 안좋은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개를 들수 없었노라고 말한다. 책상에 1분을 진득하니 붙어앉아있지 못하고 손을 이용해 연필을 돌리다 못해 교과서를 돌리는 등 한심한 행동을 했다고 회고했다."내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가?"하면서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까지 생각했다니 민욱이가 여러 사람의 골칫거리였었나 보다.
그러나 정작 민욱이는 "공부를 우습게 생각했던 것"이 적응에 도움이 되었는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기에 그랬는지, 어려움은 없었어요. 그저 앉아있으면 되니.. 또 집에 가고 싶다는 그런 생각도 없었어요. 내가 이상한 아이였나?"
"숙제 안해가니?"하고 물으면 "학교가서 한대 맞으면 되요"라고 제엄마에게 말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첫 유학생활의 태도를 상기하게 된다.
언니의 아들을 맡아 제대로 도와주지는 못하면서 마음에 많은 부담감이 우리 부부에게 있었다. 남편은 민욱이에게 단어암기를 시키기 시작했다. 단어가 가장 필요하다고. 매일 50개에서 100개씩의 단어를 외우게 하고, 남편이 일을 파하면 그를 테스트했다. 단어뿐 아니라 기초회화도 문장을 아예 외우게 하는 식으로 공부를 시켰던 것 같다. 나는 그들의 공부에서 빠져있어서 확실한 것은 모르나 그렇게 해서 끝을 낸 책이 3권쯤 된다는 것 같으니, 그것이 기본 실력향상에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다.
하기 싫었을텐데 한마디의 반항도 하지않고 꾸역꾸역 참았던 민욱이가 생각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래도 민욱이가 "듣는 귀"(순종하는 마음)가 있었구나 여겨진다.
어쨋든 고등학교(Walkerton District Secondary School)에 들어갔다. 무조건 대학에 가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초등학교 담임이 권하는 쉬운 코스(어플라이, 실업반 학생들을 위한)를 이수하지 않고 아카데믹(진학과목)을 택했다. 민욱이가 4과목 중에서 2과목 낙제(50점 미만)를 하게 된다. 영어와 비지니스.
그는 과목 낙제를 하면서 상황의식을 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것이었겠지.
10학년을 마칠때쯤 온타리오 전지역의 학생들은 "영어 능력시험"을 마땅히 치르게 된다. 이 시험은 "합격"과 "불합격"으로 판정이 나는데, "불합격"이 되면 재시험을 봐야한다. 이 시험에 통과하지 않으면 고등학교를 정식으로 졸업할 수 없다.
민욱이가 그 시험을 봤다. 솔직이 말해서 그가 "합격"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한번은 떨어지겠지,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문"을 넘은 것이다. 그때의 기쁨이라니. 이제 이곳 학업을 수행할 충분한 능력이 된다는 보증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마도 그때부터 나는 안도를 하게 된 것 같다.
알아듣는 것도 조금씩 나아지고, 친구들을 넓게 사귀게 된다. 그때 만난 친구중에 민욱이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칠 아이가 나타난다. 그애의 이름은 "위트니".
단정하고 재능이 많은 위트니가 민욱이와 가까운 사이가 되는데 그녀의 집에 자주 놀러간다. 위트니의 엄마 "바비"는 민욱이를 이뻐하고 그의 숙제까지를 봐주는 "선생"이 된다.
어느날인가 민욱이가 위트니의 집에서 하루밤 자면 안되냐고 그집에 있으면서 전화로 나에게 물어왔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남자친구도 아니고, 어떻게 여자친구집에서 잔다고 할까? 그동안 자주 왔다갔다 하긴 했지만, 잔다는 건 좀 다른 문제가 아닐까? 했었다.
부모의 허락을 받았다는 말에 얼떨결에 그러라고 했는데,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갈수록 그 빈도수가 늘어났다. 민욱이가 설명하기를 "바비"가 에세이 숙제를 많이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때는 잠을 자면서 까지 해야 한다는 것. 그런 이야기들을 내가 재작년에 칼럼에 썼던 것 같다.
그때가 민욱이가 11학년을 마칠 즈음, 우리는 민욱이의 연고로 하여 바비 가족과 서로 집안을 오고가며 교제를 가졌다. 그들은 민욱이 칭찬을 많이 하면서, 아주 잠재력이 많은 아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방문왔던 나의 언니도 그집에 가서, 민욱이를 도와주는 것은 나를 도와주는 것이라며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그해 여름방학에 민욱이가 한국에 나가는 대신 농사를 짓는 바비네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정한다. 마침 나는 아이들과 한국을 방문하기로 계획중이었고, 민욱이가 있을 곳이 정해지니 다행이었다.
그 해 여름 그집에서 지낸 민욱이는 "홈 스테이 오퍼"를 받는다. 즉, 우리가 괜찮다면 자기들이 데리고 있으면서 민욱이를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민욱이의 친구 위트니와의 사이에 색안경을 끼고 봤던 우리들은 그를 걷어내고 그들의 부모를 믿고 민욱이를 맡기게 된다.
언제 민욱이가 그렇게 한꺼번에 성장했는지 정확한 때를 꼭집어서 말할 순 없다. 그러나 그는 몸이 커지면서 마음도 또 그만큼 커져 누가 보기에도, 믿음직한 청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수학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음악과 스포츠를 좋아하고 친구들에게 인기있는 학생일뿐 아니라 한국에 있는 그의 엄마에게는 위로와 힘을 주는 심지깊은 아이로 우뚝 서는 것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했다.
민욱이는 올해 13학년을 이수중이다. 12학년으로 부족하여 1년을 연장하여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민욱이뿐 아니고 대학을 가려는 많은 온주의 학생들은 1년을 연장해서 다니기도 한다.
지난 연초에 대학에 지원서를 넣었는데, 캐나다에서 명문대에 꼽히는 워터루대학(University of Waterloo)에서 합격통지서가 왔다. 6개 최종학년 성적이 필요한데, 지금 듣고 있는 2개 과목을 뺀 4과목을 보냈다는데 말이다.
성적은 수학 (1) 99점, 수학 (2) 96점, 커뮤니케이션 78점, 영어 65점.
지금 수강하고 있는 화학의 초기성적이 96점, 음악이 82점인데 이것과는 상관없이 그를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학과는 수학과.
아무래도 아직은 언어가 많이 부족하다. 그러니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 대학에서의 공부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졸업하기에 "악명"이 높은 캐나다 대학이 아닌가?
그는 워터루대학에서 매년 주최하는 수학경시대회에 나가 입상한 경력이 있는데, 그래서 몇점이었어? 하고 물었더니 64점이었다고 대답해서 내가 실망을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잘 들어보니, 이 대학에서는 응시자 전체중에서 25%안에 드는 아이들에게 모두 시상을 했는데 그 25%의 하위점수가 52점이었다는 것이다. 제 학교에서는 대표로 2명이 응시했는데 한명은 51점으로 입상자에 들지 못했다. 온타리오 전체 석차는 모르지만 민욱이가 거의 학교의 최우수 수학선수(?)임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그는 작년에 치뤄진 졸업식에서(민욱이의 졸업식은 아니었지만, 그는 올해 졸업한다) 전교 2명에게 주는 수학상을 2등으로 받았다고 말했다. 왜 2등이냐고 반문했더니 1등으로 받은 아이보다 상금이 적었다는데 그 액수가 150달러였다는 것으로 보아 꽤 큰 돈을 학교에서 준 것 같다.
레슨을 받은 적 없는데도 집에서 피아노를 혼자 연습해서 치기를 좋아하던 민욱이는 몇곡을 꽤 유려하게 쳐서 내가 감동을 받았었는데, 음악에 재능이 있는지 9학년때 시작한 트럼본을 곧잘 불었다.
매년 그가 속한 밴드부에서 주최하는 음악회에 가서 맨 끝줄에서 트럼본을 부는 그를 보면서 제 엄마가 본다면 얼마나 기쁠까 그려보곤 했다.
그는 졸업식에서 음악상도 받았는데, 제 말에 다른 아이들은 일찍 시작했지만, 본인은 늦게 시작했는데도 열심히 한 공로가 인정된 것 같다고 겸손히 말한다.
그가 노래도 작곡, 작사한다는 말을 언니로부터 들은지라 그를 물어보니, "이모 들려드릴까요?"하더니 제 노트북을 가져왔다. 컴퓨터로 작곡을 했다고 한다. "사랑"에 관한 한국랩송이다. 음악도 경쾌하고,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노래가사도 "말이 되는" 것 같다. 몇몇 친구들이 좋아하는데 제목은 "무제"란다.
이모, 이 노래에요... 나는 한동안 그 음악에 열중했다. 야! 근데 사랑의 감정을 알아야
그런 작사를 하는 것 아니니? (그정도에서 질문을 그쳤다).
고개를 땅에 박고 몸을 돌리는 브레이크 댄스를 하도 추어대서, 너무 위험하니 그만 하라고 여러 식구들이 말렸는데, 아마도 다른 취미를 찾다가 얻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그외 취미로 즐기는 것중에는 배구가 으뜸이고, 배드민턴도 수준급이어서 현재 여러 시합에 나가고 있으며 축구와 트랙 앤 필드 등을 좋아한다. 이런 모든 학교활동에 참가하려면 후견인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바비 가족이 민욱이를 위해 헌신적으로 "차로 실어오고 실어다 주는" 것에 대해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 제 자식에게도 하기 힘든 일을 그들이 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너무나 고맙다.
"그래, 네가 너와 같은 처지의 다른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뭐니?" 하고 묻는 나에게, 어눌한 목소리로 "이럴땐 좀 멋진 말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뜸을 들이다가 "숙제도 아니구요, 또 다른 것도 아니고 수업 시간에 잘 들어야 하는 것 같애요. 그러면 숙제도 쉽고 잘할 수 있구요. 아무런 것도 안하면서 시간이 가면 해결해주겠지 생각하면 안돼요.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누구도 참견안하고, 스스로 하는 수밖에는 없어요. 선생님들도 공부못한다고 벌주고 그러지 않거든요..."
"그래, 네 생각엔 네가 언제쯤 그런 책임감이 생긴 것 같니? 누가 하라지 않아도 하게 된 것 말이다.."
"저요? 지금도 책임감 없어요. 그렇게 하고 싶은데 아직 그게 안돼요..."
책임감이 없다는 그의 말이 마음을 때린다. 그말은 그가 "책임감"이 무슨 말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그는 뭔가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나는 "고등학교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한국으로 말하면 칭찬받을 일 같으나, 여기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 알지?" 하면서 그 격을 한참 낮추었어도, 그가 보다 책임감있는 사람이 될 것을 염려하는, 그런 건강한 청년인 것이 그렇게 믿음직할 수가 없다.
"사랑"에 관한 음악을 만들고 작사를 하는 김민욱,,, 이미 마음은 성년을 향해 치닫는 것처럼 보인다. 어린애에서 어른이 되고 있는 그에게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므로 이모가 큰 선물을 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민욱이에게 줄 선물을 고르러 다닐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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