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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요

후래쉬를 받다---여행4

"엄마가 좋아하는 것은 알겠는데, 나는 페이슬리 집에 돌아가고 싶어.

기니픽도 보고싶고, 아빠도 보고싶고.."

 

산책을 나갔던 큰애와 막내가 얼마후 들어오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이야기한다. 큰애는 동조를 넘어서,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흘낏흘낏 보고있다.

 

이 날은 묘하게도, 나의 감정이 고조돼서, 새벽4시까지 잠을 자지 않고, 사촌들과 이야기를 하고 새벽잠을 두어시간 자고 일어난 아침이었다.

 

서산에서도 또 작은 마을 대산, 우리집이 있었던 대산을 중심으로 흩어져 살았던 우리 이종 사촌들은 자주들 들락거렸다.

 

아주 가난하던 시절, 인적이 드문 곳에 흑으로 지어진, 초가집이었던 막내이모집에 가면, 그 귀한 계란찜을 해주시곤 했었다. 사촌오빠들은 집밖에 만들어진 구멍만 뚫린 화장실에 갈때마다 따라와서 밖을 지켜주며 무서움을 막아주는 든든한 방패였었지.

 

이모들과 외삼촌에게 받은 사랑의 이야기가 가득했지만, 살다보니 그런 것들은 더이상 삶의 정수리에 있지 못하고 거의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지는가 싶었다.

 

그랬는데, 한2년전인가 사촌오빠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옛 정을 살려 사촌들과 그 가족들이 참여하는 인터넷 카페를 열었다는 것이다.

 

익명이 횡행한 곳에서, 어릴적 내 이름을 스스럼없이 불러주는 그곳은 참으로 마음이 편한 나의 놀이방이 되어갔다.

 

인터넷을 전연 접하지 못했던 컴맹이었던 고참 사촌들이 독수리타법으로 한명씩 들어오기도 하고, 사진과 이야기들로 서로간에 놓여있던 오랜 세월을 메워나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이렇게 저렇게 정을 나누다 보니, 옛정보다 더 강한 새로운 사랑과 신뢰가 싹트게 된다. 이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을때, 나의 한국방문이 결정되었다.

 

 

 

그 방의 이름은 이쁘기도 한 "이모고모"이다.

그 모임에서 내 방문과 시간을 맞춰서 첫번째 정기모임을 가졌다.

회원수는 50여명이지만, 사촌들로 해서 불어난 불러들일 수 있는 가족들을 모두 모아서 신두리 해변의 큰 별장을 빌려서 모임을 거하게 했다.

 

늙으신 세 분 이모님이 참석하셨고, 캐나다에 있는 우리 엄마와 일찍 돌아가신 외삼촌은 그 자리에 참여하지 못했다.

 

모인 사람이 모두 67명.

아이부터 노인까지 정말 대단한 만남이었다.

 

가족소개 부문에서 먼데서 왔다고 소감을 이야기하라고 하는데,

갑자기 목이 메이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도 나의 그리움의 깊이가 그정도인지 알지 못했었다.

 

15년만의 고향방문이었고, 사촌들과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30여년을 헤어져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는지 가슴이 먹먹했다.

 

나중에 다시 마이크를 받아 완성한 나의 소감은,

"우리 사촌들이 이렇게 잘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 부모님들이 아름다운 성품으로 우리를 희생해서 길러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도 우리 자녀들을 위해 부모님들을 본받아서 잘해나갈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지금 힘든 가정이 있더라도, 앞으로 좋아질 것을 믿습니다."

 

코흘리개 시절엔 알 수 없었던 우리들의 미래가, 온가족이 만남으로서 백일하에 드러났다. 놀랍게도 아주 유려하고 잘 다듬어진 멋진 모습으로. 그것이 서로간에 너무 황송하고 가슴이 벅차 잠을 잘 수 없었다.

 

밤바다를 곁에 두고 앉아서, 늦도록 술자리가 이어졌다.

 

그 다음날 막내딸의 그 "선언"이 나온 것이다.

"엄마는 좋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

나의 세 아이들은 소개가 끝나고, 밤이 깊기도 전부터 피로를 느끼더니 바로 잔다고 했었다.

 

정신이 홀랑 나가있는 엄마는 밖에서 흥에 겨워, 박장대소하고 있는데,

세 어린이는 제집을 그리워하며 잠들었다는 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이날 아침을 먹고 이어진 게임에 아이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복통이 터질것같은 많은 재미있는 순간들에 막내부터 관심을 보이더니, 나중엔 열심히들 참여했다.

 

사촌들 모임부터, 이번에 나로인해 만들어진 모임들이 많이 있다.

서울에 오자마자 언니가 준비해준 핸드폰으로 전화가 오기 시작한다.

캐나다집에서는 가물에 콩나듯 오는 전화가 하루에도 몇번이나 울리고,

누구나 나를 환대해준다.

 

삶에서 주변에 머물던 엄마가 이제는 중앙으로 나서고, 아이들이 뒷전에 선다.

그것이 아이들에겐 약간의 충격이 되는것 같다.

 

어느 정도 적응하기 시작한 막내가 묻는다.

엄마 친구와 친척들이 많은 이곳에 살거야?

아니면 아빠와 우리들과 캐나다에 살거야?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산가족" 시나리오를 묻고싶게 됐던 배경들이 생각나서 웃는다.

 

이렇게 삶의 절정에서 후래쉬를 받는 것은

뒤처졌어도,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산 나에 대한  

"하늘의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교만한 것일까??

 

아래 사진은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에서 불가사리를 잡아 생태를 연구?하는 막내입니다.

 

안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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