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한 학년 마무리 시점이 되가니, 올해는 어쩐지 너무 편하게 지냈지 싶다. 아이들이 나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아서, 내 할일에 묻혀있기도 하고, 어떤때는 가족들의 이해속에서 아픈듯이 하루종일 뒹굴 수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과의 교감은 더욱 돈독해진다는 생각도 드니, 이 얼마나 환상적인 일인가. 엄마의 도움이 많이 줄어들므로 해서, 나는 아이들에게 노력봉사나 하는 일꾼에서 아이들과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는 친구로 조금씩 변모되어감을 느낀다.
내게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짚어보라면 대학입시때도 아니요, 해답없는 질문을 반복하던 청년기도 아니고, 나는 자신있게, 아이들이 어렸던 그 시기였노라고 말한다.
현실을 제대로 모르면서 현실의 파도안에 휩쓸렸던 그때,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지 모르면서 세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던 그때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것 위에 "경제적 어려움"이 겹치니, 상당기간 흑빛의 날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운것을 토대로 편하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우리도 "사업"이란 것을 해보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내가 제안자요, 도모자였다.
좋아하는 일을 "돈"버는 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그럴싸한 일이 내앞에 떨어졌으니, 나는 앞뒤가리지 않고, 그 일에 전폭적으로 매달렸다. 이름하여 "도서대여점".
벌써 10여년도 전의 일이니, 마침 한국에서 막 도서대여가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잡을때가 아니었나 싶다. 토론토에서는 한국책을 보려면, 그당시 기독교서점을 제외하고 순수한 한국서점은 1군데밖에 없었는데, 그 값이 만만치 않았다.
나는 교민들에게 책을 많은 돈을 주지 않고 보게 할 수 있는 일이니, 그것처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사업"의 "가나다라"도 모르는채로, 투자금액이 많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고, 그 일의 성격이 남편은 직장을 다니고, 내가 혼자 할 정도의 일이니, 적당하게 생각되었다. 주변에서 다시 생각해보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미 마음이 그쪽으로 치우쳐 내귀에 들리지 않았다. 작은 돈이었지만, 그 돈을 은행에서 고금리를 내고 빌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이 도서대여점은 미국 엘 에이에 있는 책방주인이 프랜차이즈화한 것이었는데, 그들의 제도안에는 "평생회원권"이란 것이 있었다. 책을 빌리기 위해서는 평생회원권을 구입하게 되는데, 그 회비가 20달러였고, 회원카드가 있어야 책을 빌려볼 수 있었다.
매장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한 손님이 그렇게 말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언제 망할지 모르는데, 평생회원권을 샀다가 보상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의 말이 너무 고깝고, 매정하게 들렸는데, 결국 그의 말대로 되었다.
그랬다. 겨우 2년을 간신히 견뎠다. 한국에서 들여온 한국영화와 씨디를 취급하고, 책을 판매하기도 하고 빌려주기도 하고, 또 한 구석에 컴퓨터실을 만들어 컴퓨터 강습을 하기도 하고, 비싼 영한전자사전을 팔기도 하고, 가능한 온갖 수단을 강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당시 나는 1살, 3살, 5살 짜리를 키우는 애엄마가 되어서, 나중에는 대여점 책상에도 앉아있을 형편이 못되었다. 밑으로 두 아이들은 애보는 집에 맡기고, 유치원에 다니는 큰아이는 데리고 다녔는데, 그 아이는 반나절 수업이라, 학교가 파하면 내가 서점에 데리고 있었어야 하는등, 정말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그를 보다못한 언니가 내 대신 서점을 맡아주어서 나는 아이들을 돌볼수 있었는데, 그러자, 나보다 계산이 밝은 언니는 우리가 되는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의 월급까지를 모조리 서점에 들이부어야 하는 적자운영을 하고 있는 것을 간파해내었다.
그 당시 남편이 아이 우유 살 돈이 없어서 컴퓨터의 모뎀을 팔아서 샀다는 이야기를 먼 후일에 들려줬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대변해주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서점은 정말 푼돈을 벌어들이면서 이어졌는데 어느날,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야, 민디야.... 오늘은 손님이 한명도 안왔다!!!!!
지금은 이 생각을 하면 그저 웃음이 나온다. 언니의 약간 들뜬듯한 목소리. 나는 무슨 반가운 소식인가 하고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언니의 주도로 망하는 수순을 밟기로 했다. 우선 광고를 하고, 폐점세일전에 대규모 세일을 단행했다. 대여되었던 책은 싸게, 그밖에 모든 것들을 우선 팔았다. 그리고 날을 잡아서 폐점세일을 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우선 급한 빚을 갚자고 하면서.
폐점세일 첫날이었다. 그때, 싼값에 무더기로 책을 구매했던 것도 있고, 그동안 모아진 책들이 꽤많아서 큰 강당이 꽉 찼었다. 사람들이 드나들고, 오전이 미처 지나지 않았는데, 한명이 나를 붙잡고 묻기 시작한다.
이 책을 모두 얼마에 팔겠느냐?
나는 거래라는 걸 그날 처음 해봤는데, 큰 한국식품점을 경영하는 그가 우리책을 한꺼번에 사서, 식품점내에 한국서적 코너를 설치할 생각이었는지, 거래가 잘 성사됐다.
그래서 폐점세일 몇시간 만에 얼마간의 돈을 받고 우리책을 그에게 모두 넘겼는데, 비지니스맨이었던 그는 거래가 성사되자마자, 모든 책에 일절 손을 대지 말라고 해서, 나는 아끼던 책 한권도 건지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어쨋든 그 뒤로 돈을 계산해보니, 우리가 책가게를 만들기위해 빌었던 그 빚을 딱 갚을 그정도여서, 하나님의 귀하신 사랑을 체험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잘망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다.
나는 이때까지, 서점 망한 것을 기뻐하고 있지만, 마음 한켠에 죄책감이 있었다. 내가 책임지겠다던 평생회원들에게 거짓말한 꼴이 되지 않았는가? 굳이 책 빌려볼 의향이 없었으면서도 우리와의 안면을 생각해서 평생회원권을 사주었던 많은 사람들, 그리고, 망하기 얼마전에 회원권을 구입, 그 혜택을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들, 모두 450명 정도의 회원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어떻게 속죄해야 할지,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얼마전, 교회에 낯선 한분이 왔다. 교인의 친구였는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 그전에 한인타운에 있지 않았어요? 한다.
- 그런데요. 도서대여점했지요.
- 아, 그래!! 나 그곳의 단골이었잖아!
기억안나?
새책 나왔다고 전화해주곤 했는데.
(기억이 안난다)
- 혹시 제 언니하고 잘아시는 것
아니에요?
나중에 언니에게 그말을 했다.
- 그래서 말이야. 평생회원권 팔아먹고, 정말 너무 미안하더라 했더니..
언니가 눈을 똥그랗게 뜨더니 이렇게 말한다.
- 얘좀 봐. 평생회원들에게 다 전화했잖니. 우리 폐점세일하니까, 회원권 가져오면 돈 돌려준다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 왔었어. 그들은 돈을
돌려받지 않고, 그돈을 보태서 책들을 많이들 사갔어. 그래서 그당시 돈이 좀 모였잖니..
네가 기억이 안나는가 보구나. 그 당시에 내가
서점을 맡아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망하기로 했으니, 그분들 먼저 챙겼지.
이럴수가..
나의 오래된 죄책감이 눈녹듯이 녹아없어진 날이다.
언니에게 감사했다.
서점을 하면서, 새책소개도 하고, 서평도 쓰는등 소식지를 만들었는데, 이스라엘에 있는 내 친구에게 보내주었더니, 그녀에게서 짧은 소식과 돈 20달러가 날아왔다. 소식지안에 있는 광고를 보고, 평생회원이 되고자 한다고 보내준 돈이다.
그녀야말로 책을 한권도 빌려보지 않고, 나를 믿고, 평생회원이 되어준 사람이다. 빚이있다면 그녀에게 있는 것 같다.
어쨋든 옛사람이 나타나서 나를 놀래킨 사건은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그렇지않았으면 오랫동안 내안에서 검은구름이 되어있었을텐데.
한치앞도 모르면서 "평생"을 운운하다니... 이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 현실성없는 아이디어를 모색하느라, 흰머리 조금 늘어났는데, 더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 다른 죄는 몰라도 이 죄는 모면했다는 것, 그것이 기뻐서 "흘러가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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