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런 기억이 있다. 바구니 들고 학교 옆 담장너머 수북히 돋아난 쑥을 캐던 기억이. 잘 쓰지 않던 소방서 뒷담쯤이었는데, 사람들이 다니지 않던 고로 온갖 들풀이 지천으로 피었었다.
그 쑥을 캐서 돌아갔을때 엄마가 좋아하셨던 것 같지 않고 별 쓸데없는 일을 다했군 하는 표정이었던 걸로 봐서, 먹을만한 나물이 아니었던가 싶다.
친구들의 채근에 몇번의 달래캐기에 나섰던 적도 있고, 박완서 작가의 소설의 표제목으로 나온 "싱아"도 따먹었던 기억이 있다.
봄이면 산에 들에 피어나던 그것들은, 군것질거리에 노상 굶주렸던 어린아이들에게 꿈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나의 세대만 해도, 그런 일들은 몇번의 나들이로 끝나는 일이었지만, 나의 윗세대들에겐 아마도 귀중한 "식량모으기"의 의미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캐나다에 오면서, 무언가 정서에 안맞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봄이 되자 너도나도 나물캐기에 혈안이 되었었다는 것이다. 내땅도 아니고 남의땅에서 너무나 한국적인 나물캐기에 힘을 쏟는 한인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초이민자로서 그런 선배이민자들을 따라 나도 참나물을 뜯으러, 고사리를 캐러 몇번 따라갔었다. 나의 관심사와 맞는 일이 아니라서, 생각없이 몇번 따라갔던 것으로 그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봄날 나물캐기에 상당히 천착되어있는 것을 알게 됐다.
그도 그럴것이 캐나다의 산천은 자연수풀이라 그 깊숙한 곳에는 야생의 먹을것들이 즐비하다. 이 땅에 이민온 사람들이 마실갔다가 발견한 그 나물밭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소개되어져서 봄이면 이런 사람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달래 한뿌리를 캐기 위해 몇 발자국을 걸어야 했던 모국 산천의 나물캐기는 조갈증이 날만하지만, 엔간해서는 개간을 하지않는 자연림인 이곳은 평평한 수풀속에 옹기종기 그야말로, 앉은자리에서 한 광주리(봉다리)를 채울 수 있는 가히 나물의 천국이다.
기껏 풀을 뜯어먹는 것이 무엇이 죄가 되랴하며 사람들이 나물에 집중되어 있는 동안, 캐나다 살림청과 주민들이 이 이상한 열풍을 눈치채게 된다.
정부에서 지정한 자연자원 보호구역이라든지, 사유지인 수풀같은 데서 허가없이 나물을 캐다가 곤경에 빠진 이야기들이 그동안 심심치 않게 보도되곤 하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지치지 않고, 새로운 곳을 개척하기 시작하고, 나물 시즌이 끝나게 전에 "한탕" 해놓으려는 억척들을 부리는 걸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보게 된다.
나도 주위사람에게 얻어먹기도 하고, 나물 좋아하는 언니가 오면 그녀를 따라 같이 다니기도 했었으나, 올해부터 생각이 달라진다.
가장 큰 원인은, 나물 있는 곳이 "정부땅"이든 "사유지"이든 민간인에게 허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인지하다가 올해는 아예 그 모든 것이 내 머리속에 확연히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날 성경공부가 끝난 다음에 여자 교인들 사이에서 나물이야기가 나왔다. 말끝에 내가 사족처럼 "그래도 조심해야 하겠지요?"했더니, 그중 연장자인 교인이 "그런 생각이라면 나물 뜯지마!"하고 일침을 가하는 것이었다.
정말 나는 나물에 관심을 기울일만한 인물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봐도 알수 있는 일이지만 사람들의 나물 욕심이 지나치다. 주말에 작정하고 새벽에 떠나서 쌀 한가마니만한 큰 쓰레기 봉투 몇 자루씩을 뜯기도 한다. 나물을 삶아서 말리는 일등은 뜯는 일보다 더욱 힘들기도 한데, 그 일들을 모두 해치우는 것을 볼때 대단하단 생각밖에 안든다.
올해는 봄이 일찍 시작되어 나물철도 예년보다 빠른 것 같다. 한인들의 숫자가 적어 그다지 크게 주목을 끌지 않았던 이 지역에도 어느새 감시망에 걸리기 시작한 듯싶다. 우리 동네도 고비와 달래가 흔하여, 친구들을 불러온 적도 있는 나로서도 그 책임을 떠나기가 어려울듯 싶다. 지역 살림청에서는 "자원봉사자"를 구해서 자연을 헤치는 사람들로부터 살림을 보호할 것이라고 신문에 보도한다.
나물뜯기는 더이상 낭만도 아니며 범죄행위에 가깝다. 안 먹어도 사는 일에 가슴을 떨면서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주인없는 땅이 없다는 데 그 비극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나물을 좋아한다면 나물밭의 주인과 계약을 맺어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마음놓고 채취하는 방법을 찾든지, 허락을 받고 몇 뿌리 얻어다가 집안의 뒤뜰에 심어놓고 키워서 먹던가 해야 할때가 왔나보다.
초기 이민의 설움을 "나물캐기"에서 위안을 삼았던 이들이 있었다. 나물을 나누면서 하나님이 풍성하게 축복하신 캐나다땅에 고마움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 나물은 사람들이 몰랐을뿐이지, 내가 마음대로 채취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가 자신의 뒷마당을 장화발로 들어와서 파헤치고 간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모든 시간들을 지나 나는 "은근한 동조"에서 "절대 불가"의 입장으로 변하려고 한다.
고백하자면 지난주 언니가 와서 달래김치를 담가주고 갔다. 그 맛이 독해서 오랫동안 익혔다가 먹어야 한다. 한 1주일 지나니 조금 맛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달래김치여도, 이제는 도둑고양이처럼 그렇게 숨어서 꺽어오진 않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내가 아는 그 밭의 주인에게 협상을 요청해서, 그의 허락을 받고 뜯을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달라진 동생 때문에 오만정이 떨어진 "나물박사" 언니가 토라져있을 것 같은데, 전화를 하지 못하겠다. 나의 주장은 몸을 생각해서라도 이제는 "나물"에서 은퇴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인데, 몸에 깊숙히 배인 그 "나물욕심"을 버리기 그렇게 쉬워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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